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에서 중고거래할 때 욕먹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상품을 '공짜로' 올리면 된다.
수많은 거래를 하면서 깨달았다. 당근에선 무료 나눔이 가장 힘들다. 심지어 욕도 가장 많이 먹는다. 왜냐고?
-공짜
-고장
-흑심
이런 낱말들이 서로 친하기 때문이다.
'아이패드 공짜로 드립니다!'
이 문구를 보고 가슴 뛰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 안다. 저 문구는 마케팅 문구라는 걸. 세상에 아이패드를 아무런 조건 없이 공짜로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건 무조건 셋 중 하나다.
1. 고장 난 쓰레기 거나
2. 아이패드를 미끼로 다른 걸 팔거나
3. 혹은 나를 사랑하거나(;;;)
당근마켓도 마찬가지다. 무료 나눔 상품을 보는 사람들은 보통 이걸 떠올린다.
'고장 났나?'
'쓰레기 딱지 붙여 버리기 귀찮은가?'
'정작 만나면 이상한 조건 붙이며 영업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당근에선 무료 나눔이 가장 힘들다.
나에겐 다섯 살 딸이 있다. 아내와 나는 딸에게 책을 많이 읽어준다. 그래서 책을 집에 자주 들여놓는다. 그런데 책꽂이 자리는 부족하다. 그러므로 자주 책꽂이를 비워야 한다.
그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근이다. 무료 나눔을 하면 금방 팔릴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전집의 상태를 잘 안다. 책 사이에 코딱지 붙인 적도 없고, 책에 컵라면 쏟은 적도 없다. 하지만 왠지 돈을 받긴 좀 찝찝하다. 그냥 우리는 전집이 새 주인을 만나 행복하길 바랄 뿐이었다. 그래서 무료 나눔을 올려보면
'책을 일일이 싹 펼쳐서 사진 좀 더 보내주세요'
'저희 집 앞까지 배달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가져가기 편하게 노끈으로 10권씩 묶어놔 주세요'
... 결국 인간에게 환멸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이 책, <비상식적 성공 법칙>을 만났다. 이 책의 저자 간다 마사노리는 일본에서 마케팅으로 엄청 유명한 사람이란다. 이 책도 저자가 젊을 때 휘리릭 썼는데, 50만 부 넘게 팔아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단다. 그런 사람이 책에서 엄청 강조하는 게 이거였다.
"당신이 뭔가를 못 파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싸게 팔아서 그래요. '제발 사주세요'라고 하면 절대 못 팝니다. 무조건 고자세로 영업하세요."
이게 무슨 개뼉다귀 같은 소리인가? 저렴해서 안 팔린다니? 고자세로 영업하라니? 이게 말이 되나? 그래도 속는 셈 치고 저자의 말을 들어봤다. 당근에 무료 나눔으로 올렸던 글을 다 수정했다.
[기존 당근]
-전집 무료 나눔 합니다!
-혹시 궁금한 게 있으면 채팅 주세요!
-사용감 조금 있습니다ㅠㅠ
['고자세'로 수정한 버전]
-전집 5만 원에 드립니다.
-최초 구입가 20만 원입니다. 5살 딸이 아끼던 책이지만, 책장이 꽉 차서 판매합니다.
-추가 사진은 요청하지 마십시오. 네고 불가능합니다. 무조건 제가 있는 곳에 오셔서 가져가셔야 합니다. 꼭 사실 분만 연락 주십시오.
신기하게도 그 전집은 5만 원에 바로 팔렸다! 심지어 구매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엄청 들었다. 완전 가지고 싶던 전집이라나? 상품은 똑같았는데 영업 방식만 바꿨을 뿐인데, 돈도 벌고 감사하다는 소리도 들었다.
사람 심리가 묘하다. 거저 주면 갖기 싫어진다. 반면에 줄 듯 안 줄 듯 애를 태우면 더 갖고 싶다. 그래서 고자세 영업이 중요하다. 대신 이 전략의 전제조건이 있다. 상품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쓰레기를 높은 값에 팔려고 하면 정신 나갔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므로 '양질의 상품'이라는 기본 조건은 무조건 맞춰야 한다. 내가 팔았던 그 전집도 상태가 좋았기 때문에 고자세 영업이 통했다.
생각해 보면 이 전략은 소개팅 씬에서도 맥이 같았던 것 같다.
-'제발 날 가져요 엉엉' 전략: 똥망
-'날 갖든가 말든가' 전략: 성사율 훨씬 좋음
내가 만약 '날 제발 가져요'를 유지했다면?
지금의 아내도 없었을 것이고, 딸도 없었을 것이며, 전집도 당연히 없었을 거다. 엉엉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