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소개 : 그 새벽 그 호수에서 ...내가 만난 건?

by 빨양c


날씨는 가을인 줄 알고 방심했는데 핵더위였음.

놀랍게도 새벽 4시 기상. 사실 3시 반에 애기가 더운지 울어서 깼는데 그냥 자는척했음. 기저귀 갈고 잠 안 와서 그냥 나옴.

몸무게는 69.85kg 홀리씟.. 괜찮아.. 내일은 좀 더 나아지겠지. 토닥토닥.

듣는 노래는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가 부른 레인보우. (Rainbow / Kacey Musgraves.)




기록이다.

내 하루의, 보통의 일상의 기록.


혹시 먼 훗날 언젠가 내가 나이를 정말 질릴 때까지 먹고 먹어 더 이상 그만 먹어도 될 것 같다고 생각되는 어느 날, 그래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어느 날이 오면,

그리고 운 좋게도 내 눈이, 내 손가락이, 내 머리가 이것들을 볼 수 있다면,

그저 담담히 내 어렸던 날들을 뒤돌아보기 위한

기록이다.


기록이다.

그리고 물론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아이를 위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 어느 순간 내 자리가 공허하게 기억되는 건 싫으니까

이 세상에 남게 될 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남기는 나의 매일의 기록.


내 특유의 지랄발랄한 문체로 기록하고,

배경음으로는 아주 가끔 들으면서 아주 많이 아는척하는 클래식이 흐르고,

그리고 소싯적 목소리 좋다는 이야기 좀 들어본 내 진짜 목소리로 남긴

기록.


오늘은 이른 새벽 집에서 뛰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작은 호수에 갔다.

요즘 칼부림 사건도 많고, 지나가다 비명횡사하면 누구 탓도 아닌 자기 탓을 해야 하고,

뉴스에 반짝하고 기사가 나지만 2, 3일 정도 지나면 이내 잊힌 듯 아무렇지 않게 밥을 떠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그런 정말 이상한 세상에서 살고 있어서

그 새벽에 호수에 가는 게 조금 겁이 났지만,

그래도 달려갔다.


깜찍한 우리 집 열두 살 먹은 까만 노견 사복이와 함께.


그리고 그 새벽 그 호수 가는 길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집 앞 생수 배달을 해주시는 큰 트럭에서 생수병을 잔뜩 내리시는 아저씨.

왼쪽 다리를 절뚝이며 호수를 두 바퀴째 도시는 하얀 머리 할아버지.

꽁무니에 새빨간 불빛을 반짝이며 빨리도 사라지는 자전거 탄 아저씨.

호수 너머 큰 도로에는 세차게 달리기 시작하는 수많은 차들.


그리고 그런 호수를 멍하니 바라보는 내가 있었다.

무척 낯설지만, 생각해 보니 어느덧 서른여덟 해를 함께 지내고 있는 내가.


이건 그런 기록이다.

아무도 못봤으면 하지만, 누군가 알아봐주길 바라는 너무도 진솔한 나의 기록.

앞으로 살게 될 나의 날들을 나의 사랑하는 이들만 생각하며 남긴 대단히 이기적이고 일방적인 기록.


오늘은 그 처음이었다.

2023.9.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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