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엄마

우리 엄마.

by 빨양c



낮에 신나게 백화점 구경다녀 좀 피곤했나.. 아니면 예방접종 약기운 때문일까.. 오늘 저녁엔 목욕을 따로 안 했는데도 잠이 스멀스멀 온다.


아빠는 역시나 두 집 살림하러 밤 10시 땡 치자 사라졌고, 장모님은 야간 근무.

그래서 이 집엔 지금 엄마랑 나, 그리고 저 솜뭉치 셋이 있다.

그러고 보니 솜뭉치는 아까 백화점에 안 따라온 거 같던데 그래도 되는겨? 내 수호령이라며 항상 내 옆에 붙어있어야 하는 거 아냐?

나는 졸린 눈으로 천장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솜뭉치를 째려본다. 가만 보면 쟤는 내가 잠들기만 바라는 애 같다. 또 나 잠들면 이상한 너튜브 홍보나 하려고 그러는 거겠지. 얄미운 것.

“이제 우리 축뽁이 2차 주사도 맞고.. 내일부턴 분유만 먹게 될 텐데.. 엄마가 미안해.. 우리 아가.”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엄빠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는 게 너무 싫다.

뭔가 너무 아련해. 그 아련함이 괜히 요 작은 0세 마음을 무겁게 하는 느낌이랄까?

음.. 엄마의 저 말은 이제 모유 수유는 그만하고 내일부터는 완분을 하겠다는 말인 것 같다.

그렇구나. 내일부터라.. 뭐. 별 감흥은 없다.

며칠 전부터 복직 준비로 떠들썩했는데, 복직하려면 단유 해야 한다고 그렇게나 들었는걸? 그러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요즘 먹는 분유 맛있더라고 엄마. 괜찮아요 토닥토닥.

엄마의 마음은 그런가 보다. 더 주고 싶은데 더 주지 못하는 현실에 마음 아파하는.

하지만 괜찮아요. 어쩔 수 없어서 그렇다는 걸 충분히 나한테 설명해줬으니까.

그러고 보니 요 애say에서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서 100일되기 전 남겨볼까 한다.

‘백화점 샤핑으로 매우 졸립긴 하지만 요정도 쯤은 버텨보겠어!! 정신 바딱 으럇!! 뭘 놀래 이 솜뭉치야. 너도 가서 자 피곤하면.’

내가 갑자기 의지를 활활 태우려 하자 솜뭉치가 깜짝 놀란다. 이럴 땐 또 귀엽긴 하다. 그래도 얄미워.

일단 엄마 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위대하다. 너무 뻔한가?


내가 엄마를 처음 마주한 건 그래, 내가 태어나던 그때였다. 나는 진짜 몸이 다 바스러진 줄 알았다.

상상해보라.

그래도 머리 어깨 무릎 팔다리 다 있는 3kg 몸뚱이가 엄마의 그곳을 비집고 나와야 하는 고통을.

누가 그러더라.

콧구멍으로 수박 빼내는 고통이라고.

믿었던 양수가 움찔움찔 날 밀어내길래 어찌어찌 머리는 간신히 나왔는데, 머리보다 두꺼운 어깨가 걸려버렸어! 여기서 의사쌤의 스킬이 아주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샤르륵 태아 몸을 휙 돌려서 훅 끄집어내야 하는데 요게 아주 노련한 스킬이 있어야 산모도, 태아도, 의사쌤도 모두가 편하다는 말씀!


아무튼 그렇게 나온 나는 당연히 울음이 끄앙끄앙끄앙!! 하고 터졌다. 아니 끄아아아아악!!!!이었던가?

글쎄 거의 100일이 다 돼가서 그런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태어나면서부터 울었는지, 누가 내 엉댕이를 팡팡쳐서 울음이 터졌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도 내 엉댕 두 짝에 시퍼런 멍 같은 게 있는 걸 보면 누가 팡팡 친 거 같기도 하구.

아무튼, 그렇게 나는 엄마 품에 처음 안겼고, 엄마를 처음 마주했다. 물론 예전에도 한번 말한 적 있듯이 어벙한 초록색 가운을 입고 요상한 가위를 손에 든 채 나한테 돌진했던 아빠도 옆에 있긴 했다. 그치만 내겐 아웃 오브 안중. 노관심!


그때 본 엄마의 얼굴을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

내가 아직 의사쌤의 손에 들려 있을 때 본 엄마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있었다. 내가 아직 0세라 어휘가 부족해서 표현이 좀 부족하긴 한데, 음 뭐랄까. 얼굴이.. 그래. 진짜 터지는 줄 알았다.

핏발이 얼굴에 가득했고, 땀, 눈물, 침, 콧물 범벅에 머리카락이 온통 젖어있었다. 손 발은 침대 옆에 거의 묶인듯 비틀어져 있었고, 내가 나오고 나서인지 탈진한 눈동자는 풀려 천장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게 내가 본 첫 엄마의 얼굴이었다. 신생아는 분명히 안다.

아- 이사람이 내 엄마구나.


그렇게 탈진 상태인 엄마에게 의사쌤이 나를 엄마 품에 안기자, 엄마의 눈동자에 갑자기 활력이 찡 돌더니,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간신히 움직여 환히 웃더라.

응. 정말 환히 웃더라. 환희의 순간이랄까.

나는 정말 못할 거 같다.

사지가.. 온몸이 다 바스러지는 고통을 겪은 사람이 나를 보며 활짝 웃는 그 웃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위대하다.

그래서 그게 처음으로 엄마 품에 안겼던 내가 느낀 감정이었다.

그렇게 활짝 웃는 엄마와 그 품에 한껏 구겨진 얼굴로 울고 있는 나. 그리고 어벙한 표정으로 선 아빠.

이건 사진으로도 남아있는데, 나중에 기회 되면 보여드릴께유 구독자 어르신들 헤헿.


그렇게 위대한 엄마는 그때의 고통으로 한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조리원에서도 회복이 안돼 장모님 댁 와서도 한동안 저 방에 틀어박혀 유축할 때만 겨우 몸을 일으켰으니까.

그때도 지금처럼 엄마와 단 둘이 있어야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본 엄마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바로 요 눈알 머리띠!

머리에는 앞머리가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빨간색 요상한 인형 눈이 달린 머리띠를 했고,

얼굴은 거의 삼신만큼이나 핏기없는 창백한 흰 색,

옷은 가슴 쪽 지퍼를 찌익 열면 언제든 바로 수유할 수 있게 하는 수유복,

허리에는 갈비뼈와 허리 척추를 지지하기 위한 검은색 챔피언 벨트 같은 복대,

그리고 손목, 발목에는 늘어난 관절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대,

마지막으로 몸이 차면 안돼서 신은 늘어난 삼촌 양말 같은 거무튀튀 양말까지.

이렇게 나열한 것을 상상해도 알 수 있겠지만,

실제로 보면 아주 충격적이고 오묘한 복장이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본 나는 나를 낳느라 저렇게까지 본인을 희생한 엄마란 존재는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이후 장모님의 사골 미역국 덕분인지 엄마는 그래도 기력을 점차 회복했고, 그 모유를 한 달 넘게 내내 먹고 자란 나도 지금처럼 정말 튼튼한 신생아가 되었다.

본인이 그렇게 힘들 텐데도 기어코 모유를 먹일 수 있을때까진 먹이겠다는 엄마의 위대함에 나는 다시 한번 웅장한 감사함을 느꼈다.

그 와중에 아빠 사람이 “난 그래도 애기보다 여보가 중요해.”라고 얄밉게 말 하는 것도 난 똑똑히 들었다. ㅁ ㅔ모..도 해놨어.. 언젠가 복수할 테야!! 흥.


그런 엄마가 이제 복직이라는 현실의 벽 때문에 모유를 중단해야 돼서 나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하고 있다.


나는 이미 충분히 엄마에게 미안하고, 엄마에게 고맙고, 엄마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엄마가 복직한다는 게 아직까진 겪어보지 않아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뭐 최악은 그냥 아빠랑 낮에 단 둘이 계속 있게 되는 거 아닌가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하려 하고 있다.

‘지금도 내가 아빠 돌보는 것 같은데 뭐. 난 걱정 말아요 엄마.’

이 밤, 나와 단 둘이 있는 엄마가 날 내려다보며 그 위대하다 느꼈던 얼굴로 끝없이 미안하다고 하고 있다.

나는 내 손이라도 뻗어 그런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싶어 손을 뻗어본다.

윽. 당연히 닿을 리 없지. 신생아는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슬프다.

“응애!!!!!!!!!!!!!!!!!(나 정말 괜찮아요 엄마! 엄마는 이미 충분히 내게 위대한 엄마인 걸요!!)”

내 마음이 닿길 바라며 소리라도 빽 질러본다.

물론 엄마도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을지는 알 수 없지만. 갑작스러운 내 소리에 옆에서 솜뭉치가 화들짝 놀라는 게 보인다. 메롱.


솜뭉치와 나, 그리고 엄마가 같이 있는 오늘 밤.

이 밤이 너무 행복하다.


”고마워요 엄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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