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동물을 버리지 않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by 리을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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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강아지의 평균 수명은 15년에서 20년 정도이다. 그러니까 대략 반려동물들의 1년을 사람의 7년으로 계산하는 편의상의 계산이 얼추 맞는 셈이다. 그리고 우리가 소셜 네트워크의 사진이나 영상에서 접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굉장히 어릴 때의 예쁜 모습들이다. 아마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아이들이 처음 부모님을 조를 때에는 이 모습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반려동물들도 늙는다. 세바시의 강연자는 반려동물의 늙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 반려동물이 늙으면 내가 병든 할아버지 할머니를 수발들듯이 그렇게 돌봐야 되는 시간이 굉장히 길어요. 그러니까 동물들은 이쁠 때는 진짜 잠깐이에요.”


“차라리 한 살 두 살 때 버려지는 아이들은 다른 곳으로 입양 가서 잘 사는 경우를 많이 봐요. 문제는 7살 8살까지 키우다가 버려졌을 때 이미 늙은 이 아이들이 다른 곳에서 과연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런데 얘네는 자기가 살아온 날 만큼을 또 다른 데서 살아야 해요.”


이제껏 도의적으로 윤리적으로 반려동물을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거나, 그런 행위를 비난했지만, 정작 그 후 버려진 동물들의 삶의 이면까지 관심을 가지진 못했다. 그리고 동물병원 원장으로 늘 동물들과 함께한 강연자의 통찰은 차가운 진실이라는 말에 어울린다.


“ 어린 강아지가 어른이 되고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을 배우는 것 같아요. 내가 나이가 들면 저렇겠구나. 누군가에게 이런 존재가 될 수 있겠구나. 혹은 내가 이런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상대에게 이런 배려를 해줄 수 있겠구나. 오히려 반려동물들이라는 다른 존재를 보면서 ‘사람’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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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입양률과 파양률이 늘었다고 한다. 자신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반려동물을 입양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집을 떠난 긴 시간 동안 홀로 남겨질 아이들의 외로움은 상상해보지 않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상상력의 부재는 폭력적이다. 그리고 그건 대게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않는 나약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홀로 있는 자신이 외롭다면 그래서 누군가를 원할 때, 그런 자신의 상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면 - 설령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나약함을 마주한다고 해도 -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결국 용기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비겁함을 인정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그런 자신에 대한 이해는 나와 다른 존재들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게 된다. 나와 다른 상대의 입장에 대해 더 상상할 수 있게 해 준다. 되려 자신의 나약함을 마주할 용기 없는 사람들은, 끝내 자신의 나약하고 비겁함을 애써 가리고 숨긴 채 상대에게도 위악을 부리는 사람으로 남고 만다.


긴 시간 홀로 남겨진 아이들의 심리상태와 건강이 좋을 리 없고 자연히 문제가 발생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파양하는 사람들의 행태가 잦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 한편이 답답해지곤 한다. 왜 그들은 자신은 홀로 있을 때 적적했으면서, 아이들의 외로움과 괴로움은 상상하지 못했을까.


동물을 버리는 사람들은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작가의 진단은 자꾸만 나를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그리고 이내 내 안에 침전되었던 한 문장과 연결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 사랑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_파울로 코엘료


이 글을 쓰는 내내 12년째 함께하고 있는 반려견인 ‘노루’를 떠올렸다. 결국 내가 기억하는 노루와의 추억과 실제 내가 노루에게 했던 것은 똑같지 않을 것이다. 나는 노루에게 생각보다 더 무심했고, 생각보다 더 무책임했으며, 생각보다 더 그를 외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가끔은 누군가의 생에 흔적을 남기는 게,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 빠지게 된다.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_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내가 더 여유가 많을 시기에는 산책을 꼭 시켜주려 했는데 어느새 노루도 나이가 들고 나 역시 바빠지면서 예전처럼 산책도 나가지 못한다. 그나마 노루가 좋아하는 닭가슴살을 하루에 두 번 사료에 섞어준다. 닭가슴살도 싼 냉동 닭가슴살은 맛이 없고 냉장 닭가슴살을 당일에 구우면 훨씬 맛있다. 사람인 내 입에도 맛있으니 노루의 입에는 오죽할까 싶어 어쩌면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한 면피로 늘 사료에 그 닭가슴살을 섞어준다.


노루에게 늘 마음이 쓰이는 건, 가족들이 있어도 노루가 집에서 찾는 건 늘 나이기 때문이다. 아마 노루가 어렸을 때 대부분의 산책을 내가 도맡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강아지들에게는 산책이 필수일만큼 중요한 행위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노루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간들은 밖에 나가 흙내음새를 맡고 다른 강아지들을 구경하며 세상의 온갖 소음과 공해를 온몸으로 느꼈을 그 순간들이지 않았을까. 나에게는 찰나의 시간이고 사실 그리 강렬한 기억도 아닐 텐데, 노루에게는 큰 행복이었을 거라는 추측을 하면 나라는 사람이 한없이 싫어지기도 한다. 내가 마음에 짐이 있는 건 내가 의무감에 한 그 산책 역시 최선을 다하진 않았다는 걸 알고 있고 보다 많은 시간을 노루와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반려동물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지인과의 접촉도 줄이는 게 공정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는 나만 보고 있는데, 약속이 많다는 이유로 계속 집을 비운다면 아마 그는 자신이 데려온 그 아이를 진정 사랑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의 한정된 재화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결국 사랑의 척도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은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을 쓰는 사람은 그 누구도 특별하지 않은 것이다. 이럴 때면 꼭 ‘모두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이 떠오른다.


정말 마지막으로 마무리할 문장이 떠올랐다. 오늘은 집에 가면 오래도록 노루를 바라보고 싶다.


“사람이라는 건 어이없이 죽어버리는 거야. 사람의 생명이라는 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취약한 거야. 그러니까 회한이 남지 않도록 사람과 접촉해야 해. 공평하게, 되도록이면 성실하게.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사람이 죽으면 간단히 울면서 후회하곤 하는 인간을 나는 좋아하지 않아. 개인적으로”

_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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