살아있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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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 스즈키 유이가 하루키와 연결되어 있다고 강하게 느낀 부분 중 하나이다.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 늙어버린다. 우리의 육체는 돌이킬 수 없이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강한 밤바람에 휩쓸려, 그것들은 - 확실한 이름이 있는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이나 -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뒤에 남는 것은 사소한 기억뿐이다. 아니, 기억조차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우리 몸에 그때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런 것을 누가 명확히 단언할 수 있으랴?
그래도 만약 행운이 따라준다면 말이지만, 때로는 약간의 ‘말’이 우리 곁에 남는다.」
- 무라카미 하루키 ‘일인친 단수 中 돌베개에’
독서의 강점은 역시 ‘나의 언어’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 아닐까. 언어란 결국 자신의 생각을 글 혹은 말이라는 매체를 통해 형상화 시킨 것이다. ‘생각’을 아무런 레퍼런스 없이 스스로 계속해서 만들기란 어렵다. 그렇기에 사유 이전에 ‘인식’이 먼저라고 믿는다, 일단 어떤 종류의 글이나 정보를 읽는다면 그 인식을 토대로 해석한 자신의 사유가 발생한다. 나는 이 사유들의 총체를 ‘개성’이라 부르고 저마다의 형태로 이 개성을 자신의 삶속에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샘 알트먼은 한 강연에서 ‘좋아하는 건 안 바뀐다’라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다. 이는 사람이 성장하면서 ‘관심사’가 바뀔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좋아하는 일과 진정으로 순수한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 혹 분야는 마치 유전처럼 내재되어 있다는 말로 들린다.
나는 이를 내가 수집하는 문장에 적용한다. 내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문장(취향)은 정해져있고, 빨리 발견할수록 그것은 복리처럼 내 삶을 다채롭게 만들어준다고. 그리고 그 문장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내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메타워드’를 향해 모든 것들이 연결된다고.
물론 자신의 생각을 완벽하게 언어로 풀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지 모른다. 오랜 시간을 들여 심사숙고하며 써낼 수 있는 글이야 가장 정제된 형태의 언어이기에 밀도가 높을 수 있지만, 즉각적으로 나오는 말은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고 또 그렇기에 타인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오차 없는, 오해 없는, 대화가 가능하긴 한걸까 가끔은 이런 궁금증에 휩싸이기도 한다. 귀가 어두운 척하며 어물쩍 넘어가기도 한다는 소설 속 인물의 말처럼 나 역시 숱하게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쓰여진 글‘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만이 줄 수 있는 감동과 매력이 있다고 믿는다. 불완전한 우리의 미숙하고 거친 그 ‘말’의 나눔 속에 숱한 오해가 섞여 있을 지라도 그 순간을 함께 공유했던 저마다의 개성 있는 목소리가 깃든 어떤 말은 가끔 송곳처럼 내 안에 남아 글보다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나도 그런 말을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는가.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