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는 연구실이라는 게 있습니다. 같은 학년 선생님들끼리 회의하는 공간이죠. 학교마다 규모가 다릅니다. 시설이 좋으면 냉장고에 전자레인지가 있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테이블에 의자 정도는 있어요.
공용 공간이니, 당연히 쓰레기도 생깁니다. 커피 한 잔을 타먹어도 쓰레기는 나오거든요. 커피 껍질요. 당연히 쓰레기통이 있습니다. 분리배출함도 있어요. 초등 선생님들, 분리배출 정말 잘합니다. 플라스틱에 붙은 스티커도 다 떼고 버리죠.
하지만 이런 쓰레기도 어쨌든 건물 밖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일반 쓰레기는 쓰레기 수거함에, 재활용 쓰레기는 분리배출장에 내놓아야 하죠. 누군가 한 명은 주기적으로 쓰레기를 날라야 합니다. 그걸 보통 제가 했습니다. 왜냐고요? 막내였으니까요.
누가 시킨 건 아닙니다. 그냥 몸이 알아서 움직였어요. 저희 반 쓰레기 버릴 때 연구실 것도 함께 치웠습니다. 가끔 냉동실에 음식물 쓰레기를 모으시는 분도 계셨는데, 비위가 상했지만 그것도 제가 처리했죠.
그렇게 근무하길 수년, 학년에서 막내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친구들 중에는 연구부장이니, 교무부장이니 직함을 다는 경우도 많아졌어요. 학교에서 중심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는 뜻이죠. 눈 떠보니 저도 어느새 막내를 탈출했더군요. 그때 다짐한 게 있었습니다.
'내가 먹은 건, 내가 치워야지!'
적어도 제가 만든 쓰레기는 제가 치우고 싶었습니다. 제가 쓴 컵은 제가 설거지하기로 마음먹었죠. 적어도 후배 선생님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선배 선생님들 중에, 쓰레기를 안 치우시는 분들이 간혹 있었거든요. 본인이 커피 마신다고 사용한 컵을 그냥 선반에 올려놓습니다. 며칠 동안 안 치우세요. 파리가 꼬이기 시작합니다. 그럼 제가 대신 설거지해요. 뭐, 괜찮습니다. 군대에서 다 해본 겁니다. 이 정도는 사뿐하게 클리어할 수 있어요.(군대에선 선임이 뱉은 가래침도 맨손으로 치움)
저는 그런 선배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산출물은 제가 책임지기로 한 거죠. 그렇게 한 학기를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죠.
[후배 선생님들이 쓰레기를 안 치운다]
... 상상도 못 한 결과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죠? 아니, 자기 반 쓰레기 버릴 때 연구실 것도 버리면 되잖아요?
아, 아닙니다. 정신을 차립니다. 이런 거 티 내면 '젊은 꼰대' 소리 듣습니다. 연구실 쓰레기를 왜 막내가 치워야 하나요?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꼰대 아닌가요? 다 같은 평교사인데, 위아래가 어디 있나요?
그런데, 또 다른 고민이 생겼습니다.
[후배 선생님들이 생산한 쓰레기, 이건 누가 치우지? 설마, 내가?]
먹다 남은 커피, 분명히 일주일 전부터 봤습니다. 처음에는 반쯤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1/3쯤 남았네요. 증발했을까요? 아니면 파리가 먹었을까요? 그런데 후배님, 이거 왜 안 치우세요?
'탱크 보이' 쭈쭈바, 1/5만 먹고 왜 나머지를 냉동실에 넣어 두시는 걸까요? 이거 나중에 드시려고 하는 걸까요? 분명히 봄에 봤는데, 여름방학이 끝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월요일에 메신저를 켰습니다. 지난 금요일 오후, 교무실에서 부임 인사 떡을 가져가라는 쪽지가 왔었네요. 각 학년에서 한 명씩 와서 챙겨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딸을 어린이집에서 하원시키기 위해 일찍 퇴근했던 땝니다. 아쉽지만 저는 떡을 먹지 못하겠
어라? 연구실 문을 여니, 테이블 위에 떡이 있습니다. 그런데 양을 보니 제 것만 있는 게 아닌 걸요? 저희 학년에 할당된 떡이 모두 다 놓여 있었습니다. 이거 어떤 선생님께서 수고해 주신 걸까요?
아침도 못 먹었겠다, 혹시 먹을 수 있나 싶어 뒤집어 보았습니다. 역시! 푸른곰팡이가 떡을 점령했군요. 당연합니다. 뜨거운 여름에 밀폐된 공간에서 3일을 내리 있었는데, 어떤 떡이 그걸 견딜 수 있었겠어요?
제가 막내일 때는 이렇게 했습니다.
1) 금요일 오후, 교무실에 가서 떡을 가져온다.
2) 조퇴나 육아시간 쓰지 않은 선생님 수를 조사한다.
3) 숫자에 맞게 봉지로 소분한 뒤, 교실마다 찾아다니며 하나씩 나눠드린다.
4) 굳이 굳이 안 드시겠다고 하면, 내가 알아서 처리한다.(먹든, 음식물쓰레기로 버리든)
=> 결론: 연구실에 떡이 썩도록 방치하진 않는다.
솔직히, 1학기 동안 열심히 참아봤습니다. 눈에 거슬렸지만 넘어갔어요. 혹시 제가 알아서 청소하면 후배 선생님들이 불쾌하게 생각하실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이 게임 한 판만 더 하고 공부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왜 공부 안 하냐고 하면 기분 나쁜 그런 거요.
그렇게 여름방학이 지났습니다. 이제 마지노선을 넘었어요. 그냥 제가 치우기로 했습니다. 먹다 남은 커피, 제가 처리했습니다. 4/5 남은 쭈쭈바도 처리했죠. 냉동실에서 꺼낸 뒤, 해동한 뒤에 버렸습니다. 혹시나 쓰러질까 싶어 직각 유지한다고 힘들었네요. 아, 그 곰팡이 핀 떡요? 그것도 당연히 제가 치웠죠. 물론 먹어치운 건 아닙니다.
물론 이왕 하는 거, 정신승리라도 하기로 했습니다. 야구선수 오타니가 그랬다잖아요,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우면서 '다른 사람이 버린 운을 줍는다'라고 생각했다는 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컨디션이 안 좋아질 때면, 이런 불충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치우는 게 맞지 않나? 선배들이 만든 쓰레기 치우는 건 어떻게든 했는데, 후배님들이 만든 쓰레기 치우는 것까지 해야 해? 누가 버렸는지 모르는 쓰레기는 운이라고 생각하고 치우겠는데, 어떤 사람이 버렸는지 뻔히 아니까 더 열받네.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 진짜 후배님들 너무한 거 아닌가!'
이 책,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는 제목 그대로 7가지 습관이 나옵니다. 대충 3-3-1의 구조로 되어 있죠. 우리가 잘 아는 용어로 바꾸면 '수신제가3 - 치국3 - 평천하1'쯤 되는 것 같습니다.
1단계: 자기수양 3종 세트
2단계: 인간관계 3종 세트
3단계: 그걸 나선형으로 계속 반복확장
이건 무조건 단계를 따른답니다. 그러니까 1단계를 마스터하지 못하면, 절대로 2단계로 넘어갈 수 없대요. 자기수양이 되지 않으면 인간관계에서 성공할 수 없답니다.
만약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 그러면 타인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랍니다. 자기 자신이 문제래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답니다. 그리고 '1단계 자기 수양 3종세트'를 다시 돌리랍니다. 마스터하고 돌아와야 해요.
이걸 연구실 쓰레기에 적용해 봅니다.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 후배 선생님들은 하나도 잘못이 없습니다. 오직 저만 문제예요. 화가 난다면 2단계로 갈 자격이 없습니다. 1단계로 돌아가서 자기 수양을 더 해야 하죠.
“아니, 그래도 후배가 만든 쓰레기를 매번 치워줘요?”
“돌아가서 자신을 더 갈고닦으세요.”
“제가 많은 거 바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자기가 만든 쓰레기 자기가 치우는 게 그렇게 힘들어요?”
“아직 수양이 부족하군요. 1단계로 돌아가세요.”
“힝… 네… 알겠어요ㅠㅠ”
“계속해 보세요. 다 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돌아갈게요.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불찰입니다. 그래, 후배님께서 만든 쓰레기 버리는 게 뭐 대수겠어요? 막내일 때 불평 안 하고 다 했었잖아요. 꼴랑 막내 탈출했다고 대접받으려고 하는 게 맞나요? 그리고 연구실이 깨끗해지면 저한테 이득이잖아요. 더 상쾌한 공기 마시고, 감기도 덜 걸릴 수 있어요. 다 저 좋자고 하는 짓입니다. 좋아요, 제가 처리할게요.
하지만 이놈의 수양이란 게,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컨디션이 좋을 땐 어떻게든 하겠는데, 아프거나 피곤할 땐 제 속의 악마가 올라와요.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