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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뜰살뜰 구구샘 Sep 20. 2024

슬럼프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김종원,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1. 새벽 4시에 일어난다.


2. 이불을 갠다. 양치질하고 사이클을 돌린다. 책 읽고 글을 쓴다.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 브런치에 콘텐츠를 올린다. 출근해서 돈을 번다. 퇴근하고 육아한다.


3. 밤 9시에 곯아떨어진다.

=> 5년째 매일 이 짓을 하고 있다.



자기 계발 책을 믿었다. 유명한 강사들을 신뢰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꾸준함을 강조했다. 무엇이든 계속하면 뭐라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꾸역꾸역 콘텐츠를 뽑았다. 그런데 인생은 그대로였다.


물론 조금 바뀐 것도 있다. 3년째 신문 칼럼을 쓰고 있다. 작년엔 <선생님 블로그 해요?>라는 종이책도 출간했다. 선생님들 앞에서 강의도 많이 했다. 건강도 좋아졌다. 5년 전보다 키가 0.1cm 커졌다. 아마도 자세가 좋아져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자기 계발 책이나 강사들이 말하는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세바시에 출연한 것도 아니다. 유튜브 알고리즘 떡상한 것도 아니다. 각종 출판사에서 제발 나에게 책 한 권만 내달라고 사정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쩌리다.


'이 짓을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해?'


똑똑똑, 그때 누군가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조심스레 빗장을 풀었다. 늑대 탈을 쓴 남자가 나를 향해 활짝 웃었다. 그리고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슬럼프라고 합니다."



글쓰기 싫어졌다. 영상 뽑기 싫어졌다. 새벽에 일어나서 사이클 돌리기 싫어졌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굳이 이 짓을 안 해도 내 인생 그대로일 것 같았다. 5년을 갈아 넣어도 드라마틱한 인생 변화가 없는데, 뭐 하러 힘들게 자기 계발이니 뭐니 그딴 걸 하겠나. 그냥 슬럼프에 몸을 맡기는 게 편하지.


그런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내였다. 그러면서 나에게 책 한 권을 추천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제목 드럽게 잘 뽑았다. 읽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였다. 방금까지 책 안 읽겠다고 한 거 취소다. 딱 이거 한 편만 더 읽어봐야지. 그러고 나서 편안하고 안락한 슬럼프의 세계로 돌아가야지!



저자를 확인했다. 김종원이라는 분이었다. 금시초문이었다. 나름 유명한 자기 계발서는 섭렵한 나다. 그런 내가 모르는 분이라면 듣보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나는 곧 슬럼프에 빠질 몸이니까. 그냥 심심풀이로 읽으면 된다.


어라? 글빨이 너무 좋다. 순식간에 188쪽을 읽었다. 정신 차리니 해님이 산 너머로 사라졌다. 남은 건 다음에 읽어야지 표시하려는 순간, 미쳐버린 글귀와 마주쳤다.



"내게는 10년도 넘게 365일 반복하는 루틴이 하나 있다. 실내 자전거를 하루에 3시간 이상 타면서, 동시에 독서를 하는 것이다. 발로는 페달을 돌리고, 손으로는 책을 들어 글을 읽는다. 독서와 운동을 각각 매일 3시간 이상 해야 하는데, 6시간을 낼 수 없어 2가지를 동시에 3시간 동안 해낼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 괴물이세요?



이 책은 저자의 100번째 책이란다. 30번째 책까진 모조리 실패했단다. 그런데도 책을 계속 냈단다. 그제야 자기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단다.


나는 고작 책을 한 권 냈다. 실내 자전거도 하루에 한 시간 타면 많이 돌리는 거다. 독서도 출퇴근 시간 버스에서 30분씩 하는 게 전부다. 김종원 작가에 비하면 신생아 수준이다. 그래놓고 성공을 운운해? 언감생심 정의의 철퇴를 맞아야 할 판이다.


정신을 차리니 책의 마지막 쪽이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어느새 늑대 탈 쓴 아저씨가 사라졌다. 슬럼프님께서 흔적도 없이 도망간 거다. 에휴, 작별인사도 못 했네. 그래도 괜찮다. 늑대 아저씨는 언젠가 다시 올 거다.


미래의 나에게 말한다. 늑대 아저씨가 다시 방문할 때면 이 책을 꺼내라. 정신없이 읽다 보면 슬럼프는 감쪽같이 사라질 거다. 장담한다.



이 책엔 두 괴물이 등장한다.

-괴테: <파우스트>라는 책 한 권을 집필하는 데 60년을 쏟아부은 독일의 철학자 

-김종원 작가: 하루에 3시간씩 독서+사이클 10년 넘게 반복함. 책 100권 넘게 씀



혹시 슬럼프가 찾아온 것 같은가? 이 책,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를 추천한다. 괴테와 김종원 작가께서 양쪽 싸다구를 때려주실 거다. 효능은 100% 보장한다. 슬럼프 따위는 뼈도 추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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