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감. 이것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가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작은 단위부터 큰 단위까지 많은 곳에서 소속감을 느낀다. 가족, 친구, 학교, 직장, 팬덤, 나라 등 우리는 계속해서 어딘가에 소속하려고 애를 쓴다.
일단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있지 않다면 매우 불안함을 느낀다. 제일 많이 느끼는 때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가 아닐까. (지금 내 상황이다.) 대학교 졸업을 하고 나면 아무 소속이 아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백수’가 된다. 졸업생들은 소속감이 없는 것을 처음 경험하게 되고 많이 방황하고 불안해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대학원으로 학생인 신분을 미루기도 한다. 사촌언니도 대학원에 다닌다. 내가 언니에게 교육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을 때 언니는 적극 찬성했다. 물론 찬성하는 이유들이 굉장히 많았지만 그중에서 제일 꽂혔던 말은 ‘소속감’이었다.
“어딘가에라도 내가 소속이 되어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데~”
너무나도 맞는 말이었다. 자기소개를 할 때면 어디 소속인지 말할 수 있는 것. 나와 같은 상황, 같은 뜻을 바라보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단체, 소속이 있다는 것. 그것이 엄청나게 크게 다가왔다. 나는 그때부터 ‘소속감’이라는 단어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외로움은 사람이 가장 잘 느끼는 감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항상 어떤 장소를 가던지 ‘혼자'가면 너무 외롭다.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온 사람들 중에 나만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이 너무 싫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그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물론 나도 혼자만의 시간을 꼭 가져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보내는 동시에 외로움도 같이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서 잘 논다는 사람들은 다 거짓말 같다. 외로움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외로움에 익숙해지고 무뎌진 것뿐이다. 스스로가 외로움을 타고 있는지 인지를 못 할 뿐이다. 분명 그들도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말을 걸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외로움은 없어진다. 미술관에 가든, 영화를 보든, 책을 읽든, 축제에 가든 뭘 하든 우리는 대화할 사람이 필요하다. 즉석에서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다. 나는 혼자 가서 그 외로움을 견뎌 낼 자신이 없다. 물론 혼자서 영화도 보고 카페도 가지만 항상 외로움에게 지고 돌아오는 기분이다. 이러는 것도 가끔이고 몇 번이지 평생 이래야 한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외로움’은 굉장히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소속감에 더 매달린다.
SNS에서 혼혈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일본과 프랑스 사이의 혼혈이었다. 흑발이고 아시아계의 외모를 가진 이 분은 태어난 곳은 프랑스였는데 외모로 인해서 친구들이 놀리고 인종차별을 받았다고 했다. 본인은 프랑스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주변에서 자꾸 어디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았고 본인은 일본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에 갔더니 자신의 머리색과 외모가 비슷해서 소속감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가게에 들어가서 계산을 하는데 외국인이 일본어를 잘한다는 말을 듣고 자신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소속감을 얻지 못하면 이렇게 정체성에도 혼란이 올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당사자였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평생을 가질 수 없는 소속감 때문에 얼마나 외로울까, 상상도 되지 않는다.
내가 최근에 제일 크게 느끼는 소속감은 ‘무리’이다. 내가 여자여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고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더 크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수업을 들을 때, 밥을 먹을 때, 동아리에 나갈 때 등 이 무리, 모임이 없다면 나는 괴로웠을 것이다. 나는 이런 무리로 안정적인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거의 처음이다. (중고등학교 때는 반이 매일 바뀌었고 내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그렇게 안정적인 무리 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무리에서 나가기 싫고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있다.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꾸미기’이다. 나를 제외하고 같이 다니는 친구들은 모두 ‘꾸미기’를 좋아했지만 나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들과 같이 지내고 어울려다니다 보니 화장도 할 줄 알게 되었고 옷에도 관심이 생겼다. 친구들이 코칭도 많이 해주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 무리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이 무리에 계속해서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면 예뻐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영향은 좋다고 생각한다. 이 친구들 덕분에 꾸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에게는 어떤 것이 어울리는지, 어떤 것이 트렌드인지 잘 알게 되었으니까. 고맙다 친구들아.
친구와 단 둘이 호주 한 달 살기를 했는데 느낀 것이 하나 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려면 적당히 SNS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4명이서 같이 다닐 때는 나 없이도 밈을 통해 티키타카가 되었고 나는 그저 지켜보며 웃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둘이 여행을 가니 친구가 밈을 말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몰라서 대화가 전혀 안 되었던 적이 많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인스타를 다시 시작했다. 지금은 밈에 대해서 좀 안다. 밈을 알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개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그들과 함께 공감을 하는 게 좋았다. 하지만 한 가지 안 좋은 점은 릴스에 중독이 되어 하루가 점점 망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이 친구들의 대화에 끼려고 몸부림치는 내가 불편하기도 했다. 세상에 뒤처지는 것 같아서 시작한 이 SNS가 나를 통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은 지금도 SNS에 중독되어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하고 당장 지워버리고 싶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소통에 뒤쳐질까 봐 무서워서 못 지우는 것이 큰 것 같다.
현재 팬덤이 주는 제일 큰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야구’다. ‘우리 팀’이라는 그 소속감은 말도 안 되게 크다. 주변 사람들 중에서 같은 팀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물론 야구를 본다는 것 자체로도 알 수 없는 소속감을 느낀다. (‘야구를 보는, 아는 사람들’이라는 소속감이려나.) 나는 곧바로 야구인들만 아는 이야기를 꺼내며 농담도 하고 한탄도 하고 욕도 한다. 나는 그런 것이 너무 재밌다. 사실 나는 이런 가십거리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경기도 재밌지만 그 외에 야구 선수들, 팀의 상황, 이슈에 따라서 이야기하는 것들 때문에 야구를 보는 것도 있다. 사람들과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재밌다. 그래서 내가 야구를 못 끊는 것일지도…
야구장에 가면 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같은 선수와 같은 팀을 위해 한 목소리가 되어 응원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단합이 그렇게 잘 될 수가 없다. 나는 그 분위기를 절대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 경기가 치러지는 3시간 동안은 현실의 걱정에서 해방되어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에너지를 쏟는 그 순간과 공간은 나를 미치게 한다. 9회 말에 동점 홈런을 때리고 연장 12회까지 가서 끝내기 홈런을 치는 그런 순간이라면 더더욱. (정말 신기하게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날이 7월 31일인데 내가 봤던 레전드 경기가 작년 7월 31일이다. 이때 현장에 있었는데 비밀이지만 에레디아 홈런칠 때(9회 말 동점 홈런), 오태곤 홈런(끝내기 홈런) 칠 때 진짜 울었다.) 이 글을 쓰는데도 도파민이 도는 것 같다. 오늘은 이겨야 할 텐데.
+우울할 땐 소속감 느끼기
나는 부모님을 따라 어렸을 때부터 야구장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솔직히 야구에 제대로 빠져든 것은 휴학했을 때(집에서 아무것도 안 할 때)였다. 그때 당시 나는 스스로 우울감을 느낀다는 것을 자각했고 ‘우울할 땐 뇌과학’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에서 제시한 해결방법 중 하나는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스포츠팀을 하나 정해서 응원하라고 쓰여 있었다. 다행히 나는 이미 야구 규칙을 알고 있었고 응원했던 팀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때부터 조금씩 우울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해에 우리 팀이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해서 응원하는 것이 평소보다 배로 재밌기도 했다.) 그래서 우울함을 평소에 많이 느끼거나 외롭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방법이다. 이왕이면 경기장이 집 주변에 있으면 더 좋다. 물론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팬들과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겠지만 직관을 가야 소속감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지더라도 현장에서 후회 없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응원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콘서트도 비슷하다. 내 주변에는 나만큼 검정치마를 좋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처음으로 검정치마 콘서트에 간 날 깜짝 놀랐다. 모두가 검정치마 티셔츠를 입고 떼창을 하는데 소름이 돋았다. 나는 그 공연장에서 그 어떤 사람들과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검정치마를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를 알 수 있었다. 검정치마를 향한 사랑으로 그 무대가 꽉 차있었다. 나는 그때 또 한 번 소속감을 느꼈다. 모두가 ‘나는 너 이만큼 알고 이만큼 사랑해!! 내 마음을 알아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한 사람을 위해서 사랑을 마구마구 표현하는데 벅차지 않을 수가 없다. 나만큼 검정치마를 좋아하는 사람들, 아니 어쩌면 나보다도 더 검정치마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그 시간은 잊을 수 없다. 그때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속감이 중요한 이유를 딱 이 3가지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학연, 지연, 혈연.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어떻게 해서든지 공통점을 만들고 소속감을 느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첫 만남에 어디 사는지, 어디 학교(직장)인지, 어디 성씨인지 물어본다. 이 중에 하나라도 맞으면 몇 기인 지 물어보거나 어디 사는지를 더 자세하게 말해야 하고 몇 대손인지 말해야 한다. 이 학연, 지연, 혈연은 친해질 수 있는 최고의 지름길이다. 학교를 같이 다니지 못했더라도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고 하면 괜히 더 챙겨주고 싶고 신경 쓰고 싶어진다. 참 신기하다. 같은 소속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는 이유로 남다른 사이가 되어버린다. 인간은 참 소속을 좋아하는 것 같다.
최근 ‘달리기 인류'라는 책을 읽으면서 함께 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배웠다. 에티오피아의 달리기 선수들은 혼자 달리지 않는다. 각자의 실력이 달라도 모두 같이 뛴다. 이 책의 작가는 실제로 에티오피아에 가서 혼자 뛴 지 5분 만에 같이 뛰자며 무리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리에서 멀어지자 이곳에서는 같이 뛴다며 무리에 다시 합류하도록 했다고 한다. 어쩌면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상위권에 랭크하는 것은 환경과 유전자의 영향도 있겠지만 같이 뛰는데 나오는 미지의 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에티오피아의 달리기 선수들은 큰 소속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서로의 훈련방식과 루틴들을 공유하고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은 대회를 준비하는데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혼자 뛰는 것과 같이 뛰는 것은 정말 다르다. 나는 같이 뛰는 것의 힘을 느꼈다. 혼자였다면 포기했을 훈련들과 대회들이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느린 내 페이스에 맞춰주고 끝까지 완주를 할 수 있도록 응원을 해주었다. 나는 하프를 뛸 때 15km 이후부터는 정신력으로 뛰는데 이번 하프 마라톤에서도 함께 뛰어준 친구 덕분에 걷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다. 내 친구들은 나의 정신력을 강화시켜 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다. 이렇게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고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 번 더 느끼게 되었다.
러닝 동아리를 통해서 친해진 친구들끼리 단톡방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러닝 관련된 게시물들을 자주 공유한다. 특히 러닝과 관련된 개그라던지 웃긴 짤, 밈들을 보낸다.(러너스 다이, 러너스 다이어리아, 메달로 트리 꾸미기, 메달 키링 등) 이런 것에 공감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겨서 너무 좋다. 나와 같은 주제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굉장한 소속감을 주는 것 같다. 왜 사람들이 동아리, 크루, 동호회에 들어가려고 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아무리 이런 학교, 회사, 동아리에 들어간다고 해도 ‘가족'이라는 소속감을 이기기에는 힘들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라고 하면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존재 자체로 보면 가족도 ‘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을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족을 잃는다면 나의 어느 부분을 잃은 것만큼의 슬픔을 느낀다. 가족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향까지 생긴다. 누군가 나에게 해를 가하면 내 가족들이 마치 자신이 당한 것처럼 분노한다. 이는 내가 보호받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굉장한 소속감을 느끼게 해 준다.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큰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서 ‘가족'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이러한 형태를 띠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글을 쓰면서 나는 절대 혼자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함께하는 것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한 층 더 깊은 사람으로 성장시킨다.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 무엇인가를 함께 좋아하고 공감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어쩌면 삶을 살아갈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사람이 외로움을 너무 잘 느끼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결론은 항상 똑같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챙기고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