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의 빛

평생동안 해야만 하는 질문이란

by 리을의 생각


본인의 메시지가 명확한 사람은 빛이 난다.


그리고 그 빛은 반복에서 나온다.

전부터 느꼈지만 한 작가가 일생 동안 말할 수 있는 주제—혹은 메시지는 생각보다 제한적이다.


작품들을 모아놓고 보면 결국 어떤 하나의 테마로 귀결되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작가를 “문장”이 아니라 “질문”으로 기억하게 된다.


줄리언 반스의 테마는 ‘기억’이다.

우리가 붙잡고 사는 인생의 기억은, 정말로 사실에 기반한 걸까?


그는 이 질문을 수십 년 동안 반복해 왔다.

반스는 기억이 왜곡되는 지점을 파고든다.

그는 기억을 ‘이해’하려는 작가이고, 기억이 사실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감정과 태도에 의해 재편집된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한다.


하루키는 반스와 조금 다르다.

반스가 사라진 것을 기억으로 복원하려 한다면,

하루키사라진 뒤에 남아 있는 공기를 담백하게 묘사한다.


하루키는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사건 이후의 세상과 자신을 배치하고,

끝내 남아 있는 감각들을 관찰한다.

그래서 그에겐 설명되지 않는 공백이 허용된다.

관찰자로서의 그는 모든 감각과 기억을 이해할 수 없고,

그저 ‘견디는 것’의 위치에 머문다.

그리고 이 여백이 그를 자연스럽게 존재하게 도와준다.


내가 끌리는 작가들의 테마에는 어느 정도 교집합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교집합이 이제 조금 더 “나”에게 가까워졌음을 실감한다.


이제 궁금해지는 건,

나는 어떤 질문을 끝내 놓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사랑이 뭘까요, 시가 뭘까요, 죽음은 뭘까요
이런 질문들은 ‘여름이 왜 오는지’ 묻거나 ‘겨울 전나무가 왜 아름다운지’ 묻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기에는 답이 없고 반복만 있어요.
그러나 이 반복은 집요해서 아름다워요
_고명진 「너를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잠을 자듯이, 혹은 꿈을 꾸듯이 우리는 사랑에 빠져든다. 질병처럼 사랑은 경험된다. 몸으로 겪는 일이다. 이 일을 하는 동안에는 머리로 뭔가를 헤아릴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사랑에 빠진 두 사람에게는 시간도 흐르지 않고 과거도, 미래도 없다. 그러나 그 사랑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 될까?
줄리언 반스는 평생에 걸쳐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소설을 써왔다.
오래전, 스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연상의 여인과 위태롭게 사랑한 일을 되돌아보며, 그는 사랑과 기억의 상관관계를 탐구한다. 파국에 이른 모든 사랑은 기억으로 바뀐다.
모든 기억은 하나의 이야기다. 우리는 평생에 걸쳐 이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는 사실을 줄리언 반스는, 그리고 이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_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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