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과 자랑 1

by 노수연

나는 줄곧 관심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전공으로 악기를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무대에서 나에게 집중하는 그 느낌이 좋았기 때문에, 무엇인가 카타르시스가 느껴졌기 때문에 시작했다. 친구들의 모임에서도 중심이 되고 싶었고 내가 잘나서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받기 원했다. 그래서 살도 빼고 학회장도 하고 과탑이 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아무리 그런 것들을 이루어내어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처음에만 ‘오~’ 할 뿐 남들에게 관심을 끌기에는 택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저 잘난척하는, 쓸데없는 자랑거리가 될 뿐이었다.


남에게 관심이 없다.

내가 지금까지 느낀 것은 사람들이 생각보다도 더 남에게(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난 처음에 다른 사람들이 내 생각을 엄청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친구나 지인을 만나고 집에 오는 길에는 항상 내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곱씹어보며 자책하며 힘들어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던 중 어떤 책을 읽으면서(무슨 책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깨닫게 된 사실이다. 그 책에서 사람들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하면서 당신은 나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을 얼마나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나도 남들 생각보다 내 생각을 훨씬 많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의 자랑거리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때 다른 사람들도 내 자랑거리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최대한 관심을 안 받으며 살아보기로 다짐했었다. 자랑을 한다고 해도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 주고 축하해 주는 사람들에게만 하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굳건했다.)



나는 관심종자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브런치에서 작가로 승인이 되었다는 알람이 시계 진동으로 울렸다. 나는 집에 혼자 있었지만 ‘엥???’ 이러면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리고 정말 붙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흥분해서 너무 나도 자랑하고 싶었다. 관심을 받지 않을 거라던 방금까지의 다짐은 바로 박살 나버렸다. 나는 자랑을 하고 싶었고 인스타 스토리에 올려버렸다.(친한 친구들만 볼 수 있게 올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많은 응원을 받아서 기분이 좋긴 했다. (나에게 하트를 눌러준 사람들, 댓글로 응원해 준 사람들 모두 고마워요.) 어떻게든 관심받고 싶은 이런 본능을 거스를 순 없는 것 같다.



모순

생각해 보니 이 브런치에 글을 올린 다는 것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싶어서 올리는 것이었다. 글을 써도 아무에게도 안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방금까지는 남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안다고 하면서, 자랑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할 거라고 하면서 나를 아무도 모르는 이런 곳에 글을 올린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오늘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나는 정말 관심 종자라는 것을. 남들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난 끊임없이 관심을 받으려고 살 것 같다. 주의해야 할 것은 안다. 남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줄 거라는 기대를 하지 말 것.



관심을 주는 것은 어렵다.

관심은 곧 사랑이다. 보통은 나에게 쏠려있는 이 관심을 남에게 주기란 어려운 것 같다. 처음에 몇 번 관심을 주는 것은 쉽지만 하나에 꾸준히 주는 것은 쉽지 않다.

‘허브식물학'이라는 교양을 듣게 되면서 바질과 루꼴라를 키우게 되었다. 혼자서 식물을 키워본 적이 없는 나는 식물 키우는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심어버렸다. 처음에는 새싹이 올라오는 게 너무 신기해서 매일 지켜보게 되었지만 어느 정도 자라고 몇 번 먹은 뒤에는 관심이 점점 줄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루꼴라에는 진드기가 잔뜩 했고 살충제를 뿌려야 했다. 하지만 매번 살충제 사는 것을 까먹었고 루꼴라는 죽고 말았다. 씨앗을 퍼뜨리기 직전이어서 더 아쉬웠다. 내가 루꼴라를 키우면서 관심을 지속적으로 주어야 하는 것은 굉장히 귀찮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만큼의 애정이 없던 것일 수도 있다.



너 머리 잘랐어? 예쁘다.

루꼴라는 죽어도 내 삶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인간관계는 그렇지 않다. 어떤 것을 키우는 것과 똑같이 인간관계도 꾸준하게 관심을 주어야 계속해서 지속할 수 있다. 그래서 남에게 관심을 잘 쏟는 사람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다. 예를 들어 친구가 염색을 하거나 헤어스타일의 변화가 있을 때 나는 모르고 지나쳐버리거나 상대방이 먼저 어떠냐고 나에게 물어본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항상 그것을 눈치채고 바뀐 스타일이 좋다며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좋다.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나의 변화를 알아봐 줄 때의 그 기쁨은 크다. 그래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나는 눈썰미가 없는 건지 그냥 친구에게도 관심이 없는 건지 항상 못 알아챈다.



내가 관심을 받고 싶다면 나도 관심을 주자.

이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남들에게 관심을 주지도 않으면서 나에게 관심을 쏟기를 바랐던 것 같다. 처음에는 내 글을 읽지도 않고 올린 지 1분도 안되어서 바로 하트를 누르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정성도 없어 보이고 자기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서 누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어쨌든 내 글에 첫 번째로 관심을 준 사람이고 한 번이라도 그 사람의 피드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관심이 어떤 방식으로든 생겼다는 것이니까.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받고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성격상 아무 글에나 하트를 누르고 다니지는 않겠지만 나는 관심을 원하니 앞으로 많은 사람들의 글을 읽고 관심을 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관심과 사랑은 기브엔 테이크가 아니다.

내가 항상 곱씹으면서 살아가는 생각 중 하나다. 나는 내 주변인들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한다. 나를 좀 희생하더라도 그들이 편하거나 행복하면 나에게는 그게 행복이다. 내가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나만의 방법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친구들이 내 고생이나 배려를 알아주고 보답해 줄 때가 많다. 하지만 가끔 내 배려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아예 보답을 안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기분이 나빴지만 지금은 그냥 별 생각이 없다.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은 기브엔 테이크가 아니다.”라는 말을 들은 순간 그냥 그게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상대방이 바라지도 않은 관심과 사랑을 주고서 보답받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내가 이 사람이 좋아서 내 관심과 사랑을 쏟는 것이지 무언가를 바라고 주는 순간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이 박혀버렸다.


+<플란다스의 개>의 영화 릴스

인스타 릴스를 보다가 ‘모든 선행은 전부 환영받지 못한다.’라는 문구가 나를 잡았다. 나는 선행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나도 이런 불편한 선행(?)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자취를 하는데 엄마는 항상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도 훨씬 많은 양의 반찬을 준비한다. 자취방에서 밥을 먹긴 하지만 이미 내 냉장고는 전에 받았던 음식들로 꽉 차서 넣을 공간이 없다. 난 심지어 반찬을 잘 먹는 사람도 아니다. 반찬을 보내지 말라고 얘기를 계속해도 엄마는 굽히지 않고 보냈다. 물론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다행히 괜찮다. 하지만 엄마는 자취를 하는 사촌언니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 언니도 냉장고가 꽉 차서 부담스러워하는데도 “에휴 너는 본가도 자주 못 가면서 그냥 먹어.” 보는 내가 다 숨이 막힌다. 언니가 진짜 받기 싫어하는 게 보인다. 우리 엄마 앞에서는 싫다고 할 수 없었겠지. 그 릴스는 이런 상황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댓글에도 딱 나 같은 사람이 있었다. “자식이 안 먹는 음식 계속 많이 보내기.”)


한 가지 더 생각난다. 아빠는 배부르고 먹기 싫은데도 몸에 좋은 거라며 엄마 앞접시에 놓는다. 거부하면 약간의 짜증을 낸다. 엄마도 먹기 싫은데 자꾸 주니 짜증을 내고 다시 아빠 앞접시에 놓으면 또다시 짜증을 낸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챙겨주려는 것은 알겠는데 진짜 두 분 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


이거 먹어”

“당신이나 먹어”

“아휴 먹으라니까”

“나 엄청 먹었어 배부르다니까?”

“아잇 다시 주지 말라고!”


외식할 때마다 반복되는 레퍼토리인데 바뀔 생각을 안 한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건 알겠는데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강제로 주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일까?



관심=사랑?

나도 모르게 위에 관심은 곧 사랑이라고 적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 자신이 조금 안쓰러워졌다. 관심종자는 사랑받고 싶어 안달 난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방금 깨달았다. 나는 사랑이 받고 싶었구나. 지금 받는 사랑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왜 나는 계속해서 사랑을 갈구할까. 나에게는 얼마큼 필요할까? 이 욕구가 채워지기는 할까? 아직도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 이 갈증이 생기는 것일까? 아니면 도파민에 중독되어서 그러는 것일까? 많은 물음표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