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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뜰살뜰 구구샘 Jun 24. 2024

무심코 지나쳤던 마트 테두리의 비밀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

<도둑맞은 집중력>


제목 드럽게 잘 지었다. 작가가 내 방에 cctv를 달았을까? 나의 뇌는 인스타 릴스, 유튜브 쇼츠와 같은 숏폼에 절여진 지 오래다. 정신 차려 보면 좀비처럼 스크롤을 내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웹툰이나 게임은 끝이라도 나지, 이놈의 숏폼은 엔딩이 없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무한 스크롤로 내 집중력을 훔쳐간다.


이 책에는 도둑맞은 집중력을 되찾는 구체적인 팁이 나온다. 인스타 앱 지워라, 디지털 디톡스 해라, 대신 책 읽어라... 죄다 뻔한 내용이다. 그런데 문구 하나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나를 쳐다보는 게 아닌가?


"본래 음식이었던 것을 먹어라."


집중력 얘기 하다가 갑자기 웬 음식? 흠, 일단 좀 더 읽어봤다. 먹는 것과 집중력이 무슨 관계인데요?


1. 마트에서 식재료 살 때

2. 마트 테두리에 있는 재료만 사라

3. 마트 가운데에 있는 건 음식이 아니다


마트에서 파는 식료품 중 음식이 아닌 게 있다니!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자. 일단 가까운 마트에 들어간다. 카트를 하나 뽑자. 요새는 100원짜리 동전 안 넣어도 카트를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맨 처음 보이는 곳은 콩나물과 두부 코너다. 조금 더 가면 달걀이 있고, 다음으로 이동하면 채소들이 나를 반겨준다. 조금 더 이동하니 반딱이는 앞치마를 두른 이모님이 보인다. 오늘 저녁 반찬은 고등어 어떠냐며 미소를 건넨다. 애써 웃으며 발걸음을 멈추니 어느새 마트 테두리를 다 돌았다.


하지만 마트는 넓다. 아직 내가 탐험하지 못한 곳도 많다. 이번엔 마트 가운데 부분을 향해 가볼까? 시리얼, 통조림, 즉석밥 등 다양한 음식이 많다. 솔직히 딱 봐도 간편해 보인다. 그냥 전자레인지에 넣고 버튼만 누르면 짜잔! 하고 그럴듯한 한 끼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건 음식이 아니란다.


그러면서 음식과 집중력의 상관관계를 알려준다. 각종 예시를 들어서 신뢰도를 확보한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집중력은 장내 미생물과 관련이 있는데, 결국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위장 컨디션이 바뀐다는 거였다. 저자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병맛이라고 넘기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그의 주장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먹는 거랑 집중력이랑 정말 상관이 있을까? 내 경험을 떠올려 봤다. 나는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고로 점심엔 급식을 먹는다. 급식은 영양 밸런스가 완벽하다. 실력파 영양선생님이 식단을 짜주시기 때문이다.


재료의 질은 또 어떤가? 나는 군대 시절 부식창고에서 근무했다. 진해에 있는 해군 부대 30여 곳에 부식을 배달하는 일을 했다. 자연스레 군대에 들어오는 식자재가 얼마나 신선한지를 눈으로 봤다. 군대 부식 클라스가 이 정도인데, 하물며 자라나는 새싹들이 모인 초등학교는 어떻겠는가? 저자가 말하는 '본래부터 음식이었던 것'들이 가득가득이다.


1. 급식 먹은 날의 집중력

2. 급식 못 먹은 날의 집중력


이 둘을 비교해 보자. 교사가 급식을 못 먹는 때도 있냐고? 물론이다. 팡팡 터지는 학폭 업무 처리를 한다고 밥을 건너뛸 때도 있고, 멀리 출장을 갈 땐 급식 대신 편의점 레토르트 음식을 먹기도 한다. 이때 나의 집중력은?


생각해 보니 집중력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정녕 '음식 재료의 질' 때문이었을까? 그냥 출장 가서 피곤했던 건 아닐까? 저자의 말을 믿고 싶다가도 어쩔 땐 반박하고 싶다. 통조림 먹는 게 그렇게 별로예요? 스위트콘에 마요네즈랑 맛소금 뿌려서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게 얼마나 꿀맛인데요!!


'선풍기 켜고 자면 사망 위험'이라는 말은 뻥이라는 거 전 국민이 다 안다. 그럼에도 나는 잘 때 선풍기를 내내 틀어놓지 않는다. 2시간 타이머를 맞춰 놓고 잔다. 그냥 찝찝하기 때문이다. 이놈의 선풍기 괴담처럼 '마트 테두리론'도 내 머릿속에 들어와 버렸다. 녀석은 내 뇌 속에 똬리를 틀고 나가질 않는다. 한 번 신경 쓰니 괜스레 마트 중간으로는 가지 않게 되는 거다.


삐빅-


카트에 담긴 물건을 계산대로 올렸다. 내가 산 식재료를 찬찬히 살폈다. 두부, 콩나물, 달걀, 감자... 죄다 마트 테두리에 있는 녀석들이었다. 그렇다. 저자인 요한하리가 나를 이겨버렸다.


이 정도면 제목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도둑맞은 집중력>이 아니라 <도둑맞은 통조림>으로? 내 사랑스런 콘치즈 내놔요 엉엉.



사진: Unsplash의Tara Cl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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