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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수도 싫고 온수도 싫으면 뭐 어쩌라고?

풍백(임다혜), <부자는 됐고, 적당히 벌고 적당히 잘사는 법>

by 알뜰살뜰 구구샘

경매 강의를 들었을 땝니다. 수강생들과 작은 버스에 몸을 실었죠. 목적지까지는 한 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그동안 강사분께서 진행을 하셨습니다.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직업, 사는 곳, 이름은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포부만 말하면 됐습니다. 경제적으로 얼마나 성공하고 싶은지를요.


건물주, 빌딩주, 100채 등 다양한 목표가 나왔습니다. 이내 제 차례가 되었죠. 저도 목표를 말했습니다.


"제 딸이 살고 싶어 하는 곳의 34평 아파트 한 채와, 아내와 제가 살 집 한 채요."


강사님이 의아해하셨습니다. 꿈이 왜 그렇게 소박하냐고 묻더라고요. 그런 건 굳이 경매 투자 하지 않아도 이룰 수 있지 않냐면서요. 답변은 대충 얼버무렸습니다. 구구절절 설명해 봤자 이분들껜 닿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어느새 4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부동산 분위기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지방 소멸이라고 멸시(?)할 땐 언제고, 갑자기 대대광(대전대구광주)라는 말이 유행하며 지방 투자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불길은 부울경, 인천 등을 포함한 전국으로 타올랐죠. 기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피스텔, 빌라, 지식산업센터, 생숙, 1억 미만, 그리고 썩빌까지 닿았죠. 절정일 땐 벼락거지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뭐, 최근은 '영끌5적'이라는 말이 유행(?)이지만요.


이런 싸이클은 부동산에만 한정되는 건 아닙니다. 언제는 인생 한 번 사니 욜로하며 플렉스하라고 했다가, 다른 쪽에선 골로 간다고 스튜핏을 외쳤습니다. '부자'라는 말이 너무 거부감 들었는지 '경제적 자유'로 이름을 바꾸더니, 이왕이면 퇴사하는 것도 어떻겠냐며 '파이어족'으로 변신했죠. 이 와중에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뭔가 죄짓는 것처럼 만드는 '미라클모닝'도 꾸준히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보기들 중 제 맘에 쏙 드는 건 없었습니다. 저는 뜨뜻미지근한 사람이거든요. 세상에는 냉수 아니면 온수만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정수였는데 말이죠.



그러다가 처음으로 맘에 드는 책을 만났습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부자는 됐대요. 그냥 적당히 벌어 살고 싶답니다. 네, 선생님! 저도 그러고 싶어요!


저자의 이력을 살펴봤습니다. 경력이 10년 넘었더라고요. 상승기 하락기 다 겪었을 테니 더욱 믿음이 갔습니다. 적어도 급등락기에 출몰하는 양산형 전문가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도 결이 같았습니다. 한 분야의 초고수는 아니지만, 다양한 분야를 적당히 섭렵한 느낌이었습니다. 적당한 부동산, 적당한 주식, 적당한 연금, 적당한 글쓰기, 적당한 퍼스널브랜딩... 제가 미래에 책을 낸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았습니다. 물론 문체나 풀어내는 방식은 좀 다르겠지만요.


책은 하루 만에 읽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누가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것 같았죠. '그래, 너도 나름 잘하고 있어.'라고 응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차 한 잔을 권하네요.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셔 봅니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딱 적당한 온도였죠.



차 다 마셨으니, 이제 일하러 가야겠습니다. 다시 또 읽고 쓰고 행동하러 가야겠어요. 우선 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부터 반납하고요.



풍백(임다혜), <부자는 됐고, 적당히 벌고 적당히 잘사는 법>

사진: Unsplash의Sergey Nork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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