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사랑하지 않겠다

사랑의 만트라

by 리을의 생각



돌이켜보면,

내게 있어 사랑의 ‘원형’은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의 도서관에서 탄생된 것 같다.

좋아하는 같은 반 친구를 혹시 볼 수 있을까, 늦잠도 자지 않고 열심히 출석도장을 찍었다. 물론 그땐 그런 내 감정에 대해 이름을 붙일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냥 자꾸 보고 싶었고 보고 싶으니까 보러 갈 수밖에 없었다. 아마 사람은 진짜 좋아하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행하게 되는 것 같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가 먹듯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서점을 찾아가듯이, 누군가를 좋아하면 자꾸 그를 보러 가게 된다.


하지만 좋아하는 그가 매일 도서관에 온 건 아니었다. 어떤 날은 내가 기다리다 지쳐 도서관에서 나올 때쯤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이레씩 오지 않은 날도 있었다. 아마 그를 볼 수 있던 날보다 그렇지 못한 날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늘 도서관에 갔던 것 같다. 혹시나 오늘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 기대가, 상대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을 그 마주침의 순간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먼저 배운 사랑의 형태는, 아마도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고백을 하진 못했다. 당시 난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 전학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어렸던 당시에도 나는 그에게 ‘떠날 사람’이라는 감각을 품고 그에 따른 책임을 느꼈던 것 같다. 서로를 아프게 하는 인연이라면 멀어지는 게 예의라는 말이 불현듯 떠오르는데, 설령 그가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해도, 나는 스스로를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해 버렸던 것 같다.


사랑의 형태는 자신의 체험이 아닌 타인을 보며 발견할 수도 있다. 고등학교를 남녀공학으로 진학했는데, 잘생긴 남자애들이 많았었다. 가끔 그 시기에 함께 놀던 친구들 여럿이서 만나면, 주변 고등학교 친구들도 섞여 만날 때가 있다. 그러면 종종 나오는 말 중 하나는 확실히 우리 학교는 남자애들이 잘생겼다는 말이 자주 나왔다고 하는 걸 보면 지금의 내 회상이 영 객관을 잃은 건 아닌 것 같다.


나에게는 참 좋은 친구였지만, 여자친구에게 쌀쌀맞게 굴던 한 친구를 가끔 떠올린다. 그 커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누가 봐도 여자가 더 좋아해서 쩔쩔맨다고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친구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때도 나에겐 그 모습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난 차라리 남자가 여자를 더 좋아하는 형태의 사랑이 설령 균형을 잃더라도 지켜보기에 마음이 더 편한 것 같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랑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작품 「단순한 열정」에서 나오는 묘사와 가까울지 모르겠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권력의 다툼이다.’ 누가 더 사랑하는가? 누가 더 기다리는가? 누가 더 집착하는가? 그녀는 사랑의 관계를 끊임없는 힘의 교환으로 바라본다. 그녀의 시선으로 사랑을 따라가면 꼭 내가 마주하게 되는 문장이 있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 은밀한 본성에 따라 언제나 무한한 것을 원하기 때문에 적당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법이다 “

_슈테판 츠바이크 「초조한 마음」


그리고 내가 내린 사랑에 대한 만트라가 있다.

누군가를 불안하게 만들어서 누릴 사랑이라면, 차라리 사랑하지 않겠다. 나는 상대에게 그런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다.


흔히 말하는 ‘밀당’이란, 결국 사랑의 이름으로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자신의 인기를 은근히 과시할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연락을 줄일 수도 있다. 그것은 보통 자신의 힘을 조절해 상대를 불안하게 만드는 양상이다. 물론 그런 조절이 상대를 자극시켜 사랑이라는 욕망을 더 화려하게 채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애태우거나 불안하게 만들 여지가 있다면,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소진시키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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