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다

by 노수연

세상에 과연 영원한 것은 있을까? 물건도, 마음도, 삶도 영원한 것은 없다. 모두 언젠가는 이별을 맞이하게 될 운명이다. 그런데 왜 ‘영원'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일까?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기에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건

우리가 쓰는 물건은 확실하게 영원하지 못하다. 정말 많이 써봐야 20~30년이지 않을까. 물건은 분명 바꾸거나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가지는 것에 집착을 할까. 왜 쓸데없는 물건을 사고 싶은 것일까? 나는 아직도 어려운 것이 ‘귀여운 물건 사기’를 참는 것이다. 예전에 제일 집착이 심했던 것은 인형이었다. 내 침대의 절반은 인형으로 가득 찼었다. 하지만 처음 샀을 때만 귀여워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보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많은 인형들을 버리고 사기 전에 수백 번 고민을 하고 있다. ‘내가 자주 볼 것인가?’, ‘계속해서 귀여워할 것인가?’, ‘이 가격으로 무엇을 살 수 있나?’, ‘내 인생에 도움이 되나?’라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직 잘 되지는 않는다. 특히 한정판 콜라보로 나온 인형이라던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 팀의 굿즈라면 너무 사고 싶어진다.


그래서 사고 매번 후회한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왜 스님들이 ‘무소유'를 주장하는지 알 것 같다. 물건이 많을수록 집착하게 되고 영원히 내가 안고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는 추억하기 위해 물건들을 남겨두기도 한다. 그런 물건들을 버리면 괜히 마음이 아프고 그 시절의 내가 없어지는 느낌도 든다. 옛날의 내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지우는 기분이랄까. 같이 해온 물건으로 정이 들기도 한다. 나와 감정을 공유한 것 같은, 마치 말없이 묵묵히 함께해 온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물건들은 결코 영원하지 못하고 우리는 떠나보내야 한다. 내게 소중했던 물건이 쓰레기가 된다니 참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참 어렵다. 무한한, 영원한 공간이 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나만의 박물관을 만들어서 가족들과 추억여행을 떠나면 참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죽어도 버리기 싫은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오래된 피아노다. 엄마 말로는 15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배우면서 중고로 산 것이다. 아마도 내가 ‘음악'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된 시기가 아니었을까. 사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이 피아노를 제대로 연주한 적이 거의 없다. 중학교 때까지는 나름 배웠던 것들을 돌려가며 쳤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전혀 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는 피아노가 자리만 차지한다며 버리자고 하지만 나는 절대 반대를 한다. 음악을 그만두게 된 지금 시점에서 피아노까지 버리면 내가 진짜 음악을 그만두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피아노는 어쩌면 마지막 증거다. 음악을 그만 두지만 여전히 사랑한다는 증거. 이 피아노가 우리 집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음악을 놓고 싶지 않다는 마지막 처절한 몸부림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피아노를 버리게 되는 날이 온다면 굉장히 슬플 것 같다. 언제까지 가지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버릴 수가 없다.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

내가 제일 좋아하는 뮤지컬인 ‘어쩌면 해피엔딩'의 넘버(뮤지컬에서는 노래를 ‘넘버’라고 부른다.) 제목이다. 작중 여자 로봇(클레어)이 ‘사람들의 영원하지 못한 마음’에 실망하게 될 남자 로봇(올리버)을 걱정하며 부르는 넘버이다. 세상에 영원한 마음은 존재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마음이 신념이든, 사랑이든 영원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그 마음을 바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다른 마음이 들어서 잠깐 흔들릴 수는 있지만 결코 다시 돌아오는 마음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보고 ‘영원한 마음’, ‘영원한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을 찾는 거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인 ‘검정치마'의 Antifreeze(부동액) 노래 가사이다. 나는 이 노래를 통해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이 가사 때문에 쓰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검정치마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겠지만 나를 오래도록 사랑해 줄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또 이런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을 찾고 싶다.


우리가 한 사람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들을 ‘안정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런 이유에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 마음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을 대단하다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여러 마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형'이기 때문이다.



고전

이제라도 ‘영원'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아보자. ‘어떤 상태가 끝없이 이어짐. 또는 시간을 초월하여 변하지 아니함.’이다. 우리의 세상에서 시간을 초월하는 것은 바로 고전이며 진리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가졌던 생각들과 마음가짐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아닐까.


최근 ‘신화와 철학'이라는 수업에서 길가메시 서사시를 배웠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화로 ‘내면의 나'를 마주하는 이야기와 죽음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다룬,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떤 이는 이 신화가 인류의 최초의 신화라고 한다. 과연 이보다 더 오래된 신화가 없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 이 길가메시 서사시 이전에 삶과 죽음, 인생의 태도에 대해서 다루는 조상들의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이야기는 그저 시대에 따라서 다른 이야기로 전승되어 가는 것뿐이다. 물론 이 신화들도 매번 변형이 되기 때문에 영원하지 못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똑같다.


-내면의 나와 대화할 것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나만의 질서를 세울 것

-욕심부리지 않을 것

-에너지가 생기기 위해서는 혼돈이 필요하다


진리들만큼은 아마 ‘영원’할 것이다. 혹여 이 진리들이 영원하지는 않더라도 영원에 가까울 만큼 오래갈 것이라고 믿는다. 이 진리들은 단순히 가치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끝없는 수천, 수만 년의 시간들 속에서 조상들이 깨닫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평생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 나 자신과 대화를 해야만 진정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영원할 수 없으니 더욱 진심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토록 극적인, 재밌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