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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륫힌료르 Dec 01. 2019

나는 한때 '기레기'였다 (2)

'한때 기레기'의 부끄러운 고백


'기레기' 생활, 때려칠까 말까? 

월요병이 점점 극심해지고 몸 상태가 바닥을 찍을 무렵 드디어 마음의 결정을 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그냥 내 위치를 인정하자. 흘러가는 시간이겠거니, 반복되는 일상이겠거니. 언제나 성실함 하나론 뒤지지 않았으니까 끝까지 성실을 무기로 달려들어보자. 나는 꿈 많은 기자지망생이고, 오늘의 경험은 뭐가 됐든 피가 되고 살이 될 거야.

이후 나는 보란듯이 더 열심히 일했다. 하루 30개가 넘는 기사를 쓰고 또 썼다. 많이 쓸수록 칭찬 받았고 트래픽이 올라갈수록 인정 받았다. 그래, 이왕 하는 거 이 언론사의 트래픽 확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야. 혹시 알아? 나중에 공채에 지원했을 때 좋게 봐줄지. 이만 회의감 따위는 집어치우자!





['한때 기레기'의 죄책감]


"기자님들. 제발 저 좀 예뻐해주세요."

2019년 10월 14일, 가수 설리 씨는 이 말을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났다. 뒤이어 그녀와 절친했던 가수 구하라 씨도 운명을 달리했다.

가슴이 무너졌다. 팬은 아니지만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성장해온 또래이기에 일상처럼 존재했던 그들의 부재는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 그토록 아름다운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괴로웠으면. 살아보니 20대 인생 꿀잼인데 대체 왜...




사람들은 그들이 극심한 악성댓글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라고 한다. 동시에 수많은 악성댓글이 양산되도록 유도한 언론들을 향해 질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얼마 전 SBS '그것이 알고싶다 - 누가 진리를 죽였나' 편을 봤다. 방송의 핵심은 '설리 씨를 죽게 한 사람은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총을 쏴대는 누리꾼들, 그리고 무책임한 기자들'이라는 것이었다. PD가 설리 씨 관련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대부분이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해 지금은 퇴사하고 없다는 것이다.


'저거 5년 전 내 얘기잖아?'

소름이 돋았다. 쓰레기 같은 기사를 쓰지 않으려, '기레기'가 되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음에도 나는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내가 쓴 기사에 '기레기'라는 댓글 하나만 달려도 가슴이 '쿵'했는데, 자신과 관련된 기사마다 악성댓글을 마주한 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첫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해 '기레기' 생활에 대한 합리화를 하는 동안 죄없는 이들이 피 흘리며 쓰러져갔다. 나는 그저 '첫 사회생활'이라는, 그럴듯하게 포장된 무형의 것을 지켜내려 했을 뿐 그로 인해 엄한 사람이 상처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처 살피지 못했다. 그때 내가 너무 어려서, 뭣 모르는 햇병아리여서 그랬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려 해도 나로 인해 어떤 이가 상처 받았을 수 있다는 죄책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너무 늦었습니다. 허나 이제라도 고개 숙여 사죄드립니다. 행여 내 부끄러운 첫 사회생활이 당신에게 상처가 됐다면, 혹시라도 그랬다면, 그저 의욕만 앞섰던 어리석은 한 젊은이의 실수였다 생각하고 너그러이 이해해주십시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기레기'도 처음부터 '기레기'는 아니었다]


'휴.. 참 먹고 살기 힘들다. 그쵸?'

지금 이 순간에도 쓰레기 기사를 양산하는 기자들을 보면서, '한때 기레기'였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들도 5년 전 나처럼 처음부터 '기레기'가 되려고 한 건 아닐 것이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이렇게라도 해야 눈도장을 찍을 수 있으니까, 이것도 꿈을 이루는 관문이라 생각되니까 그러는 거지. (물론 일부 몰상식한 '진짜 기레기'들도 있을 것이다.)

"기사 왜 이딴 식으로 쓰냐"고 댓글로 아무리 뭐라고 해봤자 '기레기'들은 모른다. 그 기사는 그가 하루 만에 양산한 30여 개의 기사 중 하나이고, 정작 '기레기' 자신은 그 기사를 다시 거들떠보지도 않으니까.




'기레기' 시절 내 꿈은 언론사의 인질로 붙잡혀 있었다. 손으로 쓰레기 기사를 양산하면서도 눈으로는 뛰어다니며 취재하는 선배들을 수없이 좇았고, '언젠간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게 지금의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언론사는 나 같은 꿈쟁이들을 이용해 트래픽을 늘리고 광고수익을 챙겼다. 정작 정규직인 그들은 자신의 바이라인을 달고서는 그런 쓰레기 기사들을 양산하지 않았다. '인턴기자'라는 보기 좋은 허울 속에 내 이름 석 자만 계속해서 부끄러워질 뿐이었다. 나는 최대한 담백하게 기사를 쓰려 발버둥쳤으나 데스크는 내가 쓴 기사의 제목을 자극적으로 바꿨고, 높은 트래픽 수를 기록한 이들에게 '이달의 기자상'을 수여하는 등의 방법으로 채찍질했다. '기레기'를 만든 건 언론사였다. '기레기'도 처음부터 '기레기'는 아니었다.




인턴기자 최종합격 통보를 받은 날, 어디서건 머리만 대면 잠드는 내가 설렘으로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난다. 언론고시를 준비하겠다며 없는 자취생 형편에 신문 대여섯 부를 구독하고, 시사토론회에 참석하고, 대학신문사 논설위원으로도 활동한 것은 물론 우리학교엔 없는 신문방송학과를 찾아서 타 학교 학점교류까지 했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쳤다. 22살의 나는 그토록 간절하게 꿈을 향해 달렸을 뿐인데. 그렇게 전력질주해서 달려간 곳에서는 '기레기'라는 수식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악착같이 6개월을 채우고 퇴사한지 한 달쯤 지났을까? 선배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6개월 더 일해보지 않을래? 인턴 중에 네가 제일 열심히 했어서 제안하는 거야."

"죄송하지만 더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선배의 제안을 거절했다. 더 이상 내 꿈으로 장사를 하고 싶지 않았고, 내 이름을 내세운 쓰레기 기사를 더는 양산하기 싫었다. 내 혹독한 첫 사회생활은 이것으로 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자지망생들을 '기레기'로 내모는 언론들에게 고한다.

"그런 기사가 꼭 필요하다면 당신들 이름을 내걸고 써라. 당신들도 떳떳하지 못할 기사를 왜 꿈 많은 기자 지망생들에게 떠넘기는가?"


그리고 '한때 기레기'로서 '후배 기레기'가 된 기자지망생들에게 감히 고한다.

"언론사의 꿈 장사에 놀아나지 마시라. 설령 그렇게 해서 진짜 기자가 된다한들, '기레기' 시절 내뱉은 수많은 쓰레기 기사들은 영원히 당신의 가슴 한 구석에 부끄러움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시들어버린 아름다운 꽃 두 송이. 그들이 목숨 걸고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를 부디 모두가 귀담아 들어주길. 한때 간절하게 언론인을 꿈꿨던 사람으로서, 언론들의 자성의 목소리로 말미암아 언론 생태계가 정상화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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