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가 있어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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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견의 가치는 그 의견을 표현한 사람의 진심과 전혀 상관이 없어. 실제로는 의견이 진심과 거리가 멀수록 지적인 가치는 더 높을걸. 그래야 의견이 개인적인 바람, 욕망, 편견에 오염되지 않을 테니까
ㅡ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0 中 」
2. 윤종신 ‘좋니’ 흥행 이유
“좋니가 성공한 건 딱 이 부분이야. 좋으니 사랑해서 사랑을 시작할 때 네가 얼마나 예쁜지 모르지”
“너는 마흔 넘는 나이에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쓰니?”
“이건 젊은 애들은 못 쓰는 가사야”
3. 상실의 시대 : 젊은 시절에 느끼는 상실감과 고독 : 젊을 때 젊음은 너무 지나치게 자세한 지도 : 하루키가 불혹의 가까운 나이에 쓴 청춘에 대한 소설 : 그래서 더 청춘을 잘 묘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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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방의 작가 신경숙의 글을 읽고 난 뒤 여러 재료들이 상기되었고 그 재료들을 모아 놓고 보니 하나의 점으로 연결되었음을 깨달았다.
‘때로는 지도가 너무 자세하다는 이유로 되려 길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타인과 상처를 주고받는다. 어떤 상처는 상처를 입을 당시에는 그게 상처인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그때 난 상처를 받았던 거구나’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상처는 그 고통이 너무 커 감히 어쩌지 못해 애써 모른 체 무시하다 정말 그대로 잊고 살아가기도 한다.
아마 작가는 후자를 염려했던 것 같다.
“그 시절에서 더 멀어지기 전에, 그래서 전혀 할 말이 없어지기 전에, 그때에 대해 뭔가 써놓고자 하는 욕망이 나 자신을 넘어가버린 것 같다.”
여기에는 어떤 마음이 깃들어있을까.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상처받은 그 일에 대해 초연해진 상태로 글을 쓰기 싫었다면, 아직도 그 일을 상기하는 것만으로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들면서 기어이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의 상처를 가늠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가슴이 저릿하다.
‘십삼 년’
작가를 더 이해하게 만든다. 이쯤 지났으면 극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시간에 대한 믿음. 누구의 편도 아닌 공평해 보이는 시간이, 공정한 물결이라는 시간이, 야속하게도 때로는 상처를 잊을 수 있는 망각이라는 축복을 앗아간다.
아픈 상처를 미쳐 다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쓰는 건, 진실에 도달하겠다는 집념처럼 보인다. 왜 그렇게 아팠는지, 아파야 했는지, 아플 수밖에 없었는지. 당시에는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자세히 보지 못했던 그 일들에 대해, 결코 잊을 수 없는 낙인처럼 자리한 그 상처를 이제는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모두 사람에게는 상처를 마주하기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단 걸 잘 알고 있다. 그 고통의 감각을 고독하게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작가는 자신의 상처에 책임지려는 성숙한 태도를 갖기 위해 십삼 년이라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지불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독자인 나로서는 그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덧붙여, 외딴 방의 소설 속 주인공에게 (아마 작가가 자신을 투영한 것 같지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상처를 지니고 살아간다고.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고. 하지만 마음의 상처가 있어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고. 사람들은 저마다 석연치 않은 뭔가를 몇 개씩 끌어안고 살고 있고 그게 정상이라고…
아마 나는 작가가 행복하기를 책을 읽는 내내 바랬던 모양이다.
# 책 외딴 방은 서두에 이 글이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쯤 될 것 같다는 고백을 하며 작가 자신의 삶이 많이 반영되었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