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사이면서 친한 친구 같은 느낌.
"헤이 클로바 라디오 켜줘"
여전히 두 집 살림 의혹을 지우지 못한 아빠가 밤새 어딜 갔다 왔는지 아침에 멀끔한 차림으로 돌아와서는 라디오를 켠다. 아침이 왔나 보다.
내 눈에 총천연색으로 가득한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아침이 더욱 좋아졌다.
밤은 여전히 흐릿 한 검은색만 가득한데, 아침이 되고 이렇게 날이 밝아오면 창밖 세상은 한결 다채로운 색을 풍기니 말이다. 상큼한 생명력이랄까? 나 같은! 헤헿.
그렇게 나는 오늘 아침도 눈을 떠서 창밖 밝아오는 하늘을 웅장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민아정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오늘은 페르난도 오르테가의 기브 미 지저스라는 노래로 문을 열었습니다. 요즘같이 선선해진 가을 아침에 참 잘 어울리는 노래인 것 같네요. 청취자 여러분께도 차분한 하루의 시작을 열어주는 노래로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에 선곡해봤습니다. 자 그럼 오늘도 힘차게 한번 시작해볼 텐데요, 오늘 읽어드릴 첫 사연은 얼마 전 아이를 출산한 따님이 친정엄마를 생각하며 주신 사연이네요.
라디오에서 나 같은 신생아 사연이 나오는 것 같아 귀를 쫑긋하고 사연을 들어본다. 솜뭉치도 이런 내 반응을 눈치채곤 헤이 클로바 기계 옆에 딱 붙어 같이 사연을 듣기 시작한다.
사연을 들어보니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딸이 몸 회복할 동안 아이도 돌봐주실 겸해서 시골에 사시는 친정엄마께서 딸 집에 올라와서 같이 지내고 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툼이 일어난다는 내용이었다.
사연이 꽤 길었는데 정리하자면 원래 사이가 참 좋은 모녀였는데, 집에 같이 머물면서 주로 육아 방식 때문에 다툼이 잦아졌다고. 그 다툼의 예를 몇 가지 사연으로 보냈는데,
1. 젊은 딸은 신생아가 밤에 자도 모유 먹는 패턴, 즉 그 텀을 정확히 계산해 2시간에 한 번씩 자는 아이를 강제로 깨워 젖을 물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걸 본 친정엄마는 자는 애 굳이 깨워서까지 먹일 필요가 있냐고 딸한테 뭐라고 했단다.
물론 몇 날 며칠 밤에 잠도 못 자고 수유하느라 고생하는 딸이 안쓰럽고, 또 본인이 그 딸을 키울 때 그렇게, 그녀 표현에 의하면 “유난스럽게” 키우지 않아도 알아서 잘 컸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마음에 "툭" 던진 말이었는데, 딸은 그 말이 그렇게나 서운하게 들렸다고, 그녀 표현에 의하면 "자기 아이에게 너무한 거 아니냐고".
2. 그리고 한 번은 아기가 밤 사이에 이유 없이 열이 심하게 올랐다가 아침 되니 나아졌는데 딸은 병원에 무조건 데려가서 진찰받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친정엄마는 이제 열 다 내렸고, 요즘 전염병도 심한데 굳이 뭐하러 병원에 가냐는 말 한마디 또 한 번 "툭"
3. 그리고 마지막으로, 딸은 남들이 다하는 육아 용품들, 그러니까 예를 들면 타이니 모빌 장난감이라든가, 점퍼루라든가, 분유 만드는 브레짜 같은 국민 템들을 형편이 되는 한 살 수 있다면 다 사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구 주문을 해댔는데, 친정엄마는 그렇게 남들 하는 거 다 해주려다가 거지꼴 되겠다고 역시 이번에도 딸에게 툭 말을 던졌 단다.
결국 내 딱 들어보니 그거네.
딸은 "요즘 육아는 다 이 정도는 해야 돼."
그리고 그녀의 엄마는 "예전에는 그렇게 안 해도 잘만 컸다."
글쎄. 막상 내가 그 신생아의 입장이다 보니, 이 사연을 쭈욱 들으며 기분이 참 묘했다.
결국 아이가 태어나서 사이만 좋던 두 모녀간에 다툼이 발생한 거 같아 괜히 마음이 뜨끔.
처음 낳아 키우는 신생아에게 최선을 해주고, 그래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 없이 완벽하게 키우고 싶어 하는 초보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그리고 본인도 아이를 낳고 길러봤으므로 그런 딸아이의 마음이 이해는 되지만, 그래서 자신이 낳고 기른 그 귀한 딸이 그렇게까지 밤낮 고생하면서 키우는 걸 지켜보기 안쓰러워하는 친정 엄마의 마음도 당연히 이해가 된다. 그녀 표현에 의하면 그래, "우리 땐 꼭 그렇게 키우지 않아도 다 잘 컸는데" 말이다.
분명 이렇게나 서로를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한 엄마와 딸인데,
왜 표현은 항상 그렇게나 어긋난 방식으로 "툭" 던져져,
서로의 마음에 그렇게 생채기를 내는지.
사연의 마무리는 그렇게 친구처럼 다투면서도, 그래도 아픈 본인 몸을 위해 밥을 차려주고, 밤에 우는 아이를 달래주는 친정엄마에 대한 고마움으로 끝맺음을 했다.
이 사연을 듣고 있자니 당연하게도 나는 우리 엄마와 장모님이 떠올랐다.
물론 두 분도 가끔 투닥거리실 때가 있긴 하지만, 그 투닥거림 속에는 사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이렇게 주먹 고기나 쪽쪽 빨며 벌렁 누워있는 내게도 잘 전해진다.
아! 가끔 이해가 안 될 때도 있긴 하다.
예를 들어, 바로 어제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걸로 다투는 걸 들었는데,
오늘은 아무렇지 않게 '옷 뭐 살까? 이 색이 낫니? 사이즈 괜찮니?' 라며 마치 다툰 적 없다는 듯 대화를 나누는 엄마와 장모님의 모습을 봤을 때.
그 모습이 이상하면서도, 신기하면서도, 내 눈엔 참 재밌다.
딸과 친정엄마라는 관계는 참 흥미롭다는 생각이 든다. 모녀사이면서 친한 친구 같은 느낌.
나도 나중에 엄마만큼 크면 저들 같은 사이가 되겠지?
늘 겉으로는 그렇게 툭툭 던지는 말뿐이지만,
속에는 따뜻한 마음이 녹아있어 서로를 아끼는 그런 사이.
괜스레 이런 나를 챙겨주시는 장모님과 엄마의 사랑에 다시 한번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드르렁 푸우-드르렁 푸우-
하- 커튼 걷고, 라디오 켜놓고 어느새 내 옆에 침 흘리며 신생아보다 더 신생아처럼 쿨쿨 잠에 빠진 아빠 사람은 하나도 안 감사해! 흥치뿡!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