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때 ‘교양적 글쓰기와 고전 읽기 2’라는 수업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낯선 곳에 직접 가본 후 시와 글을 쓰는 것이 과제였다. 나는 그곳을 ‘무대’라고 답했다. 글은 지금의 생각도 추가해서 정리했다. 이 교수님(ㄱㅎㅅ교수님)을 참 좋아했는데 A+을 받아서 굉장히 기분 좋았던 기억이 난다.
‘낯설다’의 정의
: 낯설다의 정의는 ‘전에 본 기억이 없어 익숙하지 아니하다.’입니다
전에 본 기억이 없는 곳도 낯설다고 할 수 있지만 기억이 있어도 익숙하지 않은 곳은 낯설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보거나 처음 하는 행동을 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소리를 듣거나 익숙하지 않은 것을 먹으면 긴장을 하게 됩니다. 낯설기 때문에 약간의 의심을 하거나 방어적으로 행동하며 긴장을 하게 됩니다. 낯선 곳도 마찬가지로 긴장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낯설다의 정의는 ‘익숙하지 않아 긴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한 ‘낯선 장소’ : 무대
제가 생각하는 ‘낯선 곳’의 정의는 긴장을 하게 되는 장소인데 제가 긴장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이며 모든 무대의 출연자들이 긴장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관객들 또한 출연진과는 다른 긴장(설렘)을 느끼기 때문에 무대라는 곳이 낯선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떨림을 흡수하는 무대는
출연자들의 떨림
관계자들(스테프)의 떨림
관객의 떨림
구석구석 다 모아 에너지를 방출하는 곳
다 모이면 고요한 순간부터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들
같은 장소라고 해도
같은 출연자라고 해도
같은 내용이라고 해도
겹치지 않는 세계들
떨림이 끝난다는 것은
무대가 끝났다는 것
이것이 ‘무대’라는 이름이 만들어내는 힘이다.
저는 연주자로서 공연에 직접 출연도 해보고 관객으로서도 참여를 해봤으며 보이지 않는 뒤편에서 무대를 완성시키는 관계자의 역할들도 알기 때문에 ‘무대’라는 장소를 선택하여 시를 썼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낯선 곳’의 정의는 긴장을 하게 되는 장소인데 제가 긴장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이 무대였기 때문에 ‘무대’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시에서 ‘무대’라는 ‘공간’이 주는 긴장감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무대가 그 긴장을 빨아드린다고 표현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긴장이 굉장히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좋은 스트레스와 나쁜 스트레스가 있는 것처럼 무대의 서기 전에 하는 출연자들의 긴장, 무대를 바쁘게 준비하는 관계자들의 긴장, 무대를 기대하고 설렘을 느끼는 관객들의 긴장 등 다양한 긴장과 떨림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무대에 집중을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긴장의 종류는 다 다르며 그들 모두 낯선 곳으로 느낍니다. 무대에 서는 출연진들이나 관계자들의 경우에는 같은 공연을 매번 하기 때문에 낯선 곳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대’는 언제나 적응이 안 되는 공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김문정’ 음악 감독님의 경우 22년 동안 수천 번의 공연을 하셨지만 아직도 긴장을 매번 하셔서 공연하기 전에는 밥도 제대로 못 드시고 루틴을 꼭 지킨다고 합니다. 저도 무대를 서면서 같은 곳에서 공연을 하더라도 단 한 번도 무대가 익숙해졌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들을 시에 담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보게 된 공연에서 ‘무대가 시작하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라는 대사를 듣고 너무 공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대가 시작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 무대에 집중을 하게 되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처럼 몰입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 문장에서 영감을 받아 무대가 시작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사람들이 낯선 새로운 세계(이야기 속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라고 표현을 한 이유 중 하나가 ‘세상에 똑같은 무대는 없다.’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연극을 같은 배우가 매일 한다고 해도 세상에 똑같은 무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매일 반복해서 똑같이 살아가는 하루가 사실은 똑같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보는 무대, 연극이 아름답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그날에만, 오로지 그 공연을 본 사람들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같은 극을 계속해서 여러 번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회전문을 돈다.’라고도 표현합니다.) 처음에 저는 이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뮤지컬을 좋아하게 되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같은 배우라도, 같은 극이라도 우리가 받는 느낌은 결코 똑같지 않습니다. 보면 볼수록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다른 감정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리고 돌려보지 못하는 이 일회성이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에 똑같은 무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래봐야 렌즈를 통해 다른 무언가를 볼 뿐이죠. 그걸 모니터를 보면서 편집한 후에 다시 모니터를 통해 보여주는 것 아닌가요? 걸러지는 순간, 그것은 이미 실재가 아니에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96p -
이 문장은 조금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이 말에 동의합니다. 영화의 경우 편집을 통해서 이야기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며 의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번 계속해서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찍습니다. 하지만 극의 경우 이야기와 대사는 정해져 있지만 지나간 연기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일회성이라는 뜻입니다. 그 연기를 해석하는 것은 그날의 배우와 현장에서 지켜보는 관객의 몫입니다. 저는 그 사이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무대’라는 장소에 대한 영향력입니다. 어떻게 보면 ‘무대’라는 것은 공간의 이름입니다. 이 ‘무대’라는 이름은 어느 곳이든 붙일 수 있습니다. 집에서 가족들에게 예술을 표현한다면 집이 무대가 되는 것이고 버스킹을 한다면 길 한복판이 곧 무대가 되는 것입니다. 텅 빈 공간을 ‘무대’라고 이름을 지어놓은 것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긴장을 하고, 집중을 하고, 낯선 곳처럼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무대’라는 이름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시의 제목과 마지막 연에 표현하였습니다. 왜 우리는 무대가 아니더라도 공연을 한다고 하면 긴장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챗 지피티의 대답
마지막 문장에 대한 질문을 챗 지피티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보이는 나’의 존재를 인식하기 때문이며 평가와 시선, 그리고 자기 노출의 경계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 ‘경계 공간’이라고 말하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무대는 일상과 다른 ‘경계공간’ 이기도 해.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진 그곳은 우리가 평소 억눌러두거나 감춰온 감정, 욕망, 표현들을 드러내는 장소야. 그래서 그곳에 서는 순간, 자신을 새롭게 마주하게 되고 그 자기 대면의 순간이 두렵기도 하지. 결국 그 긴장은 타인에게 보이는 나와 내가 스스로 바라보는 나 사이의 미묘한 간극에서 생겨나는 거야.
저는 이 과제를 하면서 제가 생각하는 저에게 가장 낯선 곳인 무대를 다녀왔습니다.
그 무대는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이라는 뮤지컬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유물이라면 무엇이라도 열광하던 런던사회에 셰익스피어의 미공개 유물들을 쏟아내던 ‘아일랜드 부자’가 희곡 <보르티게른> 위작 논란으로 재판에 서게 된 이야기)
이번에 본 뮤지컬은 한국창작 뮤지컬입니다. 올해 처음 하는 초연(2023년)이기 때문에 기대가 되기도 했고 관람하게 된 극장 또한 처음 가보는 곳이라 극장에 가는 길부터 저에게는 낯선 곳이었습니다. 매표소에서 예매한 티켓을 받는 순간부터 극이 끝나기 전까지 제가 느끼는 떨림을 통해서 이 시를 쓰게 된 것 같습니다.
공연이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암전이 되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고요한 그 몇 십 초가 제일 설레고 떨렸습니다. 뮤지컬의 경우 공연 몇 분 전 악기 조율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때도 굉장히 설레입니다. 그리고 공연 중간에 난이도가 있는 넘버(노래)를 부를 때 긴장이 되었는데 연주자의 입장으로써 혹여나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긴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적으로는 ‘윌리엄 헨리가 어떻게 들키게 될까’라는 생각으로도 약간 긴장이 되었습니다. 긴장이 완벽히 풀리는 순간은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을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관객으로서 느끼는 설렘, 긴장과 떨림이 좋습니다. 다음 이야기에는 연주자로서 느꼈던 떨림과 긴장을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