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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빛 Mar 10. 2019

스물여덟에 죽음을 생각해보니

뇌출혈로 깨달은 삶과 관계를 관통하는 키워드


"환자분 뇌에 문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여기 까맣게 보이는 커다란 부분이 있는데.. 뇌종양일 위험이 있습니다. 진료의뢰서를 써드릴테니 바로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스물 여덟살 무렵, 강한 두통이 찾아왔습니다. 강한 통증이 보름 넘게 이어지고 혈압이 곤두박질치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병원을 방문했지요. 검사를 마치고 한참을 대기실에서 기다리자, 의사 선생님이 무겁고도 진지한 표정으로 저를 맞이했습니다. 화면으로 검정색 먹물이 쏟아진 듯한 뇌 CT사진을 보며주시며 큰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했습니다. 그 어둠의 정체가 어쩌면 뇌종양일지도 모른다고요.


두려움이란 이토록 강력한 감정이던가요. 다리가 후들거려 당장 무얼 할 수 있을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미 무겁고 빨간 피로 물들어 있는 뇌가 정상 작동하지 않았던 탓도 있었을테죠. 어머니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아무일 없을 것이라고 말하셨습니다. 다만 매일 새벽 절로 향했습니다. 어머니 기도의 힘으로 버티며 난생 처음 가본 대학병원은 첫 진료를 잡는 것부터 어려웠습니다. 접수를 하고 며칠을 기다려 면담을 하고, 다시 정밀 검사를 위한 1박 2일 입원 일정을 잡았습니다.  


혈액검사, 엑스레이 검사, 심전도 검사와 함께 '뇌혈관 조형술'이라는 정밀 검사를 진행했지요. 사타구니 쪽의 대퇴동맥을 절개해 카데터를 삽입하고 조영제를 주입해 뇌혈관을 들여다보는 검사였습니다. 결과를 보기까지 다시 한달이라는 침묵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검사 결과 앞에서 회사 초년생인 저는 회사에 출근해서도 멍하니 앉아만 있었습니다. 제 옆자리 선배는 더 이상 눈뜨고 봐줄수 없다는 표정으로 연차를 권유했지만, 연차 사유를 설명할 정보처리 능력도 상실한 저는 그저 매일 출근해 책상에 앉아있었습니다. 누군가와 이별하고 넋을 잃었거나 전날 과음했거나 일에 의욕을 잃고 멍때리는 직원으로 보였을 거예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비로소 뇌가 겪고 있는 커다란 변화를 고통으로 인식하게 했습니다. 회사에 한달간의 병가를 낼때의 심정은 이것이 사표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아픈 것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면 영원히 직장을 구할 수 없을 거예요.” 직장을 걱정하는 저에게 “지금 당장은 일이 아니라, 목숨에 대해 생각할 시기”라고 무섭게 말씀하시며 휴식과 절대 안정을 권하셨습니다.


그렇게 집에서 며칠을 보내며 출혈 탓인지 점점 맥박이 낮아져 몸을 일으켜 움직이기 힘들었고, 누워만 지내니 혈압이 낮아지며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의 시간이었습니다. ‘죽음...’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존재에 대한 공포가 저를 집어삼키는듯 했습니다. 친구들에게 위로나 조언을 얻을 의지도 기력도 상실했지요. 아무 생각도 할수 없는 공황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뇌가 출혈이 일어나면 심하게 압박되면서 의식 저하 또는 혼수 상태로 실려오는데, 환자분께서는출혈이 침습적으로 일어나 피가 뇌를 덮고 있어요”


한달이 천천히 흐른 뒤에야 검사 결과가 나와 대학병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담당 의사선생님은 ‘뇌 동맥’으로 인한 ‘뇌출혈’이라는 소견을 내놓으셨습니다. 경과를 지켜보며 피가 흡수되길 기다렸다가 후속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뇌동맥, 뇌혈관 기형, 뇌출혈, 뇌압상승, 감마나이프, 개두술........들어도 잘 이해가지 않는 단어들을 받아적을 힘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 죽는 건가요?”


의사 선생님은 "재출혈할 경우의 사망 가능성은 70%가 넘습니다."라며 절대 안정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처음듣는 의학용어들을 인터넷으로 검색 해보았습니다. 뇌동맥은 약 15%의 환자가 병원 도착 전에 사망하며 28% 정도는 치료받는 도중에 사망하고, 생존자들 중에서도 18% 정도만 정상 생활을 한다는 과거 보고가 있을 정도로 치명적일 수 있는 병이라고 나와있었습니다.


‘내가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는 나머지 18%에 속할 수 있을까? 재출혈에 의한 70%의 사망가능성을 피해갈 수 있을까?’ 여러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생존 가능성의 확률을 따져보았습니다.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따져볼 수 없는 '운명의 영역'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극도의 불안과 공포가 엄습해 모든 삶이 무너질까봐 무서워져 왔습니다. 일단은 살아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걸까요.




'어렸을 때 높은 마루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면서 키가 컸듯이, 영성의 키는 죽음의 심연으로 추락하는 악몽을 통해서 성장해간다.'  
   
- 이어령 작가 <지성에서 영성으로>


스물여덟살 여름, 죽음의 문턱을 서성거리는 경험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두달간의 병가를 더 허락했고, 그 기간동안 온종일 집에만 머물렀습니다. 짐 밖에서 쓰러질 수 있다는 공포는 엄청난 두려움이었습니다. ‘혹여라도 길거리에서 쓰러진다면, 스스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나를 길가던 사람들이 모여 구경할테지. 뒤늦게 도착한 엠뷸런스에 실려 병원에 들어가는동안 골든 타임을 사수하기 어려울거야.’ 병원에 소리지르듯 울며 등장할 가족을 힘없이 맞이하는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집 밖에 나가는 것이 어찌나 두렵던지요. 느닷없이 죽음을 생각하며 반강제적인 언택트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지요.  




그 시간 이후로 10여년이 지났습니다. 젊은 나이였던 만큼 빠르게 회복해 다시 일터로 복귀했고, 언제 그랬냐는듯 지금까지 일터를 종횡무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때 죽음을 생각해본 경험은 저에게 성장의 시간이었음을 분명하게 느낍니다. '어렸을 때 높은 마루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면서 키가 컸듯이, 영성의 키는 죽음의 심연으로 추락하는 악몽을 통해서 성장해간다.'는 이어령 선생님 말처럼 말입니다.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

- 김영민 교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최근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영민 교수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것이 좋다>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죽음을 생각하던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에서야, 애써 꺼내보지 않았던 메모장을 꺼내봅니다. 느닷없이 스물여덟에 생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한땀 한땀 어렵게 적어내려간 기록입니다. '죽음'에 대한 잊고 지냈던 마음들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욕심과 조급함이 들때 꺼내보고 싶은 키워드별 메모를 아래에 정리해봅니다. 사람은 어려운 시간의 다짐들을 쉽게 잊곤 하니까요. 삶과 관계를 관통하는 여섯가지 키워드입니다. 가족, 친구, 일과 삶, 돈, 건강, 고독에 대한 생각들이 적혀있습니다. 결정적 순간에는 한번씩 떠올려보게 그 단어들을 공유합니다.





가족

내가 심연을 헤매는 모습에 부모님이 너무 애닳아 하신다. 병원에 데려가주시고 유명한 한의원에 새벽부터 줄을 서있으신다. 매일 아침엔 기도를, 밤에는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드느랴 잠도 주무시지 못한다.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그 깊은 마음을 아직 체득하지 못한것 같다. 내가 울고있는걸 알면 또 얼마나 속상해하실까싶어 눈물이 날때마다 이불 속에 들어가 숨죽여 운다.



친구

친구들에게 아프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반응은 양가적이었다. 몇명의 친구는 주기적으로 집으로 찾아와 진심을 다해 걱정하고 위로해주었다. 몇명의 친구는 한참 후에야 "그때 왜 나한테 말 안했어. 얼마나 걱정했는데!"라고 말했다. 물에 빠져 살기 위해 허우적 거리는 사람에게 왜 그때 왜 소리지르지 않았냐고 묻는것이 어떤 의미일까. 더 이상 무슨 대답도 하지 못했다.


상실과 소외의 불안 속에 있는 이에게 따뜻한 손을 건네는 일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걱정했잖아'라고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들이 숨기려하는 '부채의식'이 무엇인지 잘 알것 같다. 손닿는 거리에 있었던 사람에게 충분히 마음쓰지 못했다는 일종의 죄책감일 것이다. 곁에서 자리를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이 된다는 이야기를 어렴풋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위로를 표현하는 일이 쉅지 않다는걸 깨닫는다.



건강

사람의 병은 수학 공식처럼 정확히 답이 떨어지는 영역이 아닌듯 하다.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일도, 회복가능성을 장담하는 일도 엄청난 책임이 뒤따르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낀다. 과학이 모든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고, 판사마다 판결문이 달라지는 것과 다를바 없다. 병은 하나의 현상일 뿐 원인은 수천가지일 것이다. 내재된 발병 요인이 환경에 의해 촉발되지 않도록 일상에서의 작은 노력들을 꾸준히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병원마다 전공마다, 의사마다 의견이 달라 같은 이름의 병도 어떻게 다룰지는 각양각색이다. 무거운 선택은 결국 환자의 몫으로 귀결된다. 아무것이나 먹고 마시고 쉬지않고 일했던 몸은 병을 만들어낸다. 지난 날 엉망이었던 생활패턴에 반성하며 내 몸에 대한 책임 의식을 생각해본다. 건강과 인생은 결국 비슷한 점이 많다.



일과 삶

일터에 모르고 지나쳤던 아주 작은 일들이 삶의 행복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게됐다. 출근길에 아름다운 한강을 바라보는 일, 지하철 속 많은 사람들의 바쁜 모습을 관찰하는 일, 동료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일상의 재미를 나누는 일, 점심시간마다 근처 공원을 산책하는 일,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친 다른팀 동료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일 등 당연했던 순간들이 모여 일과 삶을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프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게되는것이 두려워 아픈 동안에도 꾸역 꾸역 출근을 했다. '그놈의 일 때문에 이렇게 아프게 된거다.’싶어 일을 원망할때도 있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 속에 결국 지켜낸 일자리에 나의 오만가지 감정이 깃들어있다.


일터에는 타인의 힘든 순간을 자신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사람들과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붙잡아 준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매우 오래 가슴에 남는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온기'를 그리워 한다고 한다. 그래서 손을 꼬옥 잡아드리는 거라고. 아파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돈으로 그 ‘온기’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친구들과 웃으며 수다떨수 있는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기꺼이 지불할 것 같다고.


‘돈’은 지금 당장 내게 쓸모가 없어진 1순위의 가치이다. 외로움을 일소시키지도 못하는 이것에 나는 왜 집착하며 살았을까"  



고독

인생의 유한함을 자각하면서 남은 것은 고독과 투쟁하는 일인 것 같다. 지금 누구에게도 완전히 이해 받지 못할때 고독함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가 나를 이해할 수 없을때 불안감이 엄습한다.


스스로의 유한함이나 한계와 씨름하는 사이에 고독한 마음과 아주 조금 친해져가는 기분이다. 박경리의 시 '고독의 맛'의 한구절을 생각해본다. 고독의 달콤한 맛까지 느낄수 있는 삶의 감각은 아직 없으나 씁쓸해도 손에서 내팽겨쳐버리지 못하는 시큼한 과일같은 느낌이 든다.




혼자서 감당하는 고독의 맛은 씁쓸하고 씁쓸하여 오히려 달콤하다.
괜찮아 괜찮아 살아있기에 그런 말도 들을 수 있는거야.
내가 나를 위로하며 슬며시 안아주니 새 힘이 솟는다.'
박경리의 시 ‘고독의 맛’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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