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경력 16년 차 초등 남자교사입니다. 아동학대로 신고당했습니다. 신고자는 우리 반 학부모이며, 이 학부모의 자녀는 올해 들어 세 번 학교폭력사안을 일으킨 가해학생입니다.
학교에서는 학교폭력사안이 발생하면 관련 학생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합니다. 가해추정학생, 피해추정학생, 목격학생 등 다양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술을 듣거나, 진술서를 쓰게 하지요. 그리고 학부모에게는 현재 귀댁의 자녀가 학교폭력사안 관련하여 조사를 받고 있다고 즉시 통보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안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추측성 발언이나 민원을 삼가 달라는 말과 함께요. 향후 사안조사가 끝나고 나면 학부모에게 가해상황과 피해상황을 설명하고, 갈등 상황을 회복할 수 있도록 쌍방의 의견을 조정합니다. 담임교사는 모든 단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요.
악성민원은 여기서부터 시작해 왔습니다. 세 번의 학교폭력 사안을 다루는 동안 가해학생의 아버지가 했던 말들은 저를 위축시키고 괴롭게 했습니다.
피해받은 애가 혹시 특수아 아니냐. 우리 애가 장난쳐도 다른 애는 안 그러는데, 유독 걔만 난리라더라.
담임은 뭘 했냐. 평소에 제대로 지도를 했으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 것 아니냐.
우리 애는 서울대도 갈 애다. 담임이 맨날 애를 기 죽이고 평가도 나쁘게 하니 애가 더 엇나간다.
왜 담임이 우리 애를 콕 찍어서 조사하느냐? 이거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
왜 우리 애 성장통지표에 나쁜 말을 썼냐. 도대체 선생이 애들을 제대로 가르치기나 하는 거냐.
이 학생은 평소에도 자주 문제를 일으키고 친구를 괴롭히는 학생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쉬는 시간에 자리에 앉아있도록 지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물론 인권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기에 화장실, 보건실, 도서실 등, 필요한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학급규칙입니다.
이거 무슨 의미가 있는 벌일까. 스스로에게도 자주 물어보곤 합니다.
9월 12일 이 학생은 성폭력 사안의 가해학생으로서 조사를 받았고, 그 일에 앙심을 품은 학부모는 저를 아동학대로 신고했습니다. 선생이 애 쉬는시간을 뺏었다는 게 신고의 이유라고 합니다.
교사 30만 명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악성민원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팽배하며,
악성민원학부모에 대한 사적 제재가 횡행하고,
교권보호법이 9월 정기국회 제1호 안건으로 상정되어 만장일치로 통과된 이 시국에?
네. 이 시국에도 저는 여전히 악성민원과 아동학대신고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심한 스트레스와 불면증으로 병가를 내고 학교를 쉬고 있는 상태입니다.
병가승인을 위한 서류를 제출하고 학교를 빠져나가는 복도에서 우리학교 막내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당할 정도라면, 이건 정말 아무에게라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오늘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했던 일들이 아동학대로 걸릴 수도 있는 거잖아요.
힘내시라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죄송해요.
막내선생님의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저는 별다른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지 못하고 당황하다가,
힘내세요! 저도 힘낼게요! 같은 말을 주섬주섬하고 학교 현관을 나섰습니다.
귀가하는 길에는 몇 번이나 갓길에 차를 세우고 흐려진 시야를 정돈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이런 취급을 받을 만큼 형편없이 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악성민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합니다.
이 글쓰기는 그 과정을 기록합니다.
이 글은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선생님들께서 참고하실 수 있는 가이드로 읽힐 수도 있겠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쟁적인 우리나라 교육체계가 학교, 학급이라는 생활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를 그려내는 수기로 읽힐 수도 있지요.
또는 이 글이 아동학대신고를 당해도 큰일 나지 않는다고, 오히려 그 과정들 속에서 배우고 나눌 수 있는 중요한 것들이 있었다고 읊조리는 따뜻한 위로일 수도 있겠네요. 우리 막내선생님께 꼭 해주고 싶었지만 아직은 해줄 수 없었던 그 위로의 말 말이에요.
저는 현재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상황이고, 이 상황이 어떻게 풀려나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글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글은 저 자신을 치유하는 글입니다.
수면제를 복용해도 나쁜 생각과 꿈에 금세 깨어나버리는 일. 아동학대 판례를 읽고 또 읽으며 자신의 상황을 빗대어보는 일. 명예훼손, 모욕, 협박의 법적 정의와 판례를 읽는 일. 동료 교사들이 제 빈자리를 메꾸느라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일. 가족과 동료들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며, 그들이 미워지는 일. 조심성 없는 조언을 하는 동료를 상처 입히고, 그런 자신을 바라보며 스스로 상처 입는 일. 악성민원 학부모에게 음습한 살의를 키워나가고 있는 저를 문득문득 알아채는 일. 그 살의가 학부모의 아이에게로도 확대되어가는 걸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
이런 일로 가득 채워진 일상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요?
손상된 내 일상과 평판과 인간관계들이 나중에라도 회복이 되기는 하는 걸까요?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은 이 고통을 견디며, 나는 어디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요?
침울하게 굴러가는 생각은 죽음이라는 컴컴한 구덩이에 덜컥, 빨려들어갈 때가 많고,
저는 겁이 나서 황급하게 제 뺨을 칩니다.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지 않기 위해서
제가 지금 겪고 있는 일에 의미를 발견하고 나에게 들려줄 누군가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글은 사실 저 자신을 제 1독자로 쓰여지는 글입니다.
이 글은 악성민원을 앓고 있는 한 교사의 기록입니다.
이 글이 악성민원학부모와 싸우는 과정을 담아내는 투병기(鬪病記)가 될까요, 아니면
지금 겪고 있는 불쾌한 일들 속에서도 여전히 빛을 내고 있을 소중한 것들을 꼼꼼하게 닦아 내 마음의 상자 속에 간직해보려는, 공병기(共病記)가 될까요.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느 쪽이든 이 글을 쓰는 일이 나 자신의 치유를 돕는 행위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