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빛 May 15. 2021

상실을 애도하는 마음

빅뱅이론을 보며 깨달은 실패와 상실 그리고 성장

사람과의 이별에만 상실의 슬픔이 적용될까? 얼마 전 공들여 온 프로젝트가 원점으로 돌아갔을 때 ’시간'을 상실하는 슬픔을 경험했다. 정성과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상실감은 결코 작거나 가볍지 않은 감정이었다. 소중한 시간들 누군가와 쌓아온 노력들이 날아가버리는 허탈함, 슬픔, 무기력함 같은 것들이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일련의 사건이 성장의 관점에서는 어떠한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사실, 어떤 시련도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론 잘 알고 있었지만 내 감정은 그렇지 못했다. 단순히 금전적 손익으로 환산되지 않는 감정이라는 존재가 조용하게 마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거나 다루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닐까

성공의 좌절 , 큰 실수나 사고 경험,  쌓아온 노력이 물거품 되는 일 등은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스쳐지나칠 수 있는 흔한 일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치명적인 사건이 아닌 이상 더욱 그렇다. 작은 상실감으로 치부될 수 있는 존재여서 내 스스로도 겪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적극적으로 다루지 못한 채 외면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채 살아갈 수 있겠지'하면서...


나의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는데, 나는 자꾸 아무것도 아니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한번쯤은 스스로 토닥이고 지금을 기회삼아 피봇팅하며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낸 시간의 농도는 가까운 사람들도 잘 알기 힘든 것이었고, 같은 상황에 있었다 해도 기대치나 투여하는 에너지의 양, 포기한 기회 비용의 수준이 다르기에 느끼는 감정이 달랐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어떤 실패나 기대하지 않았던 사고는 극도로 상실감을 준다는걸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노력했던 시간을, 잃어버린 것들을, 잘 다룰 수 있는 작업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걸까?’



슬픔이라는 이름의 복합적 감정

슬픔의 감정은 매우 복합적이다.  NYU의 정신의학과 교수 Naomi M. Simon(2011) 등은 논문을 통해 슬픔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슬픔의 종류에는 복잡한 슬픔(Complicated Grief)과 병적이거나 트라우마적인 슬픔(Pathological or traumatic grief)이 존재한다.



복잡한 슬픔(Complicated Grief)은 사별뿐만 아니라, 강렬한 열망의 좌절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마음을 쏟았던 무생물적 대상(사업, 부동산), 안정감의 원천이었던 대상(직장), 중요한 분리(친구의 이사, 이혼, 자녀의 독립 등)와 같은 상실들도 애도를 필요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고로 인해 신체 일부를 상실하거나 노화로 인해 신체적 능력을 상실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우리 삶에서 우리는 암묵적으로 본능적으로 수많은 애도 과정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애도(Mouring)'란 의미 있는 대상을 잃은 후에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는 정신 과정을 말한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 등 친밀한 대상의 상실을 통해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들은 애도의 과정을 통해 상실에 적응하고 새로운 관계와 일들을 다시 만들어내는 힘을 생산한다.


비대칭적이지만 대칭적인 우리의 삶


식음을 전폐하고 논문 상실의 슬픔에 빠져있는 쉘든


얼마 전,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Bigbang Theory)'에서 주인공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철 지난 미드에서 이런 묘한 공감이라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졌다. 시즌12의 10화 <The VCR Illumination>의 한 장면에서였다.


주인공인 과학자 쉘든 쿠퍼와 에이미 박사는 오랫동안 공들여  '대칭 비대칭(Symmetry Asymmetry)' 이론을 연구해왔다. 그러나, 연구의 마지막 작업인 인용구 출처를 정리하던 중 무려 1970년대 러시아에서 같은 논문이 발표된 기록을 발견하고 크게 낙담한다. 하나의 연구에 세상의 모든 열정을 밤낮없이 쏟아부었던 오랜 기간의 노력과 시간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소파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며칠째 누워서 괴로워하며 시간을 보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처럼,
자신의 작업을 잃을 때에도 애도가 필요하단다

옆집에 사는 친구 레너드와 페니는 이런 쉘든과 에이미를 걱정한다. 이들은 극중 레너드의 어머니이자 세계적인 심리학자 베벌리에게 자문을 구한다.


베벌리는 "쉘든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처럼, 논문의 성취 기회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 슬퍼하고 있으며, 그동안의 작업을 애도 중일 것."이라며 "해당 노력에 대한 적절한 장례 의식을 치루라."라고 조언한다.


레너드의 엄마이자 유명 심리학자인 비벌리
페니 : 쉘든 쿠퍼가 자신의 논문이 반증된 이후로 엉망진창이에요. 그는 슬프고 화가 났고,, 그냥 좀 망가진 것 같아요.

비벌리 : 글쎄, 이건 그가 애도 중인 상태 같아.

페니 : 네? 이론적으로요?

비벌리 : 물론이지. 어떤 감정적인 상실이라도 슬퍼할 수 있다. 어떤 일에 신경을 많이 썼을수록 상실에 대한 트라우마는 더욱 커진단다.

레너드 : 오! 쉘든 쿠퍼는 이 일에 정말 신경을 많이 썼었어요.

페니 : 맞아요.. 우리가 그를 돕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요?

비벌리 : 음... 비통해하는 것(grieving)은 하나의 과정이야. 모든 문화에는 고유의 리츄얼 의식이나 전통이 있어.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했고, 티베트인들은 하늘 장례(sky funerals)를 치렀단다.



우리가 이루지 못한 작업에도 적절한 애도가 필요해요


심리학자 어머니의 조언을 들은 이들은 논문 장례식을 치르기로 한다. 실패한 논문을 올린 작은 배(?)를 물을 채운 욕실에 띄우고 불을 붙여 화장하는 의식을 치르며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주자는 것.  쉘든이 스칸디나비아의 고대부터 내려온 전통으로 바이킹 함선에 시신을 매장하는 장례 풍습 '바이킹 장례식(Viking funeral)'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장면이다.


실패한 논문을 태운 배를 욕조에 띄우고 화장하는 의식을 치루는 주인공들


진지하게 논문 장례를 치르고 있는 모습은 해학적이었다. 나는 웃으면서도 한편 눈물이 났다. '나는 상실하고 실패한 일들에 이렇게 애도 의식을 치러본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와 진지하게 마음을 나눠본 적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쉘든은 애도 과정을 통해 실패로부터 자신이 누구고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배우는 듯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이라는 경기에서 '끝'이 아니라 '하프타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날 장례 의식을 거행한 '대칭과 비대칭 논문'은 훗날 더 정교하게 발전시켜 노벨상 수상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심층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며 연구를 지속한 결과이다. 빅뱅이론의 마지막 회 노벨상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뭉클하다.   



바야흐로 상실의 시대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면서 상실의 총량은 크게 늘어났다. 그 슬픔에는 무수한 종류와 이유가 생겨났다. 쌓아왔던 투자와 기회들을 빼앗기는 일이 늘어났고, 친구와 가족이 없는 상태에서 홀로 슬퍼하는 일들이 늘어났고, 누군가의 영면을 지키지 못해 애통해하는 일도 많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능력과 직장에서의 상호작용 기회를 상실했다.


줌을 활용한 온라인 만남은 가능해졌지만 관계에서의 신체적 접촉이나 직접적 연결을 상실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위로하는 일, 식당과 커피숍에서 즐겁게 수다 떠는 시간과 딸의 유치원 졸업, 초등학교 입학식 참여 경험도 잃어버렸다. 인터넷을 통해 왜곡된 커뮤니케이션의 양은 증가해서 우리 삶을 해명하는 작업도 더 어려워지고 있다.  


크고 작은 슬픔 사건들이 늘어나면서 감정에 대응하는 방식과 과정은 더욱 복잡해졌다. 애도의 과정과 양상도 이처럼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상실의 시대에 크고 작은 슬픔에 대처하며 애도하는 방식은 더욱 다양하게 논의되어야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슬픔을 이해하는 법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한 사람이자 책 <상실 수업>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 Ross)는 애도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한 정신의학자이다.


30년 이상 죽음에 대한 연구를 해오던 그녀는 70세가 되던 해에 자서전 '생의 수레바퀴'에서 본인 연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녀가 정의 내린, 슬픔을 받아들이는 5가지 단계는 다음과 같다.  


상실에 대한 연구업적을 남긴 엘리자베스 퀴블러 교수


퀴블러-로스 모델(The Kübler-Ross model)

애도의 5단계(The Five Stages of Grief)

- 1단계 부정(Denial) :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의 거부. 자신이 피할 수 없이 걸어야 하는 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쇼크 상태이다.

-2단계 분노(Anger) : 강렬한 좌절감과 분노를 표출.  자신의 상실을 야기한 사람, 자신이건, 남이건 상관없이 그 분노를 표출한다.

-3단계 협상(Bargaining) : 자신의 상실을 마주하며, 자신의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 함.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경우, 추억을 떠올려 보는 것이 그 예시이다.

-4단계 우울(Depression) :  슬퍼하는 사람은 고통을 받으며, 자신의 상실을 체감하게 됨. 이에 따라오는 슬픔도 경험. 이 때는 자기 자신에게 잠기게 된다.

- 5단계 수용(Acceptance) : 결국 자신의 상실을 인지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인지하게 되고. 결국 이를 받아들임.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나가고자 하며 남은 조각들도, 소중히 간직하게 된다.


상실의 슬픔을 넘어 성장의 기회로

슬픔의 단계와 과정들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 한 과정이 길게 지속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생략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슬픔의 감정이 아주 주관적인 것이며, 언제 어디서나 우리에게 닥칠 수 있음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상실의 5단계인 '수용'에  이른 것 같다. 지난해 겪었던 실패와 상실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앞으로 어떤 새로운 일들을 도모할 수 있을까? 지금 시간이 성장의 동력으로 쓰일수 있을까?


단계별 감정의 변화를 거치며 배운 것이 있다면 '슬픔의 주관성'이다. 내가 슬쩍 흘려듣고 지나갈수 있었던 타인의 실패나 소중한 대상, 성취의 상실이 그들 각자에게는 어떤 묵직한 의미가 있는 것일지 감히 헤아려 보고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이다.


슬픔을 통해 스스로를 북돋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법, 상실을 성장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조금 지나고 보면 오히려 다행인 면들, 그때는 알지 못했던 기회들이 분명이 존재했던 것 같다. 타인의 숨겨진 상실을 이해하는 동력이 될 지점이다.



자신의 슬픔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때 다른 이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슬픔을 충분히 느끼는 것이 다른 사람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필수 조건이다. 자신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도 느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긴 상실의 시간을 어느덧 마무리 중이다. 감정의 사각지대에서 경험한 상실의 슬픔을 잊지 않고, 타인이 상실을 경험할 때 그저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 힘든 시기에 누군가 내게 건넨 깊은 말들, 상처가 되는 말과 무관심들에서 많은 것들을 배운듯 하다. 다른 이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예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