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그래도 새벽 6시에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선선해 가을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음.
하지만 이따 낮 12시 쯔음에는 작렬하는 햇볕을 느끼며 새벽 6시의 내 생각이 경솔했음을 깨닫게 되겠지.
#2.몸무게는 68.9kg. 1킬로그램 줄긴 했지만 더 체중감량을 해야지. 어느덧 건강을 신경 써야 할 나이.
#3.아기는 아직 자고 있고 고양이 하나 강아지 둘은 아침부터 신난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주시하고 있음.
오늘은 라디오 이야기이다.
원래 새벽 4시 기상해서 동네 한 바퀴를 뛰고 오려는 내 다짐과는 달리 오늘은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지만 굳이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새벽에 이름이 빌리인 우리 집 고양이가 방문에 설치한 쇠창살 안전문을 땅 땅 앞발로 치며
고양이에게 허락된 냐옹이 아닌 나 또는 아내에게 배웠을 나왕~ 나왕~을 해대서 잠을 잘 못 잤다는 변명을 대보겠음.
왜 우리 집 고양이는 새벽마다 안전문을 치며 인간의 언어인 나왕~을 치는 건지.
아기가 태어나고 본인이 받던 사랑과 관심이 조금 줄어든 걸 느끼는 걸까.
아무튼.
그렇게 해서 오늘은 평소보다 두 시간 늦은 새벽 여섯 시에 운동화 끈을 동여 메고 아파트 단지에서 몸은 가볍게 풀고 호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내 작고 소중한 귓구멍에 이어폰을 꽂는 것도 잊지 않았지.
원래는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을 것이지만 시계가 새벽 6시인 걸 본 순간!
자연스레 평소 듣던 라디오 앱을 작동시키고
그러자 자연스레 내 귓구멍으로 흘러들어오는 낯익은 목소리 하나.
정민아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그렇게 달리기 시작.
혹시 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 분들이 여기도 계신지 모르겠다.
워낙 새벽시간대에 하는 프로그램이고 새벽 6-7시는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지만 그다음 시간인 7-8시는 라디오에서는 못 듣고 앱에서만 들을 수 있는 조금은 낯선 형식의 프로그램이라 많이 없으실 수도.
처음에 이렇게 쪼개져서 송출되었을 때는 조만간 한 주파수로 합쳐지지 않을까 했는데 꽤 오랫동안 이렇게 나눠서 진행되는 거 보면, 음 맞다. 주저리주저리 길게 쓰긴 했지만 마음에 안 든다는 얘기.
그거 빼고는 DJ인 정민아 아나운서의 목소리도, 38년 만에 남편과 처음 해외여행 가서 호주 시드니에서 보낸다는 사연이나 자식의 음대 지원 합격 기원 사연 같은 솔깃한 사연 소개도, 그리고 당연히 내 메말라 가는 감성을 잔뜩 채워주는 감미로운 음악들까지.
너무너무 모든 게 내 스타일인 내 최애의 라디오이다.
처음 들었던 게 언제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꽤 오래전이었던 것 같다. 10년까지는 아니어도 그래도 수년 전부터.
생각해 보면 내가 힘들었던 날들, 인생을 걸고 준비했던 시험의 그날도, 그리고 합격자 발표의 날도, 아기가 아직 아내의 뱃속에서 둥실둥실 놀고 있던 그날들에도.
라디오 방송국의 모토대로 정말 내 삶의 배경음악처럼 내가 치열하게 살았던 어느 순간에는 늘 같이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육아 휴직을 낸 이후로 아기를 밤낮으로 돌보는 최근까지는 내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늦잠을 자 못 듣던 날도 많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오랜만에 정겨운 목소리를 듣고 보니 아침 달리기 운동길이 너무 행복했다.
사실 내가 쓴 소설 곳곳에는 라디오 DJ가 사연을 읽는 형식으로 등장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그때 '민아정의 FM라디오'라는 코너로 소개되는 라디오 DJ가 바로 이 정민아의 어메이징 그레이스이다.
사실 프로그램 명 그대로 쓰고 싶었는데, 워낙 저작권이다 뭐다 하는 복잡한 것들이 신경 쓰이고, 그럴리는 없지만 혹시 내 글들이 그 프로그램에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프로그램명을 굳이 바꿔서 쓰고 있다.
소설 속 곳곳에 정민아의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그려 넣으면서 한동안 언젠가는 라디오 DJ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예를 들면 흔한 무명작가가 꿈꾸듯, 평소와 같이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일약 유명 스타작가로 세상 사람들이 이름만 대도 아는 작가가 된다면, 그렇게 글을 쓰면서 꼭 라디오 DJ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이 어메이징 그레이스에서 수년 넘게 누군가의 배경으로 하루의 아침 시작을 함께해 주는 정민아 DJ처럼, 나도 누군가의 삶 한 페이지 한 줄로 남을 수 있는 배경음악 같은 사람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내게 행복일 것이라 믿는다.
또 모르지.
빨양C의 라디오가 언젠가 하루의 시작을 열게 될지도.
그럼 끔찍 아니아니 깜찍발랄한 상상을 해보며,
선선한 가을 아침을 열어본다.
모두의 하루에 평안이 함께하길.
2023.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