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by 노수연

여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는 ‘물질적ㆍ공간적ㆍ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라고 한다. 나는 항상 여유롭게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시간 약속을 지켜야 한다면 20분 전에는 도착하는 게 내 일상이다. 촉박하게 약속시간까지 도착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리고 빨리빨리가 아니라 느릿느릿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20분이나 일찍 도착하는 것 때문에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준비하고 갈 때까지 엄청 천천히 행동한다.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처럼 천천히 걷는다. 그래서 약속이 있으면 나가기 2~3시간 전에 일어난다. 새벽약속이라고 해도 2시간 일찍 일어난다.) 나는 설거지나 청소, 빨래들을 서둘러서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영상을 틀어놓거나 느긋한 노래들을 틀어놓고 여유롭게 해결한다.


나는 여유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그림이나 문서에 여백이 있듯 사람도 여유, 어느 정도의 공간이 있어야 좋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누구를 도와줄 때에도 내가 여유가 있어야 도와줄 수 있고 누구를 사랑할 때에도, 일을 할 때에도 여유가 있어야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여유가 없다면 누구를 도와줄 수도 없고 누구를 챙겨줄 수도 없으며 완성도 있는 작품이 만들어지기 쉽지 않다. 여유의 관해서 심리적인 실험도 있었다. 참가자들에게 옆 건물에서 면접을 보게 하는데 시간이 많은 사람과 시간이 적은 사람의 차이가 굉장히 컸다. 시간을 많이 준 사람들은 중간에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었지만 시간이 적은 사람들은 10%만이 도와주었다는 실험이 생각난다. (라플위클리에서 이동진 평론가님이 알려주셨다.) 사람은 돕고 살아야 하는 동물인데 앞으로 여유가 계속해서 없어진다면 인간은 멸종하고 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여유는 친절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최근 로저 페더러가 ‘모두에게 친절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광고를 봤다. 나는 그 말에 너무나도 동의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친절하지는 않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친절하지 못한 사람들은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내 것을, 내 마음을 나누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호주에 가서 친절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다. 그 작은 친절이 하루 종일 나를 기분 좋게 만들고 도시의 이미지, 나라의 이미지까지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최근에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친절을 베풀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기분이 안 좋더라도 웃으려고 하고 남을 도와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내가 있지 않을까 싶다. 깊은 친구가 거의 없던 내가 정말 친하고 가족처럼 생각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나를 피하지 않고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나가는 모습들이 사실 꿈만 같다. 이런 일들은 나에게 평생 일어날 것 같지 않았는데 이 여유와 친절이 주는 선물이 너무나도 커서 행복하다. 그리고 여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더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손해

요즘 커뮤니티(유튜브, 뉴스 등)에서 ‘최근 MZ들은 자신의 것만 챙기려고 한다, 내 것은 조금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한다.’라는 내용이 많아지고 있다. 나도 물론 MZ이긴 하지만 많이 느끼고 있다. 나에게 손해라고 생각하면 칼같이 거절하거나 도와주지 않는다. 내 것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도와주고 싶은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상에는 언제나 내 것만을 100%를 챙기면서 살 수 없다. 내 것을 양보하거나 희생하는 때가 항상 있다. 그런데도 정말 비즈니스적으로만 사람들을 대하거나 행동한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까지 손해를 절대로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 마음의 여유는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너 곰 같다는 소리 많이 듣지?

나는 여유를 좋아하는 만큼 빨리빨리를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시간만 있으면 모든 행동들을 느릿하게 하는 편이다. 그리고 어떤 것을 배우는데 느린 편이라서 선생님들이 답답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예전에 개인 레슨 선생님 중 한 분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너 곰 같다는 소리 많이 듣지?’ 사실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맞다고 대답했다. ‘곰'은 좋은 이미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통 곰과 여우로 많이 비교하는데 곰은 성실한 이미지이고 여우는 꾀를 부리는 약은 이미지 이기 때문에 나에게 칭찬을 하려는 줄 알고 맞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뒤에 오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너 곰 같다는 소리 많이 듣지?’

‘네’

‘그거 칭찬 아니야.’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날은 레슨을 망쳤다. 그 말 때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말에 상처를 받았던 것은 분명하다. (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이후로 몇 분의 선생님들이 곰탱이 같다는 말을 했다. 어쩌면 계속 그런 말을 들어왔지만 그제야 ‘곰'같다는 말이 더 잘 들린 것일 수도 있다. 이제는 칭찬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씁쓸했다. 나는 그 곰 같다는 말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다시 그 선생님에게 여쭈어보고 싶다. 어느 부분을 보고 곰 같다고 한 것일까. 느긋해서? 레슨 할 때 예민하지 못해서 한 번에 캐치 못하는 거? 내가 수동적이어서? 순발력이 없어서? 말하는 것이 느려서? 말을 잘 안 해서? 소심해서? 싹싹하지 못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한 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느린 행동들과 항상 무덤덤한 반응 때문에 그렇게 말한 거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그게 잘못된 것인가?라는 물음표가 떠오른다. 나도 빨리빨리 해야 할 때는 서두른다. 시간 약속을 어긴 적도 거의 없고 과제 제출 같은 기한이 있는 일에는 철두철미하게 지킨다. 내가 여유로운 것이 좋아서 천천히 하는 것이 나쁜 것인가? 아니면 사회에서 여유를 부리기에는 너무 사치인가? 그저 답답하셨던 걸까? 갑자기 선생님이 왜 그 말을 하셨는지는 모르겠다. 나를 곰탱이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충격요법(?)으로 말하신 거라면 실패했다. 그 이후에 곰 같다는 말을 해석하려고 애쓰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잠시 느긋한 삶을 그만두기도 했지만 대학생이 되고 자유로운 시간이 훨씬 더 많아지면서 더 곰처럼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충격이 컸던 그 말을 듣고도 나는 여유와 느긋함을 포기할 수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충분한 여유를 가지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콧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나갈 준비를 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큰 행복이다. 나는 이 여유를 포기할 수 없다. 천천히 생각하고 지나가는 것들을 자세히 보는 행복들을 지나칠 수 없다. 나에게는 그 행복들이 크다. 쓸데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잠시라도 불안을 없애주는 여유를 꼭 가지고 싶다.



공원

내 최고의 행복 중 하나는 공원에 가서 하루 종일 누워있는 것이다. 공원은 바쁨이 느껴지지 않는다. 모두가 여유롭다. 마음의 여유와 신체적인 여유를 얻기 위해 공원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여유로운 공간과 여유로운 사람들을 구경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공원에 하루종일도 있을 수 있다.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볼 때면 모든 걱정과 잡생각이 없어진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공원에 간 시간들을 잊을 수가 없다. 돗자리와 공원만 있다면 살 수 있을 것 같다. 공원은 나에게 가장 큰 쉼터이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