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01 ~ 2022. 10. 10 (8일 차)
허지웅 작가의 글을 좋아했다.
최근에 나온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페이지 수가 줄어들 때마다 아쉬워서 아껴서 읽고 있었다. 여행에 가져와서 읽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좋아하는 부분은 책 초반에 나오는 장갑 이야기다.
추운 겨울에 할머니가 기차역에서 졸면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가 뒤늦게 기차를 탔다. 서둘러서 기차를 타서 자리에 앉아보니 기차역에서 졸던 자리에 장갑 한 짝을 두고 왔다는 걸 알게 됐다. 장갑 한 짝으로는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할머니는 미련 없이 밖으로 남은 한 짝을 던져버린다. 기차가 떠난 뒤 선로를 정리하던 역무원이 장갑 한 짝을 발견한다. 버리려고 주웠는데 역 내에 똑같은 한 짝 장갑을 보고는 선반 위에 가지런히 놓아둔다. 얼마 뒤 손을 호호 불어가며 기차역으로 들어온 소년은 주변을 두리번거린 뒤 그 장갑을 끼며 따뜻해한다.
간디의 신발 한 짝 이야기와 흡사하다.
이 부분을 읽고 나서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장갑을 던져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내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 게 제일 좋겠지.
게르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호스텔 숙소에서 머무른 뒤 공항으로 출발한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게르는 한국 캠핑장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여러 개 게르가 모여있었고 주변에는 산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오후에는 가이드님을 따라 산에 있는 사원을 둘러보고 휴식을 취한 뒤 숲으로 말을 타러 가기로 한다.
말을 타보니 낙타와는 다른 느낌이다. 조금 더 딱딱했다.
느린 속도에 맞춰 조금씩 말 등에서 익숙해질 무렵 별이 장갑을 떨어트린다.
말에서 내려서 장갑을 다시 주울 수 없어서 계속 간다. 별은 대수롭지 않게 괜찮다며 그대로 지나간다.
장갑 한 짝은 아무 소용없으니까 마저 던져버리라고 말하려다가 아무 말하지 않았다.
나라면 남은 장갑 한 짝을 이때다 싶어서 숲 속에 던져 버렸을 텐데.
게르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 아쉬웠는지 조금 길게 저녁 식사를 했다.
하늘은 여전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별은 보드카를 마시고 뻗은 이후로 얌전하다.
꽃은 여전히 야식을 만들어준다. 달과 잎은 이제 어색함이 다 풀린 듯 잘 웃는다.
밤에는 한결같이 추웠다. 난로가 있었지만 이 날은 난로가 영 시원치 않았다. 장작과 석탄을 충분히 넣어놔도 제대로 불이 옮겨 붙지 못했다. 마땅한 불쏘시개가 없어서 이리저리 석탄만 더 넣어본다.
불이 붙을 듯 안 붙을 듯 불안정하다.
난로 안을 이리저리 휘저어 주면 붙을 것 같다.
불이 살아있는 난로 안에 선뜻 손을 넣을 수가 없어 모두가 난감해한다.
별은 마침 장갑 한 짝 남은 게 있다며 장갑을 끼고 난로 안을 서슴없이 뒤적거린다.
장갑 한 짝을 잃어버리면 남은 한 짝을 던져야 할까 가지고 있어야 할까.
책을 읽고 나서는 던져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던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한 짝만으로도 소용없지 않다.
한 짝도 의미 있게 사용될 수도 있다고 나 혼자 생각하는 동안 별은 여전히 난로 안에 불을 붙이려고 애쓴다. 이날 밤 난로에 불은 결국 붙지 않았다.
그래도 따뜻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