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지

몰락한 자를 사랑한다

by 리을의 생각

유튜브 채널 「비즈까페」




삼국지를 여러 번 읽었고 유비를 오래 좋아해 온 사람으로서, 유비를 ‘냉철한 설계자’로 보는 시선은 이제 익숙하다. 내가 본 글 역시 유비의 선의를 ‘정교한 설계’라고 불렀다. 동의하는 대목이 많았다. 그런데 동시에 그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구석이 남는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선의를 계산적으로 활용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말이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계산은 사람을 움직일 수는 있어도, 사람을 오래 남게 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던 유비 곁에 늘 사람들이 모이고 남았다는 사실은, 적어도 내게는 그가 사람을 철저히 계산으로만 대하지 않았다는 인상으로 남는다.


물론 유비가 자신을 ‘선’으로 보이게 하는 정치적 감각을 가졌다는 사실까지 부정하고 싶진 않다. 다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이상하리만치 그의 마지막 장면에서 시선이 오래 머문다. 그의 삶이 완전히 계산된 설계였다면, 끝까지 설계를 유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비는 마지막에 그 설계를 놓친다. ‘선의’라는 얼굴로 강대한 제후들 사이에서 참고 또 참아온 사람이, 관우의 죽음 앞에서는 끝내 그 얼굴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지점은 바로 그 몰락이다. ‘선의’라는—때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방식으로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 올린 입지와 신뢰를, 그는 복수라는 선택으로 스스로 무너뜨린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곁을 지킨 관우의 죽음 앞에서, 정치가로 오래 연습해 온 유비의 ‘선의’라는 얼굴은 더는 유지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균열이 유비를 내게 더 입체적인 사람으로 남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유비를 한 장의 평가로 단정 짓고 싶지 않다. ‘선의’는 유비에게 전략이라기보다, 열악한 기반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삶의 방식이었다. 설령 그를 위선자라 평가한다 해도, 나는 그의 위선이 좋다. 결국 위선은 그가 끝까지 지키려 했던 그의 얼굴이자 최소한의 기준이었으니까.


그런 그의 마지막의 몰락은 그가 누구보다 인간적이었다는 잔상을 남긴다.


“완벽한 건 그다지 매력이 없잖아.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지.”
_존 버거 「A가 X에게」


선한 일을 작다고 아니하면 안 되고
악한 일을 작다고 하면 안 된다
_유비가 그의 아들에게 남긴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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