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SNS를 시작한 지금 중독의 굴레에 또 한 번 빠져든 것 같다. ‘이것만 보자'라는 생각에 보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몇 시간은 훌쩍 흘러가있다. 하루 종일 안 보다가 자기 전에 몰아서 보는 경향도 있었다.(보상 차원에서 ‘이 정도는 봐도 되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절제'에 대한 중요성과 욕심에 대한 문제점들을 정리하고, 상기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NS는 우리가 계속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있다. 우리가 SNS에서 못 헤어 나오는 이유는 이 어플을 만드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중독되도록 설계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사용을 안 하는 것이 맞는데 끊어내기가 죽도록 힘들다. SNS를 하면 우울해질 것을 알면서도,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계속한다. 정말 중독된 것 같다. 이제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 인스타를 하는 게 아니다. 하면서 죄책감이 든다.
“이러면 뇌가 망가지는데…근데 보고 싶은 걸 어떡해”
“진짜 하면 안 됐었는데… 알면서도 왜 그러지?”
조금만 하자는 다짐이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손은 이미 앱을 누르고 있다. 사실 나는 이 중독을 끊어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몇 달 동안 아예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쳐다도 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한 달 가까이 디지털 디톡스를 성공했지만…. 그 이후는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내가 봤을 땐 몇 달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평생 참아야 하는 것 같다. 몇 달을, 몇 년을 참는다고 해도 썸네일을 보면 클릭하고 싶을 것이다. 이 중독은 마치 담배와 술 같다. 난 담배도 안 하고 술도 안 하지만 같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25년 동안 담배를 끊은 아빠는 ‘아직도 피고 싶은 생각이 든다'라고 한다. 정말 말도 안 된다. 25년을 끊었으면 잊힐 만도 한데 냄새를 맡으면 아직도 피고 싶다니. 이 중독은 끊는 것이 아니라 정말 참는 것 같다.
저번에 정재승 교수님 강의를 들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우리는 음악에도 중독이 된다는 것이다. 음악이 중독될 때 활성되는 뇌의 부분은 술과 담배, 마약이 중독되었을 때 활성화되는 부분과 일치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SNS가 중독되었을 때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분도 똑같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음악, 술, 담배, SNS, 마약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모두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냥 참는 것’ 난 이제부터 끊는 것이 아니라 참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이와 관련된 내용들은 칼 뉴포트의 ‘디지털 미니멀리즘’ 책을 추천한다. 왜 우리는 디지털 디톡스를 해야 하는지 잘 나와있다.)
중독이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울증이 중독을 불러일으킨다. 우울하기 때문에 더 많은 도파민을 찾지만 쉽게 얻은 보상에 뇌의 균형은 더 잃게 되고 더 우울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중독은 마치 우울증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우울증은 완치가 없다. 우울증을 ‘완벽히’ 이겨 낸 사람은 없다. 한 사람이 우울에서 완전히 벗어나 원래의 일상생활로 돌아왔다고 해도 다시 우울증에 빠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우울증을 이겨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여기서 ‘이겨냈다'는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우울을 이겨내는 것은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울에 빠지고 나오기를 반복하는 것뿐이다. 우울을 이겨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우울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인 것이다. 다시 우울에 빠졌을 때 금방 그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것뿐이다. 우울증은 끊임없이, 평생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봤을 때는 우리 모두 잠재적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
중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가 중독될 수 있는 뇌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어떠한 것에 중독되어 있을 것이다. 특히 지금 이 시대는 중독에 너무 많은 노출이 되어있기 때문에 중독이 안된 뇌를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중독은 우울증처럼 언제든지 다시 돋을 수 있다. 중독의 행위를 잠시 멈춘다고 해도 금방 다시 중독된 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니 중독도 끊임없이, 평생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 무언가에 미치지 않으면 도저히 살 맛이 안 났었던 거지”
진격의 거인 중 케니 아커만의 명대사다. 중독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의문이 생겼다. 사람은 어떤 것이든지 하나씩은 미쳐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나처럼 러닝이 될 수도 있고 음식이 될 수도, 명품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하나에 집착을 하고 그것에 환장하게 되는 것일까?
참는 것이 어려운 제일 큰 이유는 우리 모두가 참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음식, 술, 담배, SNS, 마약에 너무 노출되어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참으면 개인이 참는 것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술과 담배를 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특히 SNS는 술과 담배를 하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많다. SNS는 성인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SNS를 안 한다는 것은 요즘에는 세상과 단절하는 느낌이 든다. SNS에서 유행하는 것을 모르면 뒤쳐지고 무시당하는 느낌까지 들게 한다.
<연합뉴스>
전 세계 SNS 사용자는 인구의 60.6%에 해당하는 48억 8천만 명이며, 하루 평균 2시간 26분 동안 SNS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생략)
변명이지만, 이래서 SNS는 참기 힘들다. 내 주변에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어쩌면 술과 담배보다도 훨씬 더 참기 힘들다. 술과 담배는 돈이 들지만 SNS는 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핸드폰이라는 휴대성을 가지고 있어서 어디서든지 클릭 한 번이면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과연 내가 참을 수 있는 것인가(끊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긴 한다. SNS를 끊은 사람들은 정말 정직할까? SNS를 줄이는 것은 가능한 것인가? 적당히 할 수 있는 것인가? 누군가 적당히 할 수 있는 SNS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끔 SNS를 너무 많이 했다며 자책을 하거나 SNS가 없어져야 한다는 말들을 친구들한테 한다. 그러면 친구들은 ‘나도 쉬는 날은 하루 종일 해.’, ‘넌 많이 하는 것도 아니야.’라며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그들은 SNS를 많이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누구나 그러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SNS의 중독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모든 사람들이 이 SNS를 제어하고 절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들을 경계하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식도 SNS와 마찬가지다. 오히려 SNS보다 심각할 수 있다. SNS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 나도 음식에 중독되어 봐서 잘 안다. 음식에 중독이 되면 체중은 순식간에 불어나고 비만은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중독되기 정말 쉽다. 우리의 몸은 못 먹을 때를 대비해서 최대한 지방을 쌓아 놓으려고 한다. 이는 본능이기 때문에 참기가 정말 어렵다. 그리고 SNS나 술, 담배는 아예 안 하는 방법이 있지만 음식은 먹지 못하면 죽는다. 방법은 조절밖에 없다. 그래서 더더욱 어렵다.
폭식을 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푸는 행위이기도 하다. 내가 살이 쪘던 이유도 고3 때 스트레스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런 경우는 어떤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지 찾고 올바르게 해소하는 방법을 찾으면 해결된다. 폭식할 때는 행복해도 그 이후에는 폭식으로 고통받고 다시 스트레스를 받게 될 뿐이다. 폭식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빨리 벗어났으면 좋겠다.
사실 최근에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성을 깨달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사고 싶은 욕구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사고 싶어 했던 것들은 기념품, 인형 정도였다. 살을 빼고 나서는 옷에 관심이 많아졌지만 그렇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용돈을 받기 시작하면서 돈을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쇼핑에 눈을 떴다. 그래서 쿠팡, 에이블리, 지그재그, 네이버 쇼핑 등에서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이 드는 물건들을 사기 시작했다.
할인 행사를 하는 제품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닌데도 지금 사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는 생각에 사기도 했다. 왜 엄마들이 홈쇼핑을 보면 지나칠 수 없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광고를 너무 잘한다. 그들은 광고에만 수억을 쏟아부어 나에게 꼭 필요한 상품이라고 설득한다. 이 제품만 있으면 완벽하다고 말한다. 이러니 나는 거기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물건을 사고 나서의 도파민은 너무 순간적이다. 사고 난 직후와 택배를 받아 뜯어보는 순간 도파민이 분비되고 금방 없어질 뿐이다. 이미 알고 있지만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그래도 이제 평소에 (마라톤을 제외하고) 충동구매를 하는 일은 많이 줄었다. 그런데 아직도 조절이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굿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굿즈, 유튜버의 굿즈, 뮤지컬의 굿즈, 게임의 굿즈, 애니메이션의 굿즈, 야구 굿즈 등이 있다. 요즘 내 지출은 식비를 제외하면 굿즈와 마라톤 밖에 없다. 왜 나는 굿즈에 집착하는가. 굿즈는 보통 항상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콜라보를 하거나 한정판이다. 심지어 검정치마 굿즈는 콘서트를 할 때만 살 수 있다. 이런 이유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 팀, 게임을 티 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좀 이상하지만 ‘나 이런 거 좋아해요.’를 말하고 싶은 것 같다. 내 개성을 들어내고 싶은 욕구일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대상과 이어져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굿즈는 사면 굉장히 기분이 좋다. 가끔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안다는 것은 나에게 기분이 좋은 일인 것일까?
중독은 우리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몸과 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고, 또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SNS 사업자들이 욕심을 줄이고 윤리적인 마음을 가져서 사람들을 망치지 않는, 그런 커뮤니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몸에 좋은 음식들만 팔면 좋겠지만 그런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물건 또한 사람들이 충동구매를 하지 않도록 하는 광고는 없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중독이 심각하고 말하지만 상황은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나쁘면 더 나빠졌지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봤을 땐 이미 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중독을 부추기는 사회가 된 이상 개인이 중독을 이기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그냥 안타깝다. 돈만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을 아끼는,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회를 만들어가길 바랄 뿐이다.