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의 도구들 234p :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나는 예전부터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두에게 완벽한 사람처럼 보이길 바랐다. 그래서 항상 거절을 못하고 지금 생각하면 조금 과할 정도로 남들을 배려했다. 특히 선생님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뭐든지 열심히 하는 척했다. 열심히 하는 척만 했기에 시험 성적이 잘 안 나오면 의아해하셨다. 나는 수업은 굉장히 열심히 듣지만 성적은 항상 중위권인 아이였다. (선생님께 칭찬을 더 받고 싶었다면 공부를 따로 더 했어야 하는데 왜 안 했는지 모르겠다. 공부를 진짜 싫어했나 보다.) 그리고 반에서 가장 조용한 친구가 받는다는(?) 선행상이나 효도상 같은 것들을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받아왔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나를 욕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사람들에게 내가 완벽하게 보였으면 했다. 그리고 나 때문에 상대방이 기분이 안 좋아지는 일이 있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나는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더 면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는 표정변화에 대해 더 예민해졌고 온갖 상상들을 했다.
“내가 방금 한 말 때문에 표정이 변했나?”
“나랑 대화하는 것이 즐겁지 않은가?”
“내가 선택한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은가?”
“방금 그 표정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일까?”
표정에 대한 나의 해석과 상상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상대방의 웃는 표정을 만들기 위해 만날 때부터 헤어질 때까지 온갖 신경을 다 쏟았다. 그리고 헤어진 후에 집에 걸어오는 길에도 오늘 하루에 대한 나의 평가를 하고 있었다.
“아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 말에 대해서 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연락을 안 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집에 돌아오는 길은 기분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을 눈물을 글썽이며 걸어갔는지 모르겠다. 그 후에 연락이 되거나 다음 약속을 잡으면 그제야 안심이 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참 힘들었다.
외모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외모적인 부분에서는 눈을 늦게 떴다. 남들이 다 화장하기 시작할 때 하지 않았고 남들이 다 옷을 살 때 나는 엄마가 사준 옷만 돌려 입었다. ‘패션'이라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거의 성인이 되고 나서야 눈을 뜨기 시작했다. 때문에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겪는 이상하게 화장하는 시기가 이제야 찾아왔다. 엄마도 화장을 하나도 안 하고 외동이기 때문에 나에게 화장을 가르쳐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것저것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로 대충 화장을 하다 보니 나는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친척언니에게) 고등학생이 화장한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다행히 친척언니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지금은 화장이 아주 조금 늘었다.
나는 이상하게 화장을 한 시기를 생각하면서 이불킥을 한다. 지금도 고통스럽다. 나를 만난 사람들이 얼마나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을까. 난 정말 평소에 욕을 하나도 안 하는 사람인데도 아무도 없을 때 이 생각이 나면 욕을 육성으로 내뱉거나 손가락 욕을 해버린다. (어쩌면 나에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친구가 “너는 화장 안 한 게 더 나은 것 같아"라는 말을 할 때 솔직히 기분이 조금 나빴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가 화장이 이상하다는 것을 돌려 돌려 알려준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지금도 완벽하게 외모를 꾸미지 못하는 내가 부끄럽다.)
어쨌든 최근까지 이런 강박 속에서 살다가 책을 읽고 정리해 둔 노트를 최근에 다시 열어봤다. 거기서 지금의 나에게 제일 와닿았던 문장이 있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 문장을 읽자 현타가 왔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고통스러웠을까? 제일 잘 나가는 연예인에게도 그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생각보다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지금도 되뇌고 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실수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조금 편안해졌다. 아직도 나도 모르게 사람들의 표정을 면밀히 살피지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내 멋대로 해석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여전히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나를 힘들게 하면서까지, 내 시간을 빼앗기면서까지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힘들게 하면서 까지 좋은 사람인 척하지 말자.”
“욕 좀 먹으면 어때”
그리고 예전의 나는 남들에게 더 예뻐 보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가끔 화장을 하기 전에 두려움이 있었다. 또 이상하게 보일까 봐. 하지만 지금은 다시 생각한다.
“화장은 자기만족이야. 남들한테 이뻐 보이든 못생겨 보이든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난 화장을 완벽하게 하지 못해. 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아닌걸.”
또 이 게으른 완벽주의자는 완벽하지 못할 것 같아서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다. 나는 항상 시작하는 것이 남들보다 100배는 더 힘든 것 같다. 원하는 대학교가 모조리 떨어지던 시기에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인서울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 인생에 큰 오점이 생겼고 그 뒤로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어졌다. 내 그림대로 그려지던 완벽한 인생이 무너진 것이었다. 사실 지금의 대학교를 붙은 것이 처음에는 굉장히 부끄럽고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웠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을 하던지 무조건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였다. 그래서 완벽하게 하지 못할 것들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시작했다가 적성에 안 맞으면 어떡해”
“완성하지 못하면 어떡해”
“실패하면 어떡해”
“이러다가 어중이떠중이만 되면 어떡해”
사실하다가 포기해도 되는 거고 완벽하게 끝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나를 가스라이팅 해온 터라 내 몸은 본능적으로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인정욕구, 시선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겠지만 실패했을 때 나 자신이 용납을 못하는 것이 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문제를 내가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노력 중이다. 너무 힘들긴 하지만 아주 조금씩은 좋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나는 요즘에 주변 사람들이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 이 말을 들으며 안심받고 싶다. 그러면 조금 용기가 생길 것 같다. 얼른 이 불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근 친척언니와 밤 10시에 집 앞에 공원에서 1시간 동안 걸으며 했던 대화들이 생각난다.
“세상에 완벽한 건 아무것도 없어. 근데 왜 나는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마치 언니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처럼 들렸다. 신기했다. 그때부터 뭔가 내가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았다.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척하던 나를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 내면의 대화들이 시작됐다.
“너 이거 저거 시작하면 죽기라도 해?”
“아니”
“완벽하지 않으면 세상이 끝나?”
“아니”
“완벽하지 않은 인생을 산다고 해서 나의 가치가 없어질까?
“아니”
그래서 요즘에는 마인드를 바꿔먹었다. ‘내가 하는 일에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하되 결과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않기.’ 조금 더 풀어서 말하자면 ‘완벽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되기에 만족하고 넘어가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마인드로 살아가다 보니 마음이 더 편해졌다. 가끔은 아직도 나 자신을 인정하기 힘들 때도 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