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다

by 노수연

예민하다.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
‘어떤 문제의 성격이 여러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중대하고 그 처리에 많은 갈등이 있는 상태에 있다.’


‘예민하다’는 사실 그렇게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되게 예민하네,’

‘뭘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해’


나는 이 ‘예민’이라는 단어의 느낌을 긍정적이게 바꾸고 싶다.



진짜 예민한 사람은 예민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실 나는 그렇게 예민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보지는 못했다. 곰 같다는 말은 들어봤다. 하지만 나는 나 스스로가 굉장히 예민하다는 것을 안다. 유튜브 쇼츠를 보다가 그런 말을 들었다. 예민한 사람일수록 배려심이 강하고 겉으로는 무던하고 순둥순둥 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냥 나를 보고 하는 말 같았다. 나는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을 파악하는데 굉장히 날카롭다. 아주 작은 표정이나 행동으로도 그 사람의 기분,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도 빠르게 알아챈다. 지금까지 이런 신호의 80%는 적중했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예민한 내가 싫었다. 상대방의 신호를 과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고 상대방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괜한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항상 예민하지 않은 척을 해야 해서 에너지 소모가 굉장히 크다. 집에 오면 정말 녹초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지금은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예민함 덕분에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지고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사실 참고 있다.

예민하면 상대방의 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상처를 받기도 한다. 상대방은 별생각 없이 말한 것들도 나에게는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예민하면 상대방이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 너무 잘 보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느 정도 상처를 받기도 하고 내가 해주는 배려가 허무해질 때도 있지만 그냥 참는다. 여기서 내가 짚고 가봤자 좋을 일이 하나도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냥 저런 사람인가 보다 하거나 내가 예민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그것이 되지 않아서 혼자 분에 차거나 엄마랑은 자주 싸웠다. 다행히 지금은 참아도 큰 타격은 없다. 잠깐 그들이 조금 미워 보이기는 하지만 금세 잃어버린다.



예민 아니고 섬세.

졸업연주를 하는 날 메이크업샵에서 헤어를 담당하시는 원장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예민’이라는 주제가 나왔다. 원장님도 처음에는 예민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빴다고 하셨다. 예민하다는 말이 결코 좋은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하셨다. 완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다. 딱 위의 글을 써놓은 상태에서 이 대화를 해서 신기하기도 했다. 원장님은 이 생각에서 더 나아가셨다. 예민하다는 것은 더 꼼꼼하고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셨다. 모든 일은 작은 디테일로 결정이 되는데 예민한 사람만이 그것을 캐치하고 잘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예민한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위로와 힘을 주셨다. 원장님도 옛날에는 예민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셨다가 지금은 (물론 속으로) ‘네가 예민하지 못하니까 내가 더 잘하는 거야.’라고 생각하신다고 한다.


그러시면서 예민이 아니라 섬세하다는 표현이 훨씬 어울린다고 하셨다.

“우리는 섬세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 말을 듣는데 어딘가 위로가 되었다. 원장님의 의도는 아닐 수 있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섬세한 사람들이어서 작은 것들도 지나치지 않고 완성도 있게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섬세한 사람들이 더 똑똑한 사람들이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다.)



예민 = 배려 = 똑똑함

나는 배려는 곧 예민함과 똑똑함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모르는 작은 배려까지 하려면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빠르게 눈치챌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취향까지도 생각해야 진정한 배려가 된다. 나는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이것저것 생각해서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최고의 배려를 하려고 노력한다. 배려를 잘하는 사람들은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결론이 나온 것 같다. 배려에 관한 이야기는 후에 ‘다정’에 대해 글을 쓸 때 더 쓰려고 한다.



예민은 나에게 선물이다.

챗 지피티에게 예민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냐고 물어봤더니 ‘세상을 더 깊게 살아내게 해주는 렌즈’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예민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 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받아들일 테니 조금 더 풍부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예민한 사람은 세상을 더 깊게 살아가다 보니 생각도 많을 것이고 삶을 조금 더 진지하게 대할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참 좋다. 삶에 대해서 끝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들이 멋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예민한 것은 축복이다. 챗 지피티의 말처럼 예민은 나에게 선물이다. 예민함은 나를 깊은 사람으로 이끌어준다. 세상을 더 다채롭게 보여준다. 고마워 나의 ‘예민’아.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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