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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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본래 좋아했던 작품이 실은 또 다른 작품을 오마주 하거나, 많은 부분을 참고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물론 그런 발견의 대부분은 작가가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 아니라, 독자로서의 직감에 가깝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연결을 스스로 알아차릴 때마다 큰 기쁨을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가 사랑한 이야기들이 어딘가에서 서로 닿아 있다는 감각.
이 감각을 나는 이문열의 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싶다.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속에서 다양하면서도 잘 정리된 전범이 있어야 한다.”
_이문열,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 1」
흔히 말하는 고전 작품들은 아마도 수많은 작가들에게 전범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좋은 고전은 세련된 틀과 형식을 제공한다. 그것을 능숙하게 차용할 수 있다면, 작가는 남은 여력을 자신만의 인물과 세계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 또 하나의 연결점을 발견했고, 팀 버튼의 「가위손」이 많은 이들에게 하나의 전범이 되었으리라 감히 확신하게 되었다.
가위손의 주인공 에드워드는 한 발명가가 만들어낸 미완성의 인조인간으로, 인간의 감정과 용모를 가졌지만 인간은 아니기에 늙지 않고 평생을 살아가는 존재다.
그는 킴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끝내 이별한다. 할머니가 된 킴이 에드워드를 회상하며 남긴 이 한마디는, 내게 김철곤 작가의 소설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그가 예전의 내 모습으로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_가위손 「킴」
“당신은 여전히 그대로군요. 미안해요, 평생 당신 곁에 있어주지도 못할 거면서 당신을 힘들게 했네요.”
_SKT 「영생을 사는 지스를 사랑한 소녀」
에드워드와 『SKT』의 지스는 모두 영생을 사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누구보다 고독할 수밖에 없는 아웃사이더들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주변의 모든 것을 잃어가며, 끝내 홀로 남는 존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이야기들을 보며 느낀 감정은 연민만은 아니었다. 사실 내 안에는 오래전부터 유미주의에 대한 불편함, 어쩌면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 존재해 왔다. 「가위손」의 킴을 보며 느낀 감정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늙은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킴의 태도는 배려가 아니다. 그것은 에드워드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늙고 추해진 자신의 모습을 그의 시선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에 가깝다.
에드워드는 그녀가 늙어가는 것을 개의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킴은 그 가능성을 묻지 않았다. 그녀는 에드워드의 사랑을 믿지 못했고, 더 정확히 말하면 늙은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못했다. 그 비겁함이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말로 포장되었을 뿐이다.
나는 왜 늘 남겨진 자들에게 시선이 가는지 알지 못한다. 시간 속에 홀로 남겨진 존재들이 자꾸만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런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 연결점을 언젠가 발견하길 바라며 이야기들을 계속 읽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끝으로 떠오른 한 문장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어떻게 당신이 나이를 먹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