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계약직 노인장, 나의 미래?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올해 교직생활 10년 차가 되었습니다. 2014년에 첫 발령을 받았으니까요. 여자 동기들은 12년 차입니다. 저도 군대까지 포함하면 12년 차입니다.
이쯤 되니 평달 월급 실수령액이 300만 원을 넘어갑니다. 보통 교사는 1년마다 평달 월급이 10만 원 정도 상승합니다. 신규교사는 200만 원, 2년 차는 210만 원, 5년 차는 250만 원인 꼴입니다. 전국 초등교사면 다 비슷합니다. 물론 성과급이나 상여금이 추가되면 조금 더 많아지긴 합니다.
300만 원. 누군가에게는 많은 금액일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적게 느껴질 수도 있죠. 저는 월급이 적다고 투덜거리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건 제가 바꿀 수 있는 주제가 아니거든요. 하지만 받은 월급을 알뜰살뜰 관리하는 건 할 수 있습니다. 신규교사부터 지금까지 그건 꾸준히 해왔습니다.
지금도 대학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다닙니다. 남색 뉴발란스 바람막이입니다. 얼마나 튼튼하게 만들었는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실오라기 하나 뜯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새 옷을 사라고 해도 말을 안 듣습니다. 기능을 다 하고 있는 녀석을 굳이 버릴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혼 후에는 차도 한 대 팔았습니다. 저는 K3를, 아내는 SM3를 몰고 있었거든요. 아내의 출산으로 인해 차 한 대는 노는 상황이었습니다. 비교적 연식이 높은 SM3를 170만 원에 중고로 팔았습니다. 아내의 복직 후 저는 시내버스를 타고 출퇴근합니다.
외식을 하고 싶은 날에는 맥도날드를 이용합니다. 맥도날드 주가 보셨나요? 꾸준히 우상향했습니다. 오히려 불황에 오히려 주가가 더 오른답니다. 엄청나게 오른 바깥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매출이 더 늘어난다나요? 저희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말에 외식을 하고 싶으면 맥도날드로 갑니다. 셋이서 1만 원 초반이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맥도날드 앱쿠폰 사용은 기본입니다. 음료 중 하나는 콜라, 다른 하나는 커피로 선택합니다. 이러면 밥 먹고 카페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해피밀까지 선택하면 게임 끝입니다. 두 돌 지난 딸을 위한 장난감까지 제공됩니다. 이 정도면 맥도날드는 사회복지시설입니다.
이 마당에 해외여행, 골프, 외제차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꿉니다. 10년 동안 해외여행은 딱 한 번 나갔다 왔습니다. 결혼할 때 신혼여행으로요. 굳이 해외에 나가고 싶으면 유튜브를 봅니다. '세계테마기행', '걸어서 세계속으로' 또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입니다. 그 나라 문화에 정통한 박사님들이 직접 가이드를 해 주십니다. 저는 따뜻한 방 안에서 콘텐츠를 만끽하기만 하면 됩니다. 소매치기당할 걱정도 없고, 여권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습니다.(정신승리 느낌이 나는 건 기분 탓일까요?)
그렇게 아낀 돈으로 뭘 했냐고요? 연금저축펀드에 넣었죠. 물론 파월 형님이 때찌해 주신 덕분에 원금보다도 더 쪼그라들었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30년 뒤에 타먹을 거니까요. 그때까진 우상향하겠죠? 종잣돈도 꼬깃꼬깃 모으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학군이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으니까요. 전국 집값이 떨어져 난리라는데, 학군 좋은 그 동네는 해당 없나 봅니다. 별로 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 동네 사시는 분들은 대출 없이 집을 사서 그런 걸까요?
이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어느 순간 퇴직을 할 겁니다. 정년까지 다 한다면 30년 정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주위에 평교사로 정년퇴직하시는 선배님은 거의 못 봤습니다. 보통 50대 중후반이면 명퇴하시더라고요. 저는 젖은 낙엽 정신으로 62세까지 다니고 싶지만, 그때까지 제 하드웨어가 견뎌줄지는 의문입니다.
퇴직 후 많은 걸 바라진 않습니다. 요트 타고 세계일주 그런 거 꿈꾸지 않아요. 그저 치맥하고 싶을 때 걱정 없이 시켜 먹고 싶습니다. 건강검진으로 병을 발견했는데 병원비가 부담되어 수술을 미루고 싶진 않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책, <임계장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저와 관련이 깊습니다. 저자는 38년간 공기업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했습니다. 퇴직 후 생계를 위해 임시 계약직 일을 했습니다.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입니다.
그쪽 시장에서 60대는 매우 젊은 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채용이 쉽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터미널, 아파트, 상가 등에서 일을 했습니다. 특히 미화원으로 근무했던 이야기가 많죠.
청소부는 당직과 비번을 번갈아 한다고 합니다. 하루 24시간 일하면, 다음 날은 쉬는 거죠. 그런데 저자는 비번날 다른 건물에서 또 일을 했다고 합니다. 당비당비가 아니라 당당당당으로요. 잠은 언제 자냐고요? 24시간 내내 깨어 있는 건 아니랍니다. 5~6시간은 취침시간을 준대요. 그 시간을 활용해서 버티셨다고 합니다. 식사는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드셨대요. 그마저도 지하주차장 cctv가 없는 사각지대에서 드셨다고 합니다.
책을 보는 내내 소화불량에 걸린 것 같았습니다. 저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거 아니거든요. 저 진짜 퇴직 후에 집에서 밥 먹고 싶고, 잠은 편안히 자고 싶습니다. 근데 앞서 그 길을 걸으셨던 선배님이 이렇게 사신다니, 위장이 뒤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개개인의 재무상황은 다릅니다. 그분과 저의 재무상황도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더 나은 상황인지, 더 열악한 상황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머릿속에 이런 생각은 듭니다. '퇴직금은 자녀결혼 뒷바라지와 광역시 내집마련으로 조기에 쓰셨다니 그건 넘어가더라도, 38년간 넣은 국민연금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지? 퇴직 후에도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살아야 하는 건가?'
자본주의는 소비로 굴러갑니다. 과거에야 식민지에 총칼 들이밀며 물건 팔았겠지만, 요즘은 다르죠. 고급 기법을 씁니다. 바로 광고와 마케팅입니다.
보험사는 상해와 질병 리크스를 강조합니다. 그걸로 상품을 팝니다. 금융사는 공적연금 리스크를 강조합니다. 그걸로 개인연금을 팝니다.
이 책은 저에게 뭘까요.
또 다른 공포 마케팅의 일종일까요, 아니면 먼저 길을 가보신 선배님께서 알려주시는 제 미래 모습일까요?
모르겠습니다. 일단 하던 대로 냉장고나 파먹어야겠습니다.
사진: Unsplash의Ashwini Chaudhary(Mon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