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한 취기와 밤이 더해지면, 나의 또 다른 감성이 등장한다. 나는 이 기분을 나름 즐긴다.
마지막 학기 때 국문학과의 소설창작 수업을 수강했다. 내 의지로 선택한 몇 안 되는 수업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맨 정신에 글이 써지지 않았다. 나의 부족함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절대적인 독서량의 부족함이었다.
운동과 글쓰기를 놓고 비유하자면,
웨이트(=근력운동)는 독서고, 다이어트는 글쓰기다.
다이어트, 그러니까 글쓰기는 누구나 당장 할 수 있다. 결과는 바로 나타난다. 그러나 웨이트를 통해 근육량을 쌓아놓지 않은 다이어트는 밋밋하다. 결코 풍성할 수 없다.
이와 비슷하게 독서를 동반하지 않은 글쓰기는 양질의 결과물이 나오기 힘들다. 물론 지극히 나의 견해다.
나는 역사를 전공했다. 고등학교 3학년 내내 장래희망은 역사교사였다. 하지만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전문하사까지 하고 나와 졸업학기에 돌입했을 때 내가 깨달은 건, 내가 진정 좋아했던 건 역사 그 자체라기보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했음을 뒤늦게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중 역사학과를 전공한 작가들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일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정세랑
옛 연인에게 전하려고 적었지만 끝내 전하지 못한 일기를 보고 있으면, 내가 한순간에 늙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저런 글을 쓸 수 있었지, 내가 나에게 놀라는 순간들. 그렇게 14도의 와인은 나에게 또 하나의 추억을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