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오한 쾌락

by 리을의 생각

1) 인생은 기본적으로 불공평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불공평한 곳에 있더라도 거기에서 어떤 ‘공정함’을 희구하는 것은 가능하다


2) 확실히 인생의 어떤 부분은 운이라는 것에 지배당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얼룩진 그림자처럼 우리 인생의 지표를 어둡게 물들이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20km를 달리고 3km를 헤엄칠 정도의 꿋꿋한 의지라면 대부분의 트러블은 편의적인 사다리 같은 것을 사용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하지만 고통스럽다고 불행하진 않다. 나에게 있어 편안한 것은 행복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느끼는 것. 그것뿐이다. 돌이켜보면 마라톤 주자로서 달리기가 즐겁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있어서 달리기는 언제나 고통이었고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었다. 고통은 늘 그곳에 있었다. 고통은 바다의 파도와 계절의 변화처럼 예외없이 그곳에 있었다. 그녀에게 달리기는 두 종류 밖에 없다. 그럭저럭 고통스러운 것과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것. 다른 것은 없었다. 늘 그렇게 살아왔고 나는 지금 뛰고 있다.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의 특징 중 하나는 뭐랄까 크게 비범한 인물이 없다 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신체적, 지적 능력이 특출나다거나, 굉장한 미남이라던가, 재산이 많다던가 하는 뭐 그런 것.


그럼에도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런 특출날 것 없는 주인공들이 그들의 반복되는 일상을 ‘즐기고 있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반복적인 일상이 따분할 수도 있겠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중 되풀이 되는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아마 작가인 하루키는 경험적으로, 이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벗어날 수 없다면 매일을 구성하는 습관을 자신에게 유의미한 것들로 채우는 것이 상수라는 것을.


아마 작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주인공들에게 부여하기란 글의 리얼리티나 깊이가 훼손될테니 그 자신이 실제 삶에서 행하는 것들을 투영시켰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주인공들의 사소한 일상이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집을 청소하고 요리를 하며 남는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주말엔 다림질과 수영을 한다.


오해가 쉽게 생길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며 배 아파 할바에 눈을 감아버리자’는 식이 아니다. 쉽게 말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잘 가꾸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가장 심오한 쾌락을 맛본다는 지각을 깨달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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