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와 능력주의
*Point 1. 봉준호 감독 <기생충> 인터뷰*
“영화가 주로 사회 이슈, 계급 불안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사실 그 부분이 크다. 젊은 세대의 미래에도 사회나 계급 격차가 과연 좋아질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 있다. 아들 키우는 사람으로서 불안감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한국 사회에 ‘혁명’이 시작되는 것을 표현한 것인가.”
“오히려 세상이 혁명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혁명이란 것은 뭔가 부서트려야 할 대상이 있어야 되는 것인데, 그게 뭔지, 혁명을 통해 깨뜨려야 되는 게 뭔지 파악하기가 힘들고 복잡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것 같다."
(...) 즉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은 없었는데, 무서운 비극이 터졌다.
*Point 2.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오를 만나러 가다 中*
“반항을 하고 싶어도 반항할 만한 것이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무라카미 씨의 젊은 시절에는 젊은이들이 비교적 쉽게 ‘반항할’ 상대를 찾을 수 있었다. ‘체제’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반체제’의 형태를 취하는 것.
현재의 상황은 ‘체제’나 ‘반체제’를 통해 쉽게 찾아낼 수 있는 단순한 형태가 아닙니다.
*Point 3. 유시민 작가 MBC 대선토론 中*
“기성세대에게 답을 구하지마라, 어차피 모른다.”
“청년들이 부딪히고 답을 찾아야 한다.”
“ 매 세대는 그전 세대보다 훌륭했다. 더 똑똑하고 더 많이 배우고 더 진취적이고 더 창의성이 강하다. 우리 현대사가 그렇다. “
현대 사회의 키워드 중 하나인, '평균의 실종'. 동양 사회의 미덕이었던 ‘중용’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중간을 지향해서는 점차 살아남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 이제 시장에서 무난한 중간을 겨냥해서는 힘들다는 분석이다. 초고가의 명품 시장과 편의점 도시락 같은 가성비 상품의 수요는 증가하고 평균적인 대중시장은 위축되는 추세이다.
요약하자면 소비에서 '양극화 현상' 이 발생하고 있는데, 비단 시장에서만의 문제가 아닌 듯 하다. 소비양극화 이전에, '소득양극화' 현상은 이미 세계적으로 만연하고 있다. 이런 소득양극화 현상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갈등과 불안정성을 야기한다. 유사 이래 사회적 불평등은 언제나 존재했다. 혁명을 거치며 신분으로 명시화 되는 시대는 지났지만 오늘날에도 분명한 계층선이 존재한다. 최근의 인기 드라마와 영화 ‘스카이캐슬’, ‘더 글로리’, ‘기생충’을 보면 이 계급 사이의 격차에 대해 열실히 드러내고 있다.
‘혁명’이 존재하던 시기와 오늘날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봉준호 감독은 혁명의 대상이 모호해졌음을 말한다. 말하자면 예전에는 사람들이 화를 낼 대상이 존재했다. 지금 내가 불행한 이유는 “왕”이 무능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에게는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다’는 어떤 낙관론적인 믿음이 존재했고 무능한 왕이나 체제를 바꿈으로 이 믿음을 실현시키려 하였다. 과거에 존재했던 수많은 반란과 혁명은 대상이 존재했기 때문에 벌어질 수 있었다. 오늘날은 어떨까. 지구상에 군주나 왕이 존재하는 나라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냉전의 종식으로 체제 경쟁의 종말을 고했다. 이제 나의 불행의 이유가 ‘어떤 특정한 무엇’으로 지목할 수 없어진 것이다.
오늘날은 그 혁명의 대상이 ‘개인’에게 이전됐다. 바로 ‘능력주의’가 체제와 왕에 대한 불만을 대체하였다.
이제 오늘날 피라미드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행에 대한 이유와 책임을 온전히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내가 열심히 살아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건 구조나 소수의 지도자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어졌다. 마이클 샌델은 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 상황을 두고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하층민이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근거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왜일까, 왜 21세기의 지구는 이런 형태의 결과가 발생했을까.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라는 식의 말은 듣고 싶지 않다. 그보다 정말 '왜'인지를 알고 싶어졌다. 과거에는 부를 증식하는 방법이 가시적이었다. 생산과 약탈. 더 큰 영토와 인구가 필요했다. 다른 나라를 침략함으로 가능한 일들이기에 끊임없는 전쟁이 이어졌다.
오늘날은 경제적 구조가 변화했다. 돈이 돈을 버는 형태이다. 즉 ‘불로소득’으로 부를 증대해나간다. 부의 증식이 더이상 가시적이지 않다. 먼저 피라미드의 위쪽을 선점한자는 이 불로소득을 가장 크게 누리고 있다. 고 이건희 회장도 이 이치를 알고 있었다. 그는 과감한 투자로 ‘기회를 선점’할 것을 강조했다. 선진국들 역시 WTO에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협정'을 추가하려고 노력중이다. 이제 시간이 흐를수록 개발도상국과 후진국들은 선진국들이 만들어 놓은 경기장 안에서 이 격차를 따라가기 힘들어질 것이다.
선점한 기업들은 제품의 생산비용 대비 가격을 점점 높여가고 있으며, 자회사간의 거래를 통해 세금을 절세한다. 부동산 투기와 공격적인 코인, 주식 투자에 뛰어드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투기적인 방법’으로 부를 증대하는 게 오늘날과 과거의 차이점 중 하나이다. 이런 부의 증대는 곧 누군가의 손해를 유발시킨다. 당연한 이치이다. 정상적인 ‘생산과 소비’의 형태로 부를 증대한 것이 아니기에 누군가 폭리를 취한만큼 누군가는 손해를 보는 구조이다.
그리고 그 ‘손해’는 피라미드의 구조로 보았을 때, 밑으로 침전하게 되어있다. 투기적 행태는 결국 경제적 불안정성을 증대시키고 소비자 물가에 악영향을 끼친다. 누군가의 악의가 없더라도 흔히 말하는 '엔트로피'는 계속 발생되며 엔트로피는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으로 배출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거창하게 사회의 변혁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다만 사회의 구성원이자 개인으로서 어떤 입장이나 태도를 가져야할 지 한번쯤 고민해봐야 한다. 역사를 통해 우리가 깨달은 건, 한 순간의 무브먼트로 바꿀 수 있는 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조금씩, 그리고 서서히 끓는 점을 향해 올라가야 한다. 결국 '기다리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애써 보려 해봤자 오히려 더 난해해질 것 같다.
다만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자기 나름대로의 생활 스타일을 구축해 나가는 것' 일본의 심리학자 가와이 햐아오는 "거기서 또 다른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고 진단했다. 그는 반항의 형태로 사회에 대응하는 것이 아닌,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형태로, 기존 사회의 바닥을 개고 모습을 드러내는 청년들의 움직임을 기대한다고 말한다.
물론 자신만의 삶의 방식은 쉽게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으로서의 자아를 실현함과 동시에, 사회적 존재로 사회적 압력을 견디어 나가며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건강한 개인들이 많은 사회에서 엔트로피의 배출을 보다 현명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