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다

by 노수연

성실하다.

국어사전의 뜻으로는 ‘정성스럽고 참되다.’이다. 나는 항상 무엇인가를 하면 정성 들여서 하는 편이다. 어떤 체험을 할 때나 과제를 하거나 이렇게 글을 쓸 때면 초집중 모드로 변한다. 그래서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쏟아부어 작품을 완성시키려고 한다. 나는 인정 욕구도 많아서 칭찬받는 것을 엄청 좋아하기도 한다. 내 손을 거친 것들은 좀 멋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어떻게 보면 약간의 완벽주의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칭찬을 받으려고 성실해지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모든 일에 열심히 하기 시작했고 내 장점이 되었다. 초등학교도 개근, 중학교도 개근, 고등학교 때는 하루 늦잠 자서 정근상을 받았었다.(지금 시기에 내가 초중고학생이었다면 개근거지라고 놀림받았을 것 같다.)


+지금생각해도 고등학교 때 개근상을 못 받은 것이 아쉽다. 당시 고3이었고 학기가 마무리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고시텔에 혼자 살아서 나를 깨워 줄 사람이 없었고 늦잠을 자버려서 1교시를 거의 듣지 못했다. 다행히 담임선생님이 실수인 것을 눈치채고 친구들 몰래 병결로 채워주셔서 무단결석으로 처리되지는 않았다. 헐레벌떡 뛰어와 교실에 앉자마자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윙크를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신기하게도 1교시 수업이 담임선생님 수업 시간이었다. 운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이렇게 봐주신 것도 지금까지 성실하게 다녀서 한 번 정도의 실수는 봐주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부터 성실했을까?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일단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크게 아픈 것이 아니면 학교든 학원이든 레슨이든 그냥 보냈다. 특히 나는 감기를 달고 살았기 때문에 그 정도 아픈 걸로 빠지는 것이 나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전에 내가 아픈데도 서울로 레슨을 다니니 레슨선생님이 대단하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이 굉장히 독하게 키우시는구나.” 그 말이 잊히지가 않는다. 난 단 한 번도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독하게 키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큰일이 아닌 이상 개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주 자연스럽게 내 가치관에 스며들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가기 싫으니까 가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은 거의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매일같이 가기 싫어했음에도 ‘몰래 빠져야지'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이왕 할 거 최선을 다 해서 해야지.’ 이런 마인드는 아빠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아빠가 하는 행동을 보면 어디 하나 허투루 그냥 지나가는 것이 없다. 예전에 어느 축제에서 아빠랑 색칠하기 체험을 할 때가 생각이 난다. 그림의 한 부분을 작은 동그라미로 가득 채웠어야 했는데 내가 빈 공간이 많게 대충 그리자 아빠가 조금 더 그리자고 설득했다. “이왕 그리는 거 꼼꼼하게 빈 공간 없이 채우는 건 어때? 그럼 훨씬 더 예쁠 것 같은데?” 그 말에 나는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긴 했지만 완벽하게 동그라미를 촘촘하게 채웠다. 그러자 체험을 안내해 주시는 분들이 다들 칭찬해 주셨다. “어머 이렇게 꼼꼼하게 채워 온 친구가 처음이에요. 너무 예쁘네요~”라는 말을 2~3분께 더 들었다. 그때 나는 꼼꼼하게 하고 최선을 다하면 결과물도 좋고 칭찬도 받는다고 인식하게 된 것 같다. 엄청 어렸을 때인데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 보면 여러모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성실함의 장점

성실함의 제일 큰 장점은 좋은 이미지다.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특히 나보다 높으신 분들께(예를 들어 선생님, 교수님, 부모님, 상사 등)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칭찬을 받는다. 성실함으로 칭찬을 받을 때면 오랜 기간 쌓아온 것들에 대해 인정을 받는 기분이라서 굉장히 기분이 좋다.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쉽게 포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성실함은 단기간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꾸준해야 한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있어서 그런지 무엇인가 어렵더라도 끝까지 해보려는 근성이 생기는 것 같다.


제일 좋은 장점은 한 번 실수를 해도 아주 너그럽게 봐준다는 것이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한 번도 자휴(자체휴강)를 해본 적이 없는 나를 친구들이 신기해하며 하루만 빼고 놀러 가자고 꼬셨다. 엄청 고민하긴 했지만 한 번쯤은 일탈도 해보고 싶고 관현악 수업이기 때문에 한 번 빠진다고 해도 진도에 큰 지장은 없으며, 모든 사람들이 한 번씩은 수업을 빠진다는 합리화를 했다. 그렇게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아무 이유 없이 자휴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관현악 시간에 교수님이 나를 보시더니 굉장히 걱정하는 목소리로 “요새 좀 힘들었어? 괜찮아, 괜찮아.”라고 하시면서 어깨를 토닥토닥해주시고 지나가셨다. 사실 친구들과 놀러 가기 위해서 빠진 건데 내가 굉장히 힘들어서 수업을 안 나오신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교수님께 좀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출석 점수를 제일 크게 반영하시는 관현악 교수님이었기에 +는 기대도 안 했지만 교수님은 그 학기에 A+ 점수를 주셨다. 아마도 결석처리를 안 하신 게 아니었을까. 이 사건(?)을 통해 내가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아온 혜택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앞으로 더 성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실함의 단점

성실함의 단점은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성실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는 것. 그리고 팀원들이 모두 성실하지 않다면 나를 갈아서라도 해내는 것. 이로 인해 책임감 있고 착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 어쩌면 이 성실함을 이용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성실하지 않은 사람들

나는 대학교에 와서 정말 깜짝 놀랐다. 결석을 낙제를 받기 직전까지 하거나 과제를 정말 대충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내 가치관에서 성실함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왜 이렇게 까지 대충 학교를 다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특히 대학교는 엄청난 등록금을 내고 자신이 듣고 싶은 강의를 선택하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수업을 안 듣는 이유를 모르겠다.(물론 사정이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물어보면 대부분 ‘그냥 학교 가기 싫어서'이다.) 그래서 나는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는 친구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상대방의 가치가 다른 것이고 성실하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나한테는 굉장한 마이너스적 요소다. 그래서 친해져도 적당히 선을 두고 그 이상은 가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되기 싫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그냥 가까이 하지만 않으면 전혀 상관이 없었다. 문제는 팀플(팀 플레이)이었다. 전공과 관련된 자격증을 얻는 수업이 있는데 그 수업은 모조리 팀플 수업이다. 한 학기에 1개씩 총 5개를 들어야 한다. 그래서 매 학기마다 팀을 이루어 과제를 해야 한다. 나를 포함해서 모든 친구들이 자격증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듣는 수업이라서 다들 귀찮아하고 대충 하거나 참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내가 주도를 안 하면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거의 모든 것을 내가 맡아서 하게 되었다. 아이디어를 내고, 의견을 조율하고, 서류를 만들고, 모르는 부분들을 알려주고, 발표까지 대부분 내가 다 했다. 나는 결과적으로도 어느 정도 완성도가 있었으면 했다.(점수를 잘 받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이 수업들이 너무 힘들었다.



친구와의 말다툼

이제 이 글을 쓰게 된 사건이 나온다. 이번 마지막 학기에는 팀을 꾸려 실습을 나가야 했다.(돌봄 센터 국악공연이다.) 어김없이 이번에도 내가 조장이 되었고 모든 것을 내가 주도하면 친구들은 잘 따라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나랑 3년 동안 같이 다닌 친구와 문제가 생겼다. 이 친구는 기분이 나쁘면 대답을 아예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는 습관이 있다. 평소에는 그냥 가만히 놔두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날은 실습 나가기 전 마지막 연습이었고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복잡해서 내가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내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계속되는 질문에 한 마디도 대답을 안 하고 강의와 연습에도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지 않았다. 너무 답답했던 나는 말로 대답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 부탁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주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까딱’ 할 뿐이었다. 옆에 있는 친구들이 민망해할 정도였다. 나는 굉장한 화가 쌓였고 연습이 끝나자마자 그 친구에게 물어봤다.


“왜 내 질문이나 말에 대답을 안 해?”

“고개 끄덕였어.”

“내가 말로 대답해 달라고 했잖아.”

“고개로 대답했다니까?”

“그게 대답한 거라고 생각해? 사람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끄덕인 것도 아닌데.”

“미안해” (전혀 미안하다는 표정과 말투가 아니었다. 거기서 나는 더 화가 났다.)

“그게 미안하다는 태도야?”

“그럼 내가 미안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나도 이거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야. 최소한 이게 일이면 네가 기분이 좋든 나쁘든 대답은 하고 참여는 해야지. 네가 하기 싫으면 하지를 말던가.”

“내가 미안하고 했잖아. 미안하다니까?”

“그냥 말을 말자.”


이렇게 대화가 끝났다. 나는 그 친구가 나를 대놓고 무시하고 같이하는 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지 않는 것에 너무 화가 났다. 최근에 그렇게 까지 화가 난 것이 처음이었다. 집에 와서 이 사건에 대해서 천천히 생각을 하는데 ‘내가 친구들에게 성실함을 강요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무시하면 되는데 열심히 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 화가 났던 것 같다.



내가 친구들에게 성실함을 강요하나?

이 말다툼을 전체적으로 보자면 나는 이 친구에게 참여를 하라고 강요를 한 것이다. 나는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이 실습을 문제없이 잘 마무리하고 좋은 성적을 받고 싶었다. 여기서 좋은 성적을 받고 싶다는 마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이다. 이 사람들 중에서 나만 잘하고 싶지 아무도 잘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 같다. 이 친구도 언제나 성적에 욕심이 없었기에 이번 실습도 정말 하기 싫어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괜히 분위기만 안 좋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성실함은 과연 선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성실함은 과연 선인가?

과연 성실함은 무조건적인 선일까? 나는 이 사건을 통해서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성실함은 ‘강요'와 함께 ‘화'로 변질되어 친구와의 관계를 좋지 않게 만들었다. 이 성실함은 강박이 되어 나를 괴롭히고 지치게 하며 주변사람들까지 괴롭게 되었다. 내가 리더가 되었을 때, 나의 개인적인 욕심과 책임감, 강요의 경계선에서 나는 과연 어디까지 해야 할까. 매번 조장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어디까지 팀원에게 요구를 해야 할까?



아빠의 조언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이번 연도 국악과 정기연주회를 준비하면서 나는 대금 파트장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후배들을 이끌며 연습을 시켜야 했다. 그런데 아무도 연습을 해오지 않거나, 파트연습을 까먹고 오지 않고 심지어 악보리딩도 안되어있는 친구도 있었다. 물론 각자만의 사정이 있어서 연습을 해 오는 것이 힘들 수는 있지만 매번 진도가 나가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악장에게 혼나기도 하고 다른 파트의 선배들에게 혼나기도 했다. 매주 파트연습을 해도 후배들이 개인 연습을 해오지 않으면 다시 제자리걸음을 하는 꼴이었다. 나는 연주회를 망칠까 봐 걱정이 되었고 책임을 물을까 봐 또 걱정이 되었다. 이 고민을 아빠에게 털어놓았더니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증거들을 모아두라고 하셨다. 분명 파트연습을 많이 했고 연습해 오라고 말한 증거를 남기라고 하셨다. 그래서 만약 나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때 가서 증거와 함께 상황을 설명하면 된다고 하셨다.


이 방법은 상대에게 성실함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내가 책임을 물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했지만 스트레스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에 대해서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 열심히 하지 않는 친구들을 이해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그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도대체 왜 열심히 살지 않는가? 물론 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하기 싫은 것이라면 왜 붙들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최소한 팀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소한은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글을 쓰는 지금도 약간의 화가 나는 것 같다.



이번 사건(?)들을 통해 배운 것들

일단 내가 성실함을 친구들에게 강요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에게 앞으로 성실함을 크게 요구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한다. 그리고 혹여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나는 할 만큼은 했다는 증거를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이번에 또 뼈저리게 느낀 것은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곳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크게 깨닫게 되었다. 4년을 봐온 과사람들 보다도 2년도 안 본 동아리 사람들이 더 편하고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내가 러닝 동아리 사람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그들은 멈추려 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나에게 자극을 준다. 그들은 자신의 전공에도, 러닝에도, 인간관계에도 진심이어서 그 어느 것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점이 참 마음에 든다. 나중에 사회를 나가더라도 이런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지내고 싶다. 나를 끊임없이 움직여줄 수 있는, 자극을 주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다. 달리기처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멋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