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필, <공부머리 독서법>
나는 초등교사다. 경력은 10년 꽉 채웠다. 올해로 담임만 11년째다. 그동안 깡패 같은 제자는 딱 한 명 만나봤다. 당연히 어둠의 폭력배는 아니었다. 그 친구는 바로 '문해력 깡패'였다.
요즘 문해력으로 말이 많다. '무뇌력'으로 알아듣고 화를 냈다는 썰은 농담이 아니다. 내가 일하는 필드에선 그런 사례는 수두룩 빽빽이다. 원인이야 뻔하다.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 줄었으니까. 원인의 원인은 뭐냐고? (그건 돌아가신 잡스 형님께 여쭤보세요~)
학부모님들은 자기 아이의 문해력 수준을 궁금해한다. 그런데 어쩌나. 학교에서 그런 걸로 줄 세우진 않는다. 국어, 수학, 영어 같은 주지교과도 줄 세우기를 지양하는 판에 문해력 시험을?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말이다.
그래도 우리 아이의 문해력 수준이 궁금한가?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1분도 안 걸린다. 준비물도 필요 없다. 그냥 노래 한 곡만 부르라고 하면 된다. 그 노래가 뭐냐고? 그건 바로
'교가'
엥? 교가?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상징인 그 노래? 방송조회 할 때 부르는 그 노래? 맞다. 그 노래다.
교가는 생각보다 열라(?) 어렵다. 음이 높아서 어려운 게 아니다. 학생 수준에 비해 어려운 낱말과 문장이 많기 때문이다. 다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자. 그때 교가가 어땠는가?
1. 산/강/바다 한 스푼
2. 용/호랑이/봉황 한 스푼
3. 이순신, 김시민 장군 한 스푼
교가는 [지역의 정기]와 [상상의 동물]과 [역사적 인물]의 정당성을 버무려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가사를 순전 어른의 시각에서 쓴다. 디즈니나 픽사처럼 아동의 눈높이에 맞춰줄 거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 그래서 어렵다.
자세한 예시가 궁금한가? 지금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가를 적어보겠다.
1. 반만년의 아름다운 역사를 이어
=> '반만년'.. 욕이라고 생각 안 하면 다행이다.
2. 진양성 옛 꿈 싣고 흐르는 남강
=> 카카오맵에 진양성이라고 검색하면 안 나온다. 배경지식이 좀 있어야 이해할 수 있다. 진주에는 진양호라는 호수가 있다. 이게 왜 진주호가 아니라 진양호일까? 진주 옛 지명이 진양이었을까? 그러므로 진양성은 지금의 진주성을 말하는 걸까?
3. 거룩한 한-얼의 핏줄을 받아
=> 세상에! 이걸 직역하면 바로 수술실이나 분만실로 연결된다. 핏줄을 받다니? 정형외과인가? '거룩하다', '한', '얼'... 뇌가 얼얼해지기 전에 국어사전부터 준비하자.
얼이나 정기 같은 낱말은 아이들에게 너무 어렵다. 역설적으로 이게 문해력의 포인트가 된다. 이런 교가를 완벽히 이해하고 부르는 학생은 문해력 깡패라고 불러도 된다. 나는 경력 10년 동안 이런 학생을 딱 한 명 봤다.
그 친구는
1. 사전을 찾았다.
2. 앞뒤 문맥을 생각하며 읽었다.
3. why? 책에서 봤던 배경지식을 교가 해석에 활용했다.
말 그대로 문해력 깡패였다. 학교 공부는 잘했냐고? 말해 뭐 하겠는가. 입만 아프다.
이 책, <공부머리 독서법>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한국인이 수능 국어영역 만점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한글을 읽지 못해서가 아니란다. 글을 보고도 소화를 못해서 그런 거란다. 결국 문해력의 문제다.
문해력은 어떻게 기르냐고? 답은 이미 전 국민이 안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거다. 디테일한 스킬을 알고 싶다면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펼쳐보자. 나는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을 맡았다. 3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 아래 내용이 나온다.
1. 국어사전 쓰는 법
2. 낱말의 뜻 짐작하는 법
3. 중심문장 찾는 법
우리 아이의 문해력 수준이 궁금한가? 자기 학교 교가를 부르라고 해보라. 그리고 가사의 뜻을 설명해 보라고 하자. 더듬거리는 게 당연하다. 교가는 원래 어렵다. 그럼 이제 아이의 책가방에서 국어 교과서를 꺼내자.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 각종 스킬을 적용하자.
당신의 아이는 이제 깡패가 되었다. 짝짝짝,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 Unsplash의Mikoła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