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나도 조리원 별로더라.."
"아기 낳고 조리원 어떠셨어요? 정말 기대만큼 만족하시던가요?"
라디오 소리가 들린다.
"맞아. 나도 조리원 별로더라.."
혼잣말인지 조용히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왜~? 요새는 다 몇백만 원씩 주고 조리원 가는 게 필수라던데?"
이건 장모님의 목소리다. 근데.. 당연히 한마디 덧붙이고도 남을 아빠 사람의 목소리는 왜 안 들리지?
머리맡에 있는 온습도계를 보니 밤 11시, 습도 55%를 가리키고 있다.
'음 그렇군. 아빠 사람은 두 집 살림 챙기러 사라졌을 시간이군. 깜빡 잠들었다 보니 가는 것도 못 봤네. 뭐 내일 아침이면 올 테니까. 그래도 이제 100일이 거의 다 돼서 그런가 요즘 아빠 사람한테 괜히 마음이 좀 간다. 알 수 없는 신생아의 마음이란. 0춘기는 언제 끝나나.'
나는 목욕 후 잠이 들랑말랑한 비몽사몽 상태로 누워있는데, 엄마와 장모님이 조리원에 대한 얘기를 하나보다. 잠도 안 오는데 오늘은 조리원 얘기를 좀 해볼까용? 나도 할말하않이었는데. 헿.
사실 장모님 집에 왔을 때 바로 조리원에 있을 때 썰 좀 풀려고 했는데 시간이란 녀석은 참 무섭지. 눈 깜빡하니 벌써 100일이 코앞. 흠! 아무튼,
산후조리원!
뱃속에 예쁜 태아가 세상 밖으로 나올 날을 기다리시는 우리 예비 엄빠 분들은 출산 후 푹 쉴 수 있는 조리원에 대한 로망이 가득하시겠죠? 벌써부터 그 설렘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기분이에요 헿.
그리고 이미 아기를 낳으신 초보 엄빠 분들은. 음.. 어떠셨나요? 조리원.
이 신생아의 생각으로는 반반이실 것 같아요. 만족했다 와 거기서 우울증 얻어맞을 줄 몰랐다 요 정도?
맞나요옹? 헤헿.
저는 사실 조리원 있을 때 기대보다 행복하지 않았어요. 사실 현생한 이후로 엄마 뱃속 양수 안에서 둥실둥실 떠다녔을 때보다 편안함을 느낀 공간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조리원이 워낙 비싸다고 하니 나름 기대가 있었던 게 사실이거든요. 근데 막상 조리원에 입소해서 저랑 별 다를 바 없이 머리가슴 배(?)의 3등신을 자랑하는 신생아 동기들과 신생아실에 벌렁 누워있다 보니 뭐 특별할 것도 없네! 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래도 우리를 돌봐주시는 이모님들의 숙련된 손길이 나름 편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전 서툴고 엉망이어도 엄마와 아빠의 돌봄이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고 하네요.
“산후우울증을 조리원에서 겪게 될 줄 상상도 못 했잖아.. 350만원이 쓰고 우울증을 겪다니 참..”
들으셨죠? 장모님께 털어놓는 엄마의 속마음.
조리원에 대해 엄마가 얘기한 내용을 제가 짧게 정리해서 말씀드려볼게요!
일단 전염병 시대의 조리원 생활이었다는 점을 참고해주세요.
전염병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돼 제가 있던 조리원은 아빠가 한번 나가면 다시 조리원에 들어올 수 없는 규칙이 만들어졌어요. 이 말인즉슨, 조리원 입소날 아빠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의미예요.
엄마와 신생아와 14일 동안 밖으로 못 나가고 계속 같이 있거나,
아니면 첫날 입소 때 들어와서 등록하고 나가거나.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아빠는 직장을 가야 했기 때문에 첫날에만 같이 있었고 다시 조리원에 들어올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직장이 문제죠.
아빠들! 출산휴가 얼마나 쓸 수 있나요? 5일? 10일?
아니면 남자가 애 낳은 것도 아닌데 니가 왜 쉬냐? 회사가 그러진 않던가요?
이 신생아가 라디오로 들은 현실에 얘기들은 참 마음 아픈 얘기들이 많더라구요.
토닥토닥. 오늘도 힘든 직장생활을 견디고 계신 우리 아빠님들 토닥토닥. 존경합니다.
우리 아빠는 딱 열흘 정도 쓰셨대요.
주말 끼고 하면 14일 동안 엄마랑 저랑 조리원에서 있으려면 충분히 있을 출산휴가 기간이었는데 대체 왜 아빠는 첫날만 있다 도망(?) 간 걸까요?
저도 정확히는 몰라 추측을 해보면, 아마도 저 망할 두 집 살림 때문인 것 같아요. 뭔가 다른 살림을 챙겨야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어른들의 일이니 정확히는 아직도 밝혀내진 못했지만요.
아무튼 그렇게 조리원에 있는 동안 엄마와 나 둘이서만 같이 생활했답니다.
그리고 앞서 엄마의 말을 들어보셨듯이, 저도, 엄마도 조리원에서의 생활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어요.
오죽했으면 엄마는 처음 계약했던 14일 기간을 조금이라도 줄여 이틀이나 먼저 퇴소했는걸요.
얼마나 하루라도 빨리 조리원에 나가고 싶었으면 그랬을까요.
여기서 아직 임신 중이신 예비 엄빠분들은 이해가 안 되실 수도 있어요. 그렇게 비싼 돈 지불하고 푹 쉴 수 있다고 하는 로망의 조리원인데 왜 이틀이나 먼저 나가지? 이런 생각.
엄마 말에 의하면 거의 3-4백만 원이나 주고 조리원에 들어왔는데, 그 금액이면 거의 1박에 30만 원 하는 5성급 호텔에 머물 수 있는 금액이라 당연히 그 정도 수준을 기대했나 보다 하더라구요. 그리고 엄마 친구들도 워낙 조리원 좋다 좋다 해서 그 기대가 더 컸던 거 같다고도 하구요.
하지만, 우리가 있던 조리원은 그렇지 못했죠.
물론 엄마는, 엄마 혼자 남는 게 아닌, 아빠가 조리원 기간 동안 함께 있어줬다면 좋았을 수도 있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아빠가 곁에 있으면 엄마는 온전히 침대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아빠가 없는 엄마들은 조리원 안에서의 모든 '생활'을 혼자 해야 했답니다.
예를 들면 쓸데없이 고급진 자기 그릇에 주는 밥을 들고 날라야 하는데 이 식기가 좋을 걸 과시하기 위해서인지 너무 무거웠다는 것. 가뜩이나 아기 낳느라 손목 관절이 다 늘어난 엄마들에겐 매일 매끼 날라야 하는 식기 그릇이 너무 무거워 힘들었다고.
그리고 하루 종일, 거의 보름의 기간을 똑같은 방 안에 갇혀있어야만 하니 너무 답답했다고 하더라구요. 물론 조리원 내에 좌욕기, 족욕기 등 나름의 편의시설을 제공하긴 했지만 누워있기도 시간이 없는데 나가서 그런 것까지 잘 안 하게 되더라구 하더라구요.
요쯤 되면 우리 예비 엄빠분들은 "왜 누워있을 시간도 없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조리원 안에서의 엄마의 스케줄은 나름 굉장히 빡빡하답니다!
그 스케줄을 잘 보여주는 재밌는 사진이 있더라구요.
짠! 보이시나요?
빡빡한 스케줄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모유 수유일 것 같아요.
아기를 처음 낳아본 초보 엄마분들은 모유 수유가 당연히 처음이시겠죠? 물론 조리원에서 기본적인 방법들을 알려주긴 하지만, 결국 모유 수유를 해내야 하는 건 엄마. 하지만 제 생각엔 아기의 도움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젖병을 가득, 아니 가득이 뭐예요? 반까지 채우는 것도 힘드실걸요?
그렇게 모유수유도 잘 안되고, 하다 지쳐서 누워서 잠깐 쉬면 저 위 사진에 보이시죠?
"따르릉-수유하시겠어요?"
조리원 돌봄 이모님들의 콜이 이어집니다. 그럼 거기다 대고
"아뇨. 전 쉬어야겠어요. 애기는 알아서 좀 해주세요."라고 할 수 있는 엄마 분들이 있을까요?
헤헿. 없으실 거예요. 그렇게 좀 쉬려다 비몽사몽 상태로 또 수유하러 가고,
밤에 막수(마지막 수유)하고 좀 잤나 싶으면 어느새 아침 수유 콜이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죠.
이렇게 모유 수유로도 정신없는데, 조리원에서는 또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초점책 만드는 교육, 아기 씻기는 교육, 마사지하는 교육, 모빌 만드는 교육, 아기 발달 교육 등등 조리원에 지불하는 금액 대비 만족하지 못하는 산모들의 컴플레인을 조리원도 잘 아는지 이것저것 정말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매일 다르게 뺵빽하게 준비해놓았더라고요.
그 프로그램 스케줄을 가만히 보던 우리 초보 엄마들. 아까처럼 과연
"아뇨. 전 쉬어야겠어요. 이런 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엄마 분들이 있을까요?
모유수유에 쉬지도 못하고, 또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 몸을 움직입니다.
아기 키우는 게 처음이고, 앞으로 도움 된다고 하니 힘들어도 배워둘 수밖에요.
왠지 안 하면 내 아이에게 혹시 잘 못해주는 걸까 싶은 걱정하는 마음. 가뜩이나 저 엄마는 모유 유축도 잘해서 젖병을 가득 채웠던데, 나는 젖병 바닥만 간신히 덮어 우리 아기만 모유를 많이 못주는 거 같은 마음인데, 이런 프로그램까지 아이에게 못해주면 그 죄책감은 어떻게 감당하나요.
아기 낳고 몸도 회복이 안된 상태인데, 수유 스케줄도 너무 힘든데, 프로그램까지.
그렇다고 또 안 할 순 없어. 그렇게 조리원에서 하루 이틀 지날수록 몸은 더 힘든 것 같고, 아이를 잘 돌보고 싶은데 나는 그런 엄마가 되지 못할 것 같은 걱정에 마음도 더 힘들어집니다.
근데 아기 낳기 전 주변에서는 분명 조리원이 천국 같다고 엄청 좋다고 돈 쓰는 이유가 있다고 다들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던졌는데 나만 왜 이렇게 힘든 것 같나 하는 생각들이 쌓이고 쌓이다,
그러다 그게 오죠.
물론 조리원이 좋은 점도 당연히 있어요.
그래도 제 시간 되면 밥 챙겨주고, 간식도 주고, 그리고 식기가 좀 무겁긴 했지만 나름 맛있고.
빨래도 알아서 해주고, 무엇보다 막수하고 밤사이 동안은 아기는 알아서 돌봐주니 그 시간만큼은 쉴 수 있고.
또 아기 낳고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엄빠들을 위해 아기 돌보는 방법, 목욕시키기, 모유먹이기, 분유 먹이기, 기저귀 갈기 등등 기본적인 육아 교육을 해준다는 점도 좋아요.
엄마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기를 같은 시기에 낳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친해지려면 급속히 친해질 수 있다는 그런 동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좋은 점이구.
아! 동기 하니까 이 얘기는 하나 꼭 해드리고 싶어요!
제가 신생아로 거기 누워있으면서 한 가지 재밌었던 건, 매일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모자동실이라고 해서, 신생아실에 있던 아기들을 한 시간 동안 엄마가 각자의 방에 데려가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프로그램의 취지는 1시간이라도 엄마와 아기가 온전히 둘만의 시간을 보내도록 하자는 것이었는데,
그때 신생아실 청소도 하고, 조리원 직원분들의 교대시간으로 활용하는 것 같더라구요.
근데 여기서 재밌는 거.
9시 땡치기 무섭게 엄마들이 1분도 늦지 않고 본인 애기를 데리고 신생아실로 허둥지둥 호다닥 달려가서 돌봄 이모님들한테 아기를 건네더라고요. 애기 보는데 익숙하지 않은 초보 엄마들에게 그 1시간이 얼마나 길고, 어려운 시간인지 보여주는 장면이랄까? 공감되면서도 그 모습들이 재밌는 기억으로 남더라고요.
음.. 또 좋은 점이 뭐가 있었더라.. 아!
"그래도 마사지는 좋더라."
엄마가 조리원에서 가장 좋았던 점으로 마사지를 꼽았던 기억이 나네요!
조리원과 연계되어있는 출산 후 엄마들을 위한 마사지가 좋긴 좋더라고.
오죽하면 결국 이 산후 마사지만 잘 받아도 조리원 비용 본전 치기 했다는 말을 할까. 반대로 이 마사지마저 엄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조리원에서의 14일은 하루라도 빨리 퇴소하고 싶은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 뭐. 이런 마사지가 좋다고 해도, 조리원 기본 비용과 별도로 회당 10만 원, 20만 원 이런 식으로 4-5번만 받아도 또 백만 원이 훌쩍 지출된다는 게 또 부담이긴 하지만요.
그래서 결국 엄마와 나, 지불 금액 대비 조리원이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어요.
물론, 요즘 출산 문화 상 몇백의 돈이 우습게 조리원에 쓰는 걸 당연시 여기는 면이 있고,
친정엄마든 시어머니든 산후조리 도와주신다고 하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불편한 게 없지 않아 있으니까 이런 조리원 문화가 급속도록 발전한 거 같긴 해요.
하지만 백번 양보해도 그 금액에 이 정도 서비스라면.. 정말.. 우울증이 안 오면 다행이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예비 엄빠 분들! 산후 조리원에 어떤 로망이 있으신가요?
혹시나 오늘 제 얘기에 그 로망에 조금이라도 금이 간 건 아닌가 괜히 마음이 쓰이네요.
그래도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었어요.
지불 금액만큼 기대하는 게 크시다면 어쩌면 그 믿었던 로망이 산후우울증이라는 불청객을 돌연 초대할 수도 있으니 너무 큰 기대는 참아주세요!
하아아품. 이제 잠이 마구 와서 축뽁이는 이만 꿈나라로 갑니다요오 스륵.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고마워 솜뭉치 너도 잘 자. 음냥.."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