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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뜰살뜰 구구샘 Oct 21. 2024

세상 모든 부부는 이걸로 싸우지

대니얼 J. 레비틴, <정리하는 뇌>

싸우지 않는 부부는 없다. 부부는 죽을 때까지 싸운다. 물론 집집마다 양상은 다르다. 어느 집은 소리를 꽥꽥 지를 거고, 다른 집은 점잖게 편지로 다툴 거다. 어느 형태든 갈등 없는 집구석은 없다.


부부싸움은 왜 일어날까? 내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95%는 이걸 원인으로 꼽았다.


'돈'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돈 때문에 일어난다.


"그때 내가 집 사자고 했잖아!"

=> 노골적인 돈 문제


"학원을 또 보내?"

=> 애 교육 문제인 것 같지만, 결국 학원비.. 돈 문제


"출근할 땐 에어컨 좀 꺼"

=> 북극곰 생각은 5%, 전기요금 생각은 95%


내 생각도 같았다. 부부싸움은 95% 돈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 <정리하는 뇌>를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 부부싸움은 99% '정리' 때문에 일어난다.



"거품기를 어디 뒀더라?"


오랜만에 계란말이를 만들기로 했다. 탁탁탁, 달걀 3개를 깨서 접시에 넣었다. 맛소금을 한 꼬집 넣었다. 이제 시계방향으로 섞을 일만 남았다. 평소에는 숟가락으로 했지만, 오늘따라 셰프에 빙의하고 싶었다. 그래서 거품기를 찾았다.


그런데 거품기가 보이지 않는다. 맨날 두는 장소에 아무리 찾아도 없다. 혹시 식기세척기 안에 들어갔나? 그럴 리 없다. 이번 달에 거품기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므로 분명히 위에서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거품기가 없다.


"여보! 거품기 어딨어?"


손에서 달걀 물이 쪽 흘러내렸다. 싱크대에서 손을 씻었다. 미리 불을 올려둔 프라이팬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일단 가스레인지를 껐다. 도대체 거품기 어디 있는 거야?


"앗, 그거? 안 쓰는 것 같아서 창고에 넣어뒀어. 그냥 숟가락으로 하면 되잖아?"

"숨겼으면 나한테 공유를 해줬어야지"

"숨긴 게 아니라 정리한 건데?"

"정리를 했으면 공유를 해줘야지. 난 방금 처음 알았는데?"


놀랍게도 이 부부싸움은 '돈'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다. '정리' 때문에 일어났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정리를 건드린다


-시간 정리

-물건 정리

-돈 정리


우리는 하루 종일 정리하며 산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간을 어디에 쓸지 정리한다. 양치질을 할 것인가? 응가를 눌 건가 안 눌 건가? 캘린더에 중요한 일정은 뭐였지? 하루에도 수십 번 시간을 정리한다.


물건도 마찬가지다. 거품기를 어디 놓지? 이 책은 이제 딸이 안 읽는데, 당근에 나눔 할까? 날씨가 점점 선선해지는데 여름옷은 언제쯤 정리할까?


돈은 말할 것도 없다. 월급을 어떻게 정리할까? 설 보너스로 생긴 목돈을 어디에 배분할까? 대출을 먼저 갚을까? 아니면 해외여행 비행기 표를 예매할까? 죄다 정리 정리 또 정리다.



이 책에서는 '뇌를 편안하게 해 주는' 정리 팁을 알려준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A 옷장]

맨 위층. 양말

2. 윗옷

3. 바지

맨 밑층. 모자


[B 옷장]

맨 위층. 모자

2. 윗옷

3. 바지

맨 밑층. 양말


당연히 B 옷장이 보기 좋다. 우리 뇌가 편안함을 느끼도록 정리했기 때문이다. 뇌는 맥락적으로 생각한다. 모자는 당연히 맨 위에 있어야 한다. 머리에 쓰는 거니까. 양말은 맨 아래에 있어야 한다. 발에 신는 거니까. 사람 한 명을 세워 두고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정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게 자연스럽다. 그래야 뇌가 편하다.


이 원리는 군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군인들이 쓰는 관물대를 생각해 보자. 맨 위에 철모를 둔다. 가운데에는 군복을 건다. 아래쪽 서랍에는 속옷과 양말을 넣는다. 맨 밑엔 군화를 보관한다. 이래야 비상상황 때 1초라도 빨리 준비할 수 있다. 뇌를 편안하게 해 줬기 때문이다.



결혼은 세계관 대충돌이다. 여자가 살아온 세계관과 남자가 살아온 세계관은 완전히 다르다. 그 세계관의 핵심은 '정리'다. 시간, 물건, 돈을 어떻게 정리할지 끊임없이 합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부부싸움이 줄어든다.


새로 산 따님의 옷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는가? '여기다 걸어두면 되겠지?' 하며 아무 옷걸이에나 걸어두지 말자. 아내한테 물어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냥 거실에 놔두자. 축하한다. 오늘도 부부싸움 한 건 줄였다!




대니얼 J. 레비틴, <정리하는 뇌>

*소장여부: 도서관에서 빌려본 뒤, 괜찮으면 구매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지능의 역설>이 스토리텔링에 중점을 뒀고, <욕망의 진화>가 여자와 남자의 심리에 중점을 뒀다면, 이 책 <정리하는 뇌> 는 그것보다는 조금 더 '뇌'에 집중하는 느낌입니다.



사진: Unsplash의Chris Sa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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