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배우

마음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없다면

by 리을의 생각


잘하지 못하지만 ‘척’하면서 살아왔다
_최강록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사람

“재도전하길 잘했다”가 아니라 “재도전해서 좋았다.”

결과에 안도하기보다는, 과정의 기쁨을 놓치지 않는 사람


그는 요리 서바이벌을 설명할 때 시종일관 ‘가상공간’이라는 말을 쓴다.


이 경연이 요리사로서의 절대적인 실력평가가 아닌 단지 TV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킨다.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내가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내 배역을 잘 연기했더냐? 그렇다면 기쁜 목소리와 박수로 이 배우에게 찬사를 보내다오.
_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삶을 연극으로, 자신을 배우로 상정하면,

탐욕, 질투, 증오 같은 감정도 ‘나의 본질’이라기보다 ‘지금 이 장면’이 된다.


그러면 감정을 조금 더 쉽게 가라앉히고,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음으로 배역을 마치는 배우들이니까. 그렇다면 ‘가상공간’은 도망이 아니라 안정감을 주는 최소 장치일 수 있다.


다만 그 규율이 오래 지속되면, 자연스러움을 억제하는 장치로 변질될 수 있다


거리를 두면 사람은 나이스해진다. 말과 태도는 매끈해지고, 판단도 냉철해진다.

그런데 그 나이스함은 정말 ‘진실한 나’에 가까운가?


내가 떠올리는 진실성은 두 겹이다.

하나는 자발성이다. 그 순간의 솔직함, 억제하지 않은 반응.

다른 하나는 취약성이다. 나의 약한 부분을 드러낼 수 있는가


물론 그게 가능한 건, 내가 약한 부분을 드러내도 상대가 그것을 무기 삼아 힘을 휘두르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을 때다.


결국 ‘가상공간’이라는 인식은 자발성과 취약성 모두를 억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그래서 더 나이스해질수록, 내가 지킨 것이 진실성인지—그저 역할의 완성도인지가 흐려진다.


마음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없으면 사랑도 대개는 권태롭기 짝이 없는 의무가 될 뿐이다
_스탕달 「적과 흑」


내가 연애프로에 나간다면, ‘가상공간’이라는 인식은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감정을 과열시키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지금 이 장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고르기 쉬워진다.


그렇다면 내 나이스함은 상대를 위한 절제인가, 내 취약함을 숨기는 연출인가. 이 질문이 오래도록 내 곁을 맴돈다.

작가의 이전글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