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아이

by 리을의 생각



남에게 해를 끼칠 능력이 없어서 착한 것은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나약함일 뿐이다
진정한 미덕은 누구보다 날카로운 칼과 압도적인 힘을 통제하는 괴물이 되는 것
그것이 진짜 어른이고, 진짜 강함이다

_조던 피터슨 「질서 너머」


조던 피터슨의 책을 몇 년 전에 두어 권 정도 읽었는데, 한마디로 그를 정의하자면


냉철한 이성을 가진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자 삶의 자세였다.
설령 아무리 극심한 고통이 닥친다 해도 나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아는 것을 통해서만 인간은 강해질 수 있으니까

_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조던 피터슨 -> 무라카미 하루키


여기서 나는 문득 ‘피터팬’까지 연결되는 어떤 사유의 흐름을 강하게 느꼈다.

절대 작별인사는 하지 마, 작별은 떠남을 의미하고, 떠남은 잊음을 의미하니까
_영화 「피터팬」


​피터팬의 교훈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영원히 아이로 남는 것이 아니라, 아이였던 나를 데리고 어른이 되는 것’

하루키의 인물들은,

어른이 되었지만, 자라면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끝까지 따라가는 존재”

하루키와 피터팬과의 차이는 이 지점이다.

네버랜드에 머물지 않고, 모르는 상태에 머무르지 않으며, 세상을 현실적으로 통과한 인물들.

조용하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어른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

우리는 결국 아이로 남을 수도 없고, 괴물로만 살 수도 없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 감각을 잃지 않으며,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며 살아간다.

돌이켜보면, 성인이 되기 전부터 내 안에는 ‘어른’을 알아보는 눈 혹은 기준이 미세하게 존재했다.

내가 본 어른들은, 큰소리로 주장하지 않고, 도덕적 우위를 선점하려 하지도 않는다. 타인에게 호감을 사려 애쓰지 않는다.

하루키의 주인공들이 꼭 그렇다.

상처를 받았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마주했을 때,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다.

다만 조용하고 정확하게, 따라간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깊이까지.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자신의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 상처를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고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자신의 선택을 타인이나 구조의 탓으로 편리하게 설명하며 자위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한창 선생님들에게 영향을 받을 시기인 학생일 때에도,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학교 선생님들을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솔직히 말해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그 당시 고등학생인 나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그리 어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하루키를 좋아했던 건, 내가 진심으로 그를 ‘어른’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인 그를 유독 사랑한 이유는, 그가 어른이면서 동시에, 순수한 아이의 시선도 끝내 놓지 않는 따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피터슨의 괴물은 하루키였구나. 또 하나의 연결을 찾아내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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