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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륫힌료르 Oct 12. 2019

글쓰는 사람이 '과거의 나'를 잃는다는 것

싸이월드를 기억에 묻으며



그 시절 우리의 추억이 깃든 싸이월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 한다. 오늘에서야 관련 기사가 났지만 싸이월드가 먹통이 된 건 이번 주 화요일부터였다. 월요일까지만 해도 다이어리에 일기를 썼으니까. 요즘 세상에 누가 싸이월드를 하나 싶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곳에 매일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었다. 화요일에도 언제나처럼 일상 속 작은 감상을 옮겨놓으려 접속했는데, 로그인조차 되지 않았다. 처음엔 일시적 오류겠거니 하고 앱을 삭제했다 다시 깔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사실 이번 주 내내 나는 넋이 나가있었다. 어언 15년치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TV를 봐도 집중이 안 됐다. 누가 알았을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싸이월드가 존폐위기에 처할 줄. 이렇게 아무런 공지 없이 허망하게 무너질 줄. 종이 일기장은 불에 태우면 재라도 남는데 디지털 세상은 소름 돋게 무섭다. 나만의 세상이, 내 10대가, 내 대학시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 글은 모두 한 번씩 싸이월드 일기장을 거쳐 쓰여진 글이다. 일상 속 작고 소중한 느낌들이 문득 나를 스칠 때면, 그 생생한 느낌을 잊지 않으려 어설픈 글로 싸이월드에 업로드하곤 했다. 그래서 어쩌면 어딘가에 올려진 완성된 글보다 싸이월드 일기장에 적힌 글들이 더 날것의 글, 솔직한 글이었을지 모른다. 비밀글을 업로드할 때면 나만의 공간에서 마음의 소리를 마음껏 내지르는 기분이었다. 그러면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되면서 스트레스가 풀리곤 했다. 싸이월드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그러나 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세상에 영원이란 없는 법이고, 내 비밀공간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그걸 잊고 있던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사상누각처럼 쌓여있던 내 설익은 글들과 반짝이던 어린시절에게 미안하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글이란 건 참 신기해서 그날 그날 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별 생각 없이 기록한 오늘의 감상이 자산이 되어 내일의 감상이 되고, 그것이 또 1년 후 10년 후의 감상이 된다.


내가 좋아했던 예능 프로그램 '대화의 희열'에서 가수 아이유는 본인의 일기장을 토대로 가사를 써내려간다고 했다. 이에 김중혁 작가가 공감하며 말했다. "글 쓰는 사람은 과거의 나를 착취함으로써 글을 쓴다"고. 내게는 아이유의 일기장이, 김중혁 작가가 착취한 '과거의 나'가, 싸이월드 일기장이었다. 날것의 내가 고스란히 드러나있는 공간. 때론 철없던, 때론 애늙은이 같았던 내가 일관성 없이 널브러져있던 곳. 추억을 잃는다는 건, 특히 글 쓰는 사람이 과거의 글을 잃는다는 건 이토록 끔찍한 일이다.

처음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보다 많이 차분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나보다. 한 페이지씩 인생을 채워나갈 때마다 쌓여가는 폴더들을 보는 재미에 살았으니까. 언젠가 이 다이어리를 엮어 책으로 내도 재미있겠다ㅡ'여대생 일기장 훔쳐보기' '사회초년생 일기장 훔쳐보기' 따위의 것들로ㅡ하고 가슴 설레는 상상을 하던 때가 그립다.

'과거는 과거가 되게 하라(Let bygones Be bygones)'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내겐 참 어려운 말이다. 잃어버린 나의 15년에 대한 애도 차원에서 조금만 더 슬퍼하자. 그리고 추억은 추억으로 묻어보자. 내가 기억하는 한 그 시절 그 순간의 느낌은 영원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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