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과 자책, 그리고 실수

by 노수연

죄책감과 자책

나는 내 잘못으로 인해 상황이 어그러졌을 때 자책을 하며 죄책감을 느낀다. 나 혼자 하는 일이라면 괜찮지만 여럿이 하는 일이라면 나 스스로가 미워서 참을 수가 없다. 나에 대한 혐오감이 든다. 상황이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고 바로 잡을 수 있는 정도라고 할지라도 자책을 심하게 한다.



불안함

처음에는 내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화가 나고 인정을 하고 나면 극도로 불안해진다. 내 탓이 되어버리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일이다. 여기서 남이 나를 낮게 보는 것에 대한 불안함도 포함이 되어있다. 나를 욕하고 멍청한 사람으로 볼 것 같은 불안함이다. 그게 사실일지라도 그렇게 보이기는 싫다.



용서

또 다른 불안함은 용서에 대한 불안함이다. 상대방이 사과를 받아주지 않고 용서를 하지 않는다면 죄책감이 평생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나는 죄책감을 떨쳐내기 힘든 사람이다. 용서를 받아주고 분위기가 풀어져야 마음의 안정이 생기며 꼭 다시 나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것을 확인해야 확실히 마음이 놓인다. 옛날에는 내 마음 편하자고 계속해서 사과를 하고 용서를 요구한 적도 있다. 지금은 원하지도 않는 사과를 하는 것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과를 한 두 번 정도만 하고 상대방이 받아줄지 않을지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과를 받아주는 것은 그 사람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이 용서에 대한 불안함을 평생 안고 가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피곤한 일인 것 같다. 하지만 내 잘못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



죄책감과 자책의 사이

가족여행을 갔을 때 일이 터졌다. 결산안을 써서 감사위원장에게 전달했는데 급하게 전화가 왔다. 이번 달에 내가 학과 통장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잘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졸업연주지원비용에 대한 문제였다. 일부는 개인통장을 사용해서 돈을 걷었어야 하는데 전부 학과통장으로 걷는 바람에 증빙자료가 필요해졌다. 내가 돈을 훔친 것은 아니기에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감사를 진행하는 친구가 총학생회에 보고를 할 때 골치가 아파지는 것이었다. 학과 통장에 있는 돈을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학과통장을 사용했다는 그 기록이 남아서 문제가 되었다. 총학생회에서 결산안을 보면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감사위원장을 맡는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 불찰이었다. 내 생각이 짧았던 것이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식은땀이 흐르고 이 친구에게 미안해서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던 아빠와 사촌들은 별 일 아니라고 말하며 죄책감을 그렇게까지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자기 직전까지도 그 친구에게 미안해서 죽는 줄 알았다.


이렇게까지 죄책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궁금해졌다. 죄책감을 떨쳐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죄책감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맞을까? 내가 이에 대해 챗지피티에게 물어보니 두 모습 다 필요하다고 했다.


“이건 사실 두 방향이 모두 필요해요.
죄책감은 억누르면 더 깊이 스며들고, 붙잡으면 자책으로 굳어버리거든요.”


사실 나도 알고 있다. 죄책감에 너무 깊이 빠져들면 자책으로 넘어가버린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죄책감이 있어야 성장을 하고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지만 그것에 너무 빠져버리면 안 된다. 죄책감과 자책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 자책으로 넘어간다. 9년 전의 일도 지금까지 붙잡고 있다.


자책으로 넘어가면 스스로를 혐오하고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하기 시작한다. 완벽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더 나아가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위의 사건에서도 그냥 죽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 보면 죽을 만큼 심각한 사건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내 생각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죄책감과 자책이 조금 심각한 단계인 것 같다. 그래서 혼자 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누군가와 같이 하는 직업은 힘들 것 같다. 지금의 작은 실수에도 엄격한 내가 만약 큰 실수를 한다면 그때는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무섭다. 모든 것을 회피하고 죽어버릴 수도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아무리 혼자 일하는 직업이라도 사람을 만나야 하고 함께 일해야 하는 경우가 분명 온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무서운 것 같다.



실수

아무리 잘 지내고 잘해주었던 사람이라도 실수(잘못)로 깊은 사이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나는 그것을 안다. 일도 마찬가지다. 한 번의 실수로 모든 신뢰를 잃어버린다. 내가 좋아하는 지코의 노래 중에서 이런 가사가 있다.


백 번의 선행은 모래 위 한 번의 과오는 바위에 다 새길 거야

- 지코 ANTI(Feat. G.Soul) -


나는 이런 점이 참 무섭다. 누군가는 실수를 할 수 있다고 다독여주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이 사회가 원망스럽다. 나는 이미 사회의 시선에서는 큰 실수를 했다. 전공을 잘 못 선택한 것이다. 나는 내 전공을 4학년이 된 지금 시점에서 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해온 것이 아깝다며 포기하지 말라고 설득한다. 예전에 글쓰기나 편집자에 대한 목표가 없었을 때 무작정 악기를 그만두겠다고 말하자 교수님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셨다. 아무런 목표 없이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하셨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 말에 상처를 받았다. 악기를 그만두게 된 것이 마치 살 이유가 없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시간을 낭비한 것 같아서 괴로웠다.


그리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어쩌면 극복하지 못한 마음의 상처, 트라우마, 욕심 때문에 생기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이겨내기 힘든 감정과 상처가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나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같은 실수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수도 없이 연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또 실수가 나오더라도 계속 시도해보아야 한다. 알고 있지만 참 힘들다.



조금만 너그러워지자. (나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이런 작은 잘못에도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심각하다. 이제는 반대로 생각하려고 한다. ‘잘못해도 죽지는 않는다.’ 수습하면 된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된다. 사과를 받아줄 거라는 기대를 하지 말자. 세상에는 너그럽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자. 그들에게 나오는 반응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자. 제발 내 책임에 회피하지 말자.

분명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실수를 하더라도 조금 더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실수를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처럼 성장하는 것이 조금 더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조금만 더 따뜻해지자.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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