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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빛 Apr 18. 2021

너, 내 인생동료가 돼라

퇴사한 동료를 떠나 보내는 마음

동료라는 이름의 안정제이자 자극제

작은 스타트업으로 이직해 횟수로 3년차가 되었다. 대기업에 남아있는 친구들은 아직도 넌지시 물어온다. "그곳에 가서 정말 만족하니?"라고. 나의 대답은 언제나 "YES!" 속도감 있게 일하는 경험 자체가 엄청난 쾌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동료라는 존재가 주는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동료라는 단어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리적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며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안정제이자 자극제가 되는 존재다. 비슷한 환경에 놓인채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과 고민을 나누며 우리만의 수많은 코드가 생겨난다. 그러한 존재란 얼마나 특별한 것인가. 가족들과도 깊게 나눈적 없었던 감탄과 성취 때로는 절망의 경험들을 함께 하니까. 


팀원들이 많이 늘어나는 시기도, 팀원들과 헤어짐이 많은 시기도 있었다. 한명의 동료를 만나는 일이 참 어려웠던지라, 새로운 동료를 만날 때면 마치 처음 연애를 할때처럼 설레였다. 보기만 해도 흐믓한 마음, 자꾸 티타임을 청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반대로, 퇴사하는 동료를 떠나 보낼때는 부잣집 딸에게 남자친구를 뺏기는 마음(?)도 들었다. 나는 참 쿨하지 못한 사람이로구나. 




예전의 나는 직장내 동료들에게 쉬이 마음을 내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힘든 속내를 털어놓길 어려워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야 늘 있었겠지만, 그것이 불만이나 나약함으로 비춰지는 건 스스로 허락하질 못했다. 늘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으로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감추고 살았던 것 같다. 


스타트업에 와서는 불안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것에 자유로워졌다. 모두 함께 롤러코스터를 탄 사람들처럼 전전긍긍하고 있다보니 나 하나의 불안쯤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게 함께 고군분투하며 내 숨김없는 불완전한 모습 자체를 받아들여준 존재가 바로 동료들이다. 그렇기에 함께 하던 동료들을 더 이상 매일 아침 볼 수 없다는 것이 공허한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제는 그들과 회사 동료가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로 거듭날 시간이다. 그들이 남기고간 업적들을 감사해하며 사회라는 큰 틀에서 그들을 만나려 한다.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라 인생에서의 고민을 나누고 함께 성장하며 가끔 추억을 나누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직장인으로 사는 한 동료와의 이별은 숙명일테니 말이다. 


다른 사무실 어딘가에서 새로운 동료들과 일하고 있을 그들에게 갑자기 카톡이라도 한통 남기고 싶다. 

"너, 이제 내 인생동료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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