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숙하게 이별하기

아쉬움 없이

by 리을의 생각

늘 기억과 감정, 정보들이 저장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느낌이 드는 게 마음에 걸렸다.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다 알게 된 동생이 일주일 단위로 자신의 일상을 블로그에 올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차곡차곡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모으는 그 모습이 참 멋져보였다.

몇 년만에 다시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하다 여전히 블로그에 자신의 일상을 보관했다는 말을 듣고 내심 부러움과, 한편으로 늘 바쁘게 살던 동생이 그 결실을 맺듯 더 멋있어 졌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나는 멋진 걸 알아보는 좋은 눈을 가졌기에, 주저없이 따라하기로 결심했지롱. 스마트폰으로 찍는 일상들은 블로그에 올리고, 내가 노트에 기록하는 것들은 바인더에 보관하려고 고쿠요 루즈리프 노트와 바인더도 구매했다.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쉬움 없이 맞이하게 되길 바랍니다.”

_허준이 「카이스트 축사」

나도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해 왔지만, 능숙하게 ‘안녕’이라고 말했던 때는 거의 기억에 없다.

_무라카미 하루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만남이 있으면 당연히, 헤어짐은 예정되는 것이지만 늘 마지막을 잘 보내는 것은 어렵다.


‘피크앤드 법칙’을 떠올릴 때면, 그리고 이제는 경험적으로, 응당 첫 만남보다 마지막을 더 신경 써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마지막을 예의있게, 서로에게 회한이 남지 않도록 공정하게, 약간의 아쉬움이 남도록, 그런 안녕을 정말 내가 한 적이 있을까. 그리고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마침내 내가 이별해야 할 존재는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가 나에게 줄 최고의 선물이 딱 하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쉬움 없는 하루’ 들을 살아내는 것. 그리고 그건, 내가 해야할 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똑부러지게 해냈다는 실감이 있을 때 가능한 것 아닐까.


내게 이 실감을 선사하기 위해, 나와의 마지막 작별을 잘 해낼 수 있게, 이제 나는 내 삶을 기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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