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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거 모르면 아직 어른 아냐.

김은진, <대출의 마법>

by 알뜰살뜰 구구샘

제가 생각하는 어른의 기준은 이겁니다.


-은행, 돈 맡기는 곳이면: 아직 어른 아님

-은행, 돈 빌리는 곳이면: 드디어 어른!


19세니, 20세니 하는 법적 나이와는 관련 없습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대출을 일으키는 순간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무게를 알게 되는 거죠.


저희 반 학생들에게 은행이 어떤 곳인지 물어볼까요? 다들 좋아합니다. 세뱃돈을 맡기고 이자를 받아본 경험을 얘기하네요.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에어컨을 쐴 수 있는 곳으로 아는 친구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공공기관으로 생각하기도 하네요. 학교나 주민센터 같은 곳으로요.


이번엔 제 친구들에게 물어볼까요? 다들 30대 후반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은행이 어떤 곳이냐고 물으니, 대부분 돈 빌리는 곳이라고 답하네요.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 LTV, DSR... 모르는 녀석이 없습니다. 다들 뭐라도 하나씩은 빌려 놓았어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월급 받아서 은행에 가져다주는 게 제 사명이죠.


은행은 공공기관이 아닙니다. 고객이 맡긴 돈에서 이자를 조금 더 붙여 대출을 파는 기관이죠. 이익을 내야 하는 곳입니다. 네 글자로 간단히 줄이면 '예대마진'을 남긴다고 하죠.


자,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게 생깁니다. 둘 중 누가 더 위험할까요? 돈을 빌려주는 은행? 아니면 돈을 빌린 저? 누가 리스크를 더 안고 있나요?


당연히 은행입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제가 파산하면 은행도 손해를 보는 거죠.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신 이자를 받습니다. 돈은 빚이고, 빚에는 이자가 따릅니다. 원금에 이자까지 합치면 당연히 돈은 뚱뚱해지죠. 이 시스템을 자본주의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만일 제가 빚을 못 갚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땐 경매라는 녀석이 출동합니다. 담보로 잡아 놓은 집을 가져가든, 퇴직금을 잡아가든, 통장을 압류하든, 보증 선 기관에게 말하든, 빌려준 돈을 회수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출'과 '경매'는 떼레야 뗄 수 없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먹었으면 싸야 하는 것처럼,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것을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터부시 하죠. 선생인 저도 학교 다닐 땐 배운 적이 없습니다. 교육대학교 커리큘럼에도 없어요. 그냥 알아서 배워야 합니다. 웃기죠? 00 시대에 사는데, 교육기관에서 그걸 가르치지 않습니다.


석기시대에는 돌 가는 방법을 배웁니다. 도제식으로 가르쳐주죠. 선배가 후배에게요. 중세시대에는 종교의 힘을 가르쳐줍니다. 괜히 이단으로 싸잡혀서 화형 당하면 안 되니까요. 조선시대에는 유교 예법을 배웠습니다. 양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사와 차례는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야 했습니다. 이거 제대로 안 배웠다간 관아에서 곤장 맞기 십상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자본주의시대에 살잖아요. 근데 교육기관에서 '대출'과 '경매'를 안 가르친다는 겁니다. 고작해야 법과 사회 시간에 '전입+확정일자' 정도만 알려주는 정도랄까요?



이 책, <대출의 마법>의 저자는 자타공인 부동산 대출 및 경매 전문가입니다. 본인이 살던 곳이 경매에 넘어간 것으로 입문하였고, 지피지기의 마음으로 경매 공부를 하여 재기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부동산 대출 한 분야를 깊이 파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냈죠.


저자의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블로그 포스팅을 봤습니다. 감탄이 절로 납니다. 가끔 막히는 게 있으면 질문도 해봅니다. 유명한 분이라 바쁘시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의했죠. 그런데 얼마 뒤, 자세한 답변이 달립니다. 툭 치면 탁 타오는 자판기 같습니다. 알고 보면 AI인 거 아닌가요?


다주택자가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요? 12달 중 상품 혜택이 좋은 달이 있고, 아닌 달이 있나요? 얼굴도 못 본 대출 상담사와, 집 근처 은행 창구에 있는 직원에게 상담하는 것 중 어떤 게 더 유리할까요? 이런 세세한 질문에 대한 답이 모두 적혀 있습니다. 심지어 쉽게 풀어놓아서, 소설책처럼 편하게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읽을 땐 도서관에서 빌렸습니다. 두 번째 읽을 땐 사서 봤어요. 밑줄 칠 곳이 많았거든요. 부동산 대출 내용이 궁금할 때마다 열어봅니다. 제가 찾는 내용이 영락없이 목차에 있어요. 이 정도면 수학의 정석, 아니 <대출의 정석>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석기시대도 아니고, 중세시대도 아니며, 조선시대도 아닙니다. 자본주의시대에 사는 이상, 이 책을 소중히 간직해야겠습니다.



사진: Unsplash의Dmytro Demid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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