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산>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모두가 다 아는 한산도대첩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죠.
영화 중간에 작전회의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땐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가 아니었습니다. 여러 장수들 중에 하나였죠. 압도적인 대빵(?)이 없다 보니 다양한 의견이 나옵니다. 거의 하브루타 토론장입니다.
이순신: 본진 수비는 최소화하고, 싹 다 끌고 한방러쉬 해 보자. 쟤네 본진인 부산까지 털 자신 있음
원균: 지금 육지 다 털리는 거 모름? 공격 갔다가 본진 털리면 책임 짐? 여수에서 방어나 잘 하자
전라좌수사와 경상우수사, 급이 같은 두 사람의 제안이 불이 튑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말에 동의하는 사람 내 뒤로 붙어라'를 시전해야 합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많은 장수들이 이순신 장군 뒤에 쪼르르 붙었죠.
이순신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반면 원균의 말은 설득력이 부족했죠. 이런 차이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화에서 이순신은 말을 잘 합니다. 글도 잘 쓰죠.(난중일기, 거의 조선시대 에버노트급)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쓰니 자연스럽게 설득력이 생깁니다. 생각해 보면 다 이치에 맞거든요.
설득력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리더가 되었습니다. 점점 주위에 따르는 장수가 많아집니다. 대사 몇 번 안 쳐도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줍니다.
원균은 다릅니다. 원균은 리더부터 되었습니다. 리더로서 아랫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하죠. 설득하기 위해 글을 쓰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잘 안 먹힙니다. 심지어 직속 부하들도 이순신 말에 동조당하는 것 같습니다. 자존심이 상합니다. 권력으로 찍어누르기 시작합니다.
다른 장수들은 이순신을 택했습니다. 원균의 전술도 충분히 괜찮았지만, 설득되지 않았죠. 둘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저는 '순서'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순신: 말 잘 함 -> 글 잘 씀 -> 설득력 생김 -> 리더가 됨 -> 뭔 말을 해도 사람들이 들어줌
-원균: 일단 리더가 됨 -> 설득하려고 함 -> 글 써 봄 -> 말 해 봄 -> 사람들이 말 안 들어 줌 -> 삐짐
일단 첫 단추는 말을 잘 해야 한답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말을 잘 하게 될까요? 책에서 힌트를 주네요.
말을 잘 하려면
말을 많이 하지 마세요
말을 잘 하려면 '듣기'부터 하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라고 합니다. 상대가 충분히 말을 했으면 자신의 주장을 펼치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설득력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네요.
살면서 많은 리더를 만나봤습니다. 대부분 원균 스타일이었죠. 리더가 먼저 되셨고, 설득을 나중에 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런 분의 명령은 영혼 없이 따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순신 스타일의 리더도 만나봤습니다. 손에 꼽을 정도죠. 그분들은 모두 듣기를 잘 해 주셨습니다. 그분들이 시키는 것은 괜히 더 열심히 했네요.
저희 반 학생수 없이 많은 담임교사를 겪었을테죠. 저는 26명 학생들의 리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원균일까요? 이순신일까요?
입은 닫고 귀는 더 열어야겠습니다.
강원국 작가의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사진: Unsplash의Mathew Schwar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