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다

by 노수연

인정하다

나는 최근 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예를 들어 당신의 아주 친한 주변인이 누가봐도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혹은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조언을 해 줄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스스로 깨닫고 알아차릴 때까지 지켜볼 것인가? 내가 말을 하려니 오지랖 같기도 하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부드럽게 말한다고 해도) 그 사람과의 관계가 영영 틀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냥 지켜보자니 알면서도 방관하는 것 같아서 괜한 죄책감이 든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관계가 틀어지더라도 말을 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말을 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말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자신의 잘못된 점을 인정할 수 있는가.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지금 당장이라도 누군가 나에게 틀렸다고 말하면 화가날 것이다.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고 부정하거나, 회피하거나 합리화를 할 것이다. 나도 이런데 상대방이라고 다를까. 심하면 심했지 지적에 대해서 바로 수긍하고 인정하는 사람은 정말 손에 꼽을 것이다. 그래서 말을 못 하고 있다.(그리고 내가 뭐라고 말을 하나 싶기도 하다. 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니.)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 상관없다고 해도 ‘상대방이 바뀌지 않는다면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면 나의 말로 인해 조금이라도 고민을 해보게 되는 계기가 될까? 도대체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모르겠다. 말해도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이라면 관계라도 유지하는 것이 맞을까?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라도 해주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나의 죄책감이라도 덜기 위해 말하는 것이 맞을까?(이거는 조금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긴 한다.)


국어사전에서 ‘인정하다'의 뜻은 ‘확실히 그렇다고 여기다.’이지만 나는 조금 다른 느낌의 인정을 말하고 싶다. 무엇인가를 받아들인다는 뜻에 조금 더 가깝다고 느껴진다. 나를 인정하는 것도, 남을 인정하는 것도 왜 이렇게 어려울까? 그래서 ‘인정하다'에 대해 글을 써 보기로 했다.



상대방을 인정하기

나는 절대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과정이 다르며 생각, 취향, 고정관념 등이 다르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해도 정말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 100%를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겪었던 경험을 통해서 그 사람의 감정을 추측할 뿐이다. 그 사람이 이만큼 슬플 것이라고 추측하고 공감을 해도 상대방은 더 슬프거나 덜 슬플 수 있다. 조금 극단적으로까지 가면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아무도 느낄 수 없는 고유한 감정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고 있는 것일까? 서로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기에 이렇게 같이 살 수 있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들(특히 종교)은 지금까지도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오랜 철학과 지혜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한다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지금도 이런 이유로 전쟁이 끝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인간은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SNS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지를. 남자와 여자, 종교, 인종, 문화 등 우리는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이 논쟁들은 서로의 주장만 펼치기 때문에 끝나지도 않는다. 계속해서 서로를 상처주고 헐 뜯기만 할 뿐이다.


물론 나도 상대방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 나는 매번 상대방을 이해해보려고 하다가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과정에서 인정하게 된다. 나는 아직까지 깨어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많은 고정관념이 있고 나만의 정돈된 가치관이 없다보니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상대방의 생각들을 그저 인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이 글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MBTI

그나마 최근에 서로의 성격에 대해서 다름을 인정하게 된 경우가 있다. 바로 MBTI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 성격유형 검사를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검사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게 된 것에 아주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유형의 외향형과 내향형을 알게 되었고 상상을 하는 사람과 현실적인 사람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공감을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른 다양한 성격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T들이 공감을 못 하는 싸이코패스로 비춰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너는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거야?’가 아니라 ‘너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유형이구나, 사람이구나.’로 바뀌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것 보다 다름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MBTI는 대화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나를 인정하는 것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 나는 아직 24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살면서 죽을만큼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내가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생각해보면 그 시간은 못난 나를 인정하는 시기였다. 국악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서울의 상위권 대학을 다니고 멋진 연주자가 되어 사는 것이 내 꿈이었다. 고등학교가 내 인생을 떠 먹여주는 줄 알았고 이 학교만 들어가면 인생이 쉬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전국에서 날고 기는 사람들을 직접 마주하게 되면서 악기 연주자는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때 내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했다. 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상위권 대학에 가는 줄 알았으니까. 그냥 이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입시 때가 되어서야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지금까지 나를 인정하지 않고 내면의 소리를 무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못난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마주한 시기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이렇게까지 못난 나는 살면 안된다는 생각도 하고 완벽하지 못한 인생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큰 좌절감을 느꼈다.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하면 많이 단단해진 지금이라도 절대 못 견딜 것 같은 그런 아픔이다. 누군가 나에게 큰 해를 가한 것도 아니고 가정 환경이 나쁜 것도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힘들었던 때였다. 지금에서야 그때 내가 나를 처음으로 마주한 시기이기 때문에 아팠던 것을 안다.


나는 아직도 나를 인정하는 것이 힘들다. 내가 잘못된 판단, 생각, 말을 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는다면 내 방어기제가 발동되어 화를 내기도 한다. 특히 부모님이라면 더더욱 화가 난다. 내 편만 들어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면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없다. 다행히도 지금은 그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지적을 들은 순간 바로 인정을 하면 제일 좋겠지만 그것이 참 쉽지않다. 그래도 이 불편한 감정들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나를 인정하는 것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뜻이지 않을까.


바로 어제(12월 1일)도 나를 인정하는 시간이었다. 대학교에서의 마지막 전공실기를 망쳐버리고 말았다. 또 고등학교 때처럼 연주를 하다가 멈춰버린 것이다. 내 뇌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위험을 감지하면 모든 것을 멈춰버리는 것 같다. 내가 당황을 했을때나 차에 치일 뻔 했을 때, 무섭거나 두려운 것을 보게 되면 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냥 모든 것을 멈춰버리게 된다. 그것이 시험을 볼 때 나타는 것 같다. 나는 그래도 제일 큰 공연이었던 졸업연주를 나름대로 잘 마치고 발표도 어렵지 않게 하게 된 지금 무대공포증을 극복한 줄 알았다. 하지만 어제의 일로 다시 깨달았다. 나를 7년동안 괴롭힌 무대공포증을 마지막까지 극복해내지 못했다. 그것이 너무 속상했다. 마지막인만큼 멈추지만 않기를 바랬다. 하지만 실패했고 찝찝한 마지막 시험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그 전의 시험에서도 계속 멈췄었다. 나는 그럴때마다 그런 내가 너무 속상하고 화나서 펑펑울었는데 지금은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무대는 내 길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한 번 더 알게 해주었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더 이상 악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부족한 점은 분명 있다. 그리고 나처럼 극복하지 못하는 것도 분명히 있다. 계속 이 감정에 머물러 있는 것 보다는 그냥 인정해버리고 안될 것 같은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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