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 1학년 때 휴학을 해서 1년을 쉬고 복학하게 되었다. 21학번인 나는 22학번과 다니게 되었고 친구가 1명도 없었다. 나의 내성적이고 조심스러운 성격 때문에 한 학기는 혼자 다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 외로웠지만 스스로 외롭지 않다고 위로(?) 혹은 자기 암시(?)를 하면서 다닌 것 같다. 다행히도 3학년 때 나를 챙겨주는 친구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친구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정확히는 몸에 배려가 베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항상 내 차를 태워다 주고 내 일이 아닌데도 도와주는 일이 많았다. 나는 그렇게 학회장이 되었고 국악과에 도움이 된다면 내 시간과 체력을 쏟아부었다. 지금은 약간 의문이 든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저번에 친구가 내 차에 겉옷을 놓고 간 것을 보고 그것을 갖다 주기 위해 다시 학교에 갔다. 그랬더니 나보고 한 친구가 ‘언니 진짜 착하다.’라는 말을 했었다. 분명 그 말이 나쁜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나에게 그렇게 썩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굳이 이렇게까지 도와준다고?’처럼 들렸다. 그때부터 정말 궁금해졌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일까.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닌데 착한 사람 코스프레를 하고 싶은 것인가.
내가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복학하고 처음으로 학교를 혼자 다녀보니 굉장히 외로웠다. 같이 밥을 먹을 사람도, 쉬는 시간에 대화를 나눌 사람도, 강의에 대한 공감을 해 줄 사람이 없으니 학교 다니는 것이 끔찍했다. 외로운 것이 이렇게나 힘든 것인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이 말을 걸어주었을 때 최대한 착한 행동들을 했던 것 같다.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기 때문에 더 과하게 도와주고 배려해 줬던 기억이 난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려고 ‘착함'을 시작했던 것 같다.
가끔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까지 도와준다고?’ 사실 꽤 이런 반응을 봤었다. 도대체 나는 왜 그럴까. 내가 생각해도 내 온 힘을 쏟아서 도와주려고 하는 것 같다. 일단 내 성격 때문인 것 같다. 한 번 시작하면 허투루 넘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저번에 ‘성실하다'에서도 말했듯이 내 손을 거친 것들은 퀄리티가 좋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도와주는 것들은 모두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 같다.
또 한 가지의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내가 당신을 이만큼 아끼고 있어요.’를 말해주고 싶은 것 같다. 나도 내가 도와주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적당한 선을 그어버린다. 하지만 나에게 애정이 있고 앞으로 계속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라면 도와줄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 평소에 애정표현(?)을 하지 않고 그 사람이 도움이 필요할 때 그것을 최대한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내 주변인 중에서 내가 조금 과하게 배려를 한다거나 희생을 한다면 내가 많이 아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왜 학회장을 2년이나 하고 있을까. 솔직히 처음 학생회를 했을 때는 뭣도 모르고 시작했다. 내 소극적인 성격을 바꾸기 위해서 들어간 거지 사실 국악과를 위해서 들어간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올해까지 학회장을 하는 데는 사실 이유가 없다. 후계자가 없기도 했지만 굳이 내가 계속 이어갈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학회장을 한다고 했을까. 심지어 나는 성적장학금을 받기 때문에 학생회를 통해서 이득이 되는 것도 없었다. 왜 나는 학생회를 하겠다고 나섰을까. 생각해 보면 학생회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 특히 단대장은 거의 모든 시간과 체력을 뺏기고(심지어 우리에게 여러 간식을 사주느라 돈도 많이 쓴다.) 감사위원장, 집부들은 장학금 1원도 받지 않으면서 활동을 하는 것이다. 거의 음대를 위한 봉사활동이다. 그래서 내가 학생회를 하는 2년 내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와서야 우리가 왜 그렇게까지 희생을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정말 음대 학생들을 위한 마음뿐인 것일까?
나는 내가 희생하는 것이 참 좋다. 내가 희생이 되어서 다수가 행복하다면 그것이 나에게 행복이다.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추측되는 것은 있다. 낮은 자존감 때문이다. 끊임없이 나를 희생하면서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희생을 하면서 그래도 내가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희생에 망설이지 않는다.
나는 살아가면서 사람의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실제 그런 성격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이미지를 통해 그 사람을 판단한다. 그리고 좋은 이미지는 사람 관계에 있어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좋은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나는 내 이미지를 좋게 만들고 싶었다. (이렇게 좋게 보이려는 욕구는 사회에서 살아가려는 본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 좋은 이미지 중에서도 내가 생각한 좋은 이미지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나는 순수하고 착하다는 칭찬이 참 좋다. 그래서 그 칭찬을 받기 위해 착한 척을 하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나는 나쁜 생각도 많이 하는, 남들이 생각하는 ‘순수한 착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가끔 내가 착한 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할 때가 있다. 착한 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역겹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요새는 칭찬을 받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칭찬을 바라는 사람이 아닌, 그냥 조용히 도와주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는 착한 삶이 되기 위해 착한 척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진짜 착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