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잊어버릴 거라면

나만의 글쓰기 프로세스

by 리을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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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는 기본적인 포맷은 수집한 문장들 중 ‘이쯤 되면 써도 되겠다’라는 어떤 실감을 받은 문장을 선정해 그에 대한 내 사유를 담는 형식이다. 내가 책을 읽으며 수집한 문장도 있지만, 유튜브 쇼츠나 영상을 저장해놓기도 하고, 인터넷 기사나 잡지에서 소스를 얻기도 한다.


일단 하루를 기준으로 허브노트를 만들어 그날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저장한다.

여기에 내가 감명받은 모든 문장과 영상, 감정과 생각이 저장된다. 여유가 없어도 최대한 특징을 지어서 단어위주로 파일명을 만들어 저장한다.


예를 들어 오늘 영화 데몰리션의 쇼츠를 보고 이 영화는 나중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쇼츠의 링크를 허브노트에 저장하였다. 바쁘다고 링크만 저장해 놓으면 나중에 다시 보게 되지도 않을 뿐더러, 그때 왜 저장한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메모의 이유를 다시 상기하는 불필요한 작업을 반복해야 하고 그때 왜 그랬는지 떠오르지 않는 불상사도 많다. 그래서 내 경우에는 두 단어나 세 단어 정도를 언더바로 묶어 저장한다.


영화 / 데몰리션 과 같은 큰 틀은 파일 내 태그로 넣으면 분류되기에 파일명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파일명은 보다 나의 기억과 감성을 건드릴만한 대명사 위주로 만든다. 데몰리션 쇼츠의 경우, 사랑_증오_배신 과 같은 제목으로 빠르게 저장하고 그 안에 링크와 왜 보고 싶었는지 같은 질문 한 두 가지 정도를 삽입한다. 나는 이런 저장 하나를 ‘파편’이라고 부른다.


요약하자면 파편의 파일명은 ‘나의 언어’로 파일 내 태그는 ‘객관적 분류’로 나눈다.


하루를 마감할 때 허브노트를 보며 이 파편들 중 내 생각이 깊어지거나 질문이 떠오르는 파편은 ‘사유’로 분류한다. 사유들이 쌓이면 나의 ‘관점’으로 다시 이동해 분류하고 이 관점들이 모이면 글이 완성된다.



결국 이 5가지의 경로로 내 글쓰기 프로세스가 작동한다. 이 프로세스의 핵심은 파편에 대해 바로 글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편 중 일부는 바로 사유나 관점으로 이동되기도 하고, 그대로 파편에 머물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까먹은 채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불현듯 허브노트를 기록하다, 전에 저장해 놓은 그 파편과 맞닿는 지점이 생겼다는 걸 느끼게 된다. 나는 이 연결을 ‘이제 글로 써도 되겠다’는 나만의 생생한 기준으로 삼는다.


파편들을 응축시키고 그것들에게 시간이라는 양분을 주면, 무엇에 대해 바로 글을 쓸 때보다 조금은 더 깊이 있는 글이 써지게 되는 것 같다. 단순히 좋았다, 싫었다는 피상적인 감정이나 단편적인 현상과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여러 재료들과 어우러지며 발효된 나만의 ‘고유한’ 감정이나 통찰이 나오는 데 더 용이해진다. 재료에 대해 즉각적으로 쓰면 비교적 타인의 언어를 그대로 쓴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나의 생각을 나만의 글로 표현하고 싶다. 무엇보다 시간이 나를 대신해서 불필요한 많은 것들을 덜어준다.


응축의 과정을 나는 평론가 신형철 식 표현을 빌려 ‘끝까지 판단을 보류한다’고 말하고 싶다.


문학이 귀한 것은 가장 끝까지 듣고 나중에 판단하기 때문이다.”

_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허브 노트로는 메모 어플 중 하나인 ‘베어앱’을 쓰고 있다. 나에게 중요한 건 직관성, 편의성, 툴의 심플함이었다. 베어는 복잡한 걸 싫어하는 나에게 좋은 시스템이다. 무엇보다 간편하게 태그하고 분류할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유년기부터 정말 책을 좋아하고 다독한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 큰 허브노트가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노트에는 각 영역별로 큰 줄기들을 이미 만들었을 텐데, 이 줄기들을 일찍 만든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취합하거나 저장하는데 굉장히 유리하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도 자신만의 줄기를 통해 외울 것과 외우지 않을 것을 구분하고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 이 정보의 위치를 능숙하게 파악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에세이에서 자신만의 저장법을 소개했는데 확실히 범인의 범주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말 그대로 ‘머릿속’에 저장한다고 한다. 이를 ‘머릿속 내 캐비닛’에 저장한다고 비유했는데, 분야별로 자신만의 분류 체계가 있다고. 그건 아마 청소년기부터 많은 책을 읽으며 쌓은 자신만의 시스템일 것이다. 책을 한 번 읽은 뒤 헌책방에 다시 팔아버린다는 것도 그는 보통의 책을 읽은 뒤에 자신만의 줄기로 버릴 것과 남길 것을 빠르게 분류하고 핵심만 저장하는 능력이 - 비교적 정확한 시야로 정보를 분류하는 - 특화되었기에 다시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확신 속에 나온 행동일 것이다.


그러니까 되려 이런 메모 프로세스를 잘 활용해야 하는 건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일반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공부를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많은 독서량이 동반되지 않은 사람들은 새로운 책을 읽었을 때 그것의 위치나 의미를 추출하기도, 또 분류하기도 힘들다. 기존의 지식체계가 미약한 탓에 비교 및 대조군이 부족해 자연히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내가 아무리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해도 나는 하루키가 될 수 없다. 내가 될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캐비닛을 확장해 간다. 그리고 혹시 나처럼 긴 시간을 어떻게 정보들을 저장할지 고민한 사람들에게 이 정보가 조금은 유용한 참고가 될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시험이 끝난 뒤 ‘합격수기’를 작성하곤 한다. 그리고 그건 ‘무엇을 하면 좋았다’의 느낌보다는 ‘나는 이런 시행착오가 있었으니 내 뒤의 사람은 이런 피해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선의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선의의 순환’을 믿는다. 혹 나처럼 뒤늦게 독서와 글쓰기의 재미를 깨달은 사람이 있다면 이런 저장법이 좋은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면서 보고 느끼는 대부분의 것들을 잊어버린다. 그렇기에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런 저장법이 있을 테지만, 사실 모든 걸 완벽하게 정리하기란 인력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럴 땐 하루키의 이 한마디가 내게 심심한 위로가 된 것 같다.


어차피 잊어버릴 거라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니, 상관없습니다.”


결국 노력해도 과거를 모두 저장할 수도, 기억할 수도 없다.

다만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에 쓰고 있는 것

왠지 키티 선생님의 ‘카르페 디엠’이 귓가에 맴도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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