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누군가 물었습니다.
"가방 바꿀 생각 없어요?
제가 답했습니다.
"가방 끈이 떨어지면 바꾸려고요."
"그럼, 시계는 어때요? 좋은 걸로 바꾸고 싶지 않아요?"
"아, 초침이나 시침이 망가지면 바꾸죠 뭐. 아직까진 잘 돌아가네요."
"차는 어때요? 제네시스나 외제차 같은 거 좋잖아요."
"지금 차 17만 km 탔는데요. 엔진이나 미션이 퍼지면 바꾸려고요."
대화는 거기서 끝났습니다.
'생산'의 반대말은 뭘까요? 저는 여태까지 '소비'인 줄 알았습니다. 생산자가 만들면 소비자가 쓰잖아요. 그게 서로 대비되는 말인 줄 알았죠.
이 책에선 다르게 표현하더군요. 생산의 반대는 파괴래요. 그 가운데 소비가 있다나요.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삶에 빗대 볼게요.
'탄생'의 반대말은?
바로 떠오릅니다. '죽음'이라고요. 태어났으면 죽게 되어 있죠. 물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산되면 파괴될 운명인 겁니다.
새 옷, 언젠가는 폐기됩니다. 헌 옷 수거함에 들어가든, 무료 나눔을 하든, 제3국으로 보내지든, 최종 종착역은 폐기입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는 음쓰가 되겠죠.
집도 예외 없습니다. 재건축이든, 재개발이든, 리모델링이든, 붕괴든 침강이든 언젠간 파괴될 운명이죠.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파괴될 때까지 물건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자본주의가 굴러가질 않을 겁니다. 걔는 끊임없는 소비로 유지되니까요. 옛날에는 총칼로 위협하면서 팔았지만, 지금은 그럴듯한 광고로 팔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파괴되기 전에 사요. 저도, 제 아내도, 제 동생도 다 그럽니다. 모든 물건을 끝까지 쓰는 경우는 잘 없죠.
옷? 찢어지기 전에 바꿉니다. 반짇고리는 장식일 뿐입니다.
차? 잘 굴러가도 바꾸고 싶습니다. 요새 전기차가 그렇게 좋대요.
휴대전화? 통화랑 메시지 잘 돼도 바꾸고 싶습니다. 접히는 폰은 어떤지 궁금해요.
하지만 좀 더 참아보려 합니다. 이왕이면 파괴될 때까지 써보려고 해요. 자본주의가 절 싫어하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사실 지금도 유혹이 몰려옵니다. 얼마 전, 삼성에서 새 시계를 출시했거든요. 갤럭시워치6입니다. 너무 사고 싶습니다.
삼성서비스센터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수리를 맡겨놓은 동안, 옆에서 신제품을 구경했죠. 새 시계, 예뻤습니다. 40mm, 44mm 어떤 게 나을지 손목에 차보기도 했죠.
하지만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제 손목을 봤죠. 스마트밴드(갤럭시핏2)가 절 쳐다보고 있습니다. 동생이 판촉물로 얻어온 그 녀석입니다.
제 자신에게 다시 물어봅니다.
Q. 네가 찬 시계, 파괴되었는가?
A. 아니오..
Q. 시각을 잘못 알려 주는가?
A. 아니오...
Q. 통장 잔고?
A. 야!!!
안 사는 게 아니고
못 사는 거였으면서
혀가 길었습니다.
사진: Unsplash의Remy Gie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