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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n Sep 17. 2023

몸의 절반이 움직일 수 없던 날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크게 바꿔준 시점 중 하나다

말 그대로 몸의 절반이 움직일 수 없던 날이다


이 시간들 속에서 나는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여전히 그때 느꼈던 기분과 그때 새겼던 다짐이

현재의 삶에 너무나 감사하며 살 수 있게 해 준다


2019년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경기를 뛰다가

태클을 시도하였다 그 상황에서 손을 잘못짚어

손목이 부러졌었다


병원을 갔더니 내게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단 한 번도 수술을 해본 적 없는 나는 덜컥 겁이 났지만

그냥 핀 하나만 박으면 되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서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내 인생 첫 수술을 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2020년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여름 대회를 마치고

그동안 내 오른쪽 발목에 통증을 일으키던 뼛조각을 제거하러 또 한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뼛조각은 축구선수에게 흔한 문제이고 수술을 해도 큰 문제가 없으니 별 걱정 없이 수술을 받았다

이제 회복할 일만 남았다 생각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작년 고2 때 수술받았던 손목이 시간이 지나도 계속

아파왔다  수술을 했으니 의사 말대로 괜찮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지내왔었는데 일 년 내내 나아지지 않는 게 이상했다


발목 수술로 입원을 하고 있을 때

아빠에게 손목이 계속 아프다고 이야기한 후

퇴원하자마자 손목 수술했던 병원을 함께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의사가 예전에 말했던 것처럼 별일이 아닐 것 같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의사 앞 의자에 앉았다

내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의사가 얘기를 시작했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의사는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뼈가 안 붙은 것 같은데요…”

그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재수술은 조금 큰 수술이라고 하며

뼈이식 수술로 골반뼈를 조금 떼서 손목에 넣어야 한다고 했다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재수술의 성공 확률이 50대 50이라는 것이었다  이것마저 실패하면

더 더 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의사가 엄지손가락도 깁스로 고정해야했는데 손목만 고정 시켜놨다)


아빠와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도 모질라 확률이 반반이라고? 내 손목을 가지고  절반의 확률에 도박을 걸어야 한다니..


의사는 아빠와 나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자기가 한 번만 더 이 수술을 책임지고 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우리는 혼이 나간 상태로 일단 생각을 해본다고 하고 병원을 나왔다

4일 전에 발목수술을 하고 방금 퇴원하고 나와 목발을짚은 상태에서 이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데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손목 수술을 잘하는 다른 병원을 수소문해서 찾아갔더니 거기서는 확률이 80대 20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곳에 수술을 맡기기로 했다


골반 뼈를 떼서 손목에 넣는 뼈이식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깼더니 나는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오른쪽 발목은 일주일 전에 수술로 여전히 깁스를 하고 있고 오른쪽 골반과 오른쪽 손목은 방금 수술을 하고 나와 움직일 수도 없고 너무나 아팠다

(수술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수술하면 진짜 아프다..)


통증을 줄여주는 무통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나는 무통주사를 맞으면 너무 속이 안 좋아져서

그것도 안 맞았다 통증에 너무 고통스러워

잠을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오른발 오른 골반 오른손

몸의 절반이 너무 아파서 몸을 침대 위에서 아주 살짝 트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한 20미터 거리에 있는 화장실을 가야 할 때면

아빠가 내 몸을 천천히 일으키고 겨우 겨우 휠체어에 타서 갔다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 침대 위에서 스스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상태로 거의 일주일 정도를 보냈다


폰에 갤러리를 열고 내가 축구하는 영상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와 내가 저렇게 뛰어다닐 수 있었구나” 사람이 참 적응이 빠른 동물인지라

어느새 움직이지도 못하는 내 몸에 적응되어 버려

저렇게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나를 보며 신기해했다


이 일주일이란 기간 동안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으며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내가 세상에 품어왔던 불만 불평들을 돌아보았다 참 헛웃음이 나왔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 무엇이 그렇게 되기를 욕망하고 무엇을 그렇게 가질 수 있기를 욕망한 걸까

그동안 욕망해 왔던 모든 것이 당장 옆에 화장실을 고통 없이 스스로 걸어갔다가 걸어오는 것이 소원이었던그 순간의 나에겐 정말 가치 없이 느껴졌다


그동안 맘껏 걸을 수 있고 뛸 수 있었던 나인데

익숙함에 속아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과 

건강할 때의 소중함을 아예 모르고 살았구나

감사해야 할 이유가 항상 내 곁에 있었는데

나는 충분히 감사하며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깨우쳤다


퇴원을 하고 여전히 몸의 절반은 쓰기 힘들고 한쪽에는 목발을 짚었었지만

그래도 절뚝이면서라도 걸을 수 있던

그때가 나는 너무너무너무 행복했다

감사할 수 있었기에 행복했다


그 시점을 겪고 나는 건강함의 소중함 , 일상의 소중함을 절대 망각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매일 매 순간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뛰어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기로 다짐했다 감사함을 잊지 않기 위해 감사일기를 쓰고

감사하다는 말을 의식적으로 자주 하며

나의 무의식에 감사함을 바탕으로

깔아놓으려고 노력해 왔다


그렇게 감사하는 것이 습관이 되니까

매 순간을 더욱 소중히 대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자주 많이 행복해졌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니

내가 서있는 세상이 바뀌었다


행복하니까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면 행복해진다

감사해야 할 이유들은 언제나 내 곁에 존재하고

그것을 조명할 줄 알면 세상이 축복으로 가득 찬 곳으로 변한다 내 세상은 결국 내가 디자인하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최고의 교훈을 배우게 되었다

고통과 역경이 나를 찾아오는 것은

내게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통받기만 할 것 인지 고통 속에서 배울 것인지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다


여전히 나의 손목에 있는 수술 흉터를 보며 그때를 떠올린다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너무 고마운 그때

내 세상을 변화시켜준 그때 그 고통들에게

너무나 고맙다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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